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생각쟁이 May 10. 2024

지금에서야 보이는 것들

그 시절 울 엄마는 뭐가 그리 피곤하셨는지, 머리만 닿으면 꾸벅꾸벅 조셨다.       

의자에 앉아 미사를 보면서도 꾸벅꾸벅.

학교에서 돌아와 보면, 소파에 앉아 또 꾸벅꾸벅.     


그때는 너무 어려서 몰랐었는데.. 새벽 잠 없는 할머니, 아빠 식사 빨리 차려드리느라 꼭두새벽부터 일어나셔서 아침밥을 차리셨거든...      


피곤해서 방에 들어가 낮잠이라도 한 번 잠시 잠깐 자려고 치면, 할머니가 계속 거실을 왔다 갔다 하시며 혼잣말을 하시는 통에 신경이 곤두서서 잠을 이룰 수가 없었단다.      


 할머니도. 엄마도 나는 다 안쓰럽다.     


할머니. 울 할머니. 할아버지가 일찍 돌아가시는 바람에, 빨리 혼자되신 할머니.


먹고사는 일에 더 집중하시느라, 관계에는 조금 서투셨을까? 친구가 별로 없으셨다.      

일선에서 물러나시고 나서는 내내 집에만 계셨다. 늘 거실만 왔다 갔다 TV만 보셨다.

생각해 보니, 옷 사러 가실 때만 엄마랑 같이 외출하셨구나.     


레지오에서 인연을 맺게 된 친구분들과 활발하게 이곳저곳 여행 다니셔도 좋았을 텐데....

밖에 나가시는 것도 좋아하지 않으시고 그저 집에만 계셨다.   

  

열심히 일하시고, 일구신 덕분에 물질적으로는 풍요로워지셨지만, 정작 할머니 본인의 삶을 즐기지 못하셨다.      

그 좋은 날들. 할머니 자신에게도 투자하셨으면 좋았을 텐데..

할머니의 젊음도 안타깝다.      


지금 생각하면, 할머니의 유일한. 친한 친구는. 어쩌면 울 엄마. 나. 동생... 바로 우리 가족들이었구나 싶다.      

그래서, 아마. 아빠 마음이 더 애틋했는지도 모르겠다     


엄마. 울 엄마. 결혼해서부터 대식구 살림을 혼자 도맡아 하느라 살이 쏙쏙 빠졌다.      


그 언젠가 엄마가 내 동생을 업고 장미 정원 앞에서 찍은 사진을 본 적이 있는데, 볼살이 하나도 없으시더라.      

새벽 일찍 일어나 식구들 먹을 아침을 준비하고, 외식 싫어하는 할머니 입맛에 맞추어 세 끼를 꼬박꼬박 한식으로 준비하는 것 자체가 고되셨을 거다.     


하루 세 끼. 매일을 배달음식을 먹지 않고 준비한다는 것이 얼마나 귀찮고 힘든 일인지 결혼한 사람들은 아마 다 알리라. 할머니는 전혀 요리를 할 줄 모르셨거든..   

  

나라도 도와드렸으면 좋았을 텐데...     

너는 공부하고 네 할 일이나 열심히 하라는 엄마 말을 그냥 곧이곧대로 들었다.      

거기다, 외출도 안 하시는 시어머니에.

말동무는 오직엄마.

식구들 모두가 본인에게만 온전히 기대고 있는 것 같은 부담감.     


우리 보내놓고 낮잠이라도 좀 자려 치면, 거실을 왔다 갔다 하며 혼잣말하시는 할머니가 부담스러워서 낮잠 한 번 못이루고.. 장보러 가겠다시며 콧 바람이라도 쐬고 오셨단다.     


그래서 매번 머리만 닿으면 꾸벅꾸벅 조신 거지..     


지금에서야 보이는 장면들.   

  

내가 그때 할머니 팔짱을 끼고 나가서 산책이라도 좀 같이 해 드릴 걸.

내가 그때 엄마 낮잠 좀 주무시라고.

할머니는 내가 말동무해 드릴게. 그랬으면 좋았을 텐데....     


너무 어려서 미쳐 알지 못했다.    

 

지금에서야 보이는 것들...속정은 깊었으나, 말로 표현할 줄 몰랐던.

할머니(시어머니). 엄마(며느리) 그리고 딸(손녀).       


아마 그때. 다 외로웠을 텐데..     


저마다의 외로움에 고립되어 있느라, 서로 손 내밀어 줄 생각을 못 했다 싶다.

작가의 이전글 늘 웃으며 지내.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