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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생각쟁이 May 14. 2024

1. 웃픈 기억 하나


나의 20대 때를 떠올려보자면,

웃픈 기억 하나.


사람들은 가슴 아픈 사랑. 가슴 아픈 기억.. 떠올릴 추억이 많다는데.. 나는 떠올릴 게 별로 없는 거야.  


그때 그 시절. 철 없이. 마냥 해맑기만 했다.


가슴 저미는 사랑. 가슴 저미는 이별을 한 적도 없고. 크게 굴곡진 삶도 살지 않았다.


뭐. 거짓말 조금 보태서 좋다고 따라다니는 남학생들도 많았다.


학교 근처 술집이었는지, 레스토랑이었는지.. 장소가 정확하게 기억이 잘 나진 않는데...

벽에 붙어있는 액자 뒤에 땡땡땡. 사랑한다.라고 적혀있는 글귀를 발견하고는 나에게 전해주는 친구도 있었다.  


본인이 좋아하는 노래 모음집이라며 며칠을 골라 선곡하고 CD에 구워 수줍게 건네주던. 노래 한가득 녹음되어 있는 CD도 받아봤다.


생각해 보니.. 비 오는 날이었던가. 아니면 비 게인 오후였던가.. 정확히 기억은 잘 안 나지만, 꽃 한 송이 들고 집 앞에서 기다리고 있었던 같은 과 친구도 있었네.


지금 생각하면 좀 오글거리기도 하지만, 순수하기도 했던 그때 그 시절.


액자 뒤에 적힌 사랑 한다 땡땡땡. 내 이름 세 글자. 친구들이 그건 또 어떻게 발견한 걸까?

물어볼 걸 그랬나.


표현에는 서투셨지만, 사랑 많은 부모님을 만나 어려움 없이 컸고, 내 생활에 크게 불만도 없었다.


내가 먹고 싶은 음식이 있으면 맘껏 사 먹었고. 내가 사고 싶은 옷이 있으면 며칠을 부모님을 졸라야 하긴 했지만, 결국 샀다.


아빠는 하나밖에 없는 딸이 뭐 사달라고 조르면 귀여우셨는지 한 번 만에는 안 사주시고, 꼭 며칠을 여러 번 조르면 못 이기시는 표정을 하시며 사주시곤 했다.


배우고 싶은 것도. 하고 싶은 것도. 갖고 싶은 것도.

부족함 없이 다 해 주셨다.


오히려 결혼하고 나서는 별로 가보지 못한  해외여행도 많이 다녔다.


대학교 1학년 겨울방학 때였던가.  수능을 끝낸 동생이랑 함께 유럽 성지순례를 갔더랬다. 거기에 가이드로  따라왔던 여행사 사장님 아들. 치대생 오빠가 여행이 끝나고도 계속 연락이 왔다.


나한테 대 놓고 연락을 못하겠던지, 한동안은 동생한테 연락이 오다가, 나중엔 나한테 연락이 오더라.

그런데, 알고 보니 이 오빠는 이 여자 찝쩍. 저 여자 찝쩍. 오만 곳 다 찝쩍대는 바람기 많은 오빠.



동생이랑 쇼핑도 같이 갔다 왔다 그러고, 여행지에서 비슷한 또래끼리 피자도 사 먹으며 재미있었던 기억 있어서 별 경계심이 없었는데.. 한 번은 학교까지 태워준다며 전화하라고 해서 순진했던 나는 그 말을 곧이곧대로 듣고 학교 가기 전 아침에 전화를 했다.


그랬더니, 술이 덜 깼는지 다른 여자 이름을 부르더라;;

뭐 이런 사람이 다 있나 하고 다음부터는 연락을 끊었지.


어장관리의 고수. 그분은 그 이후로도 이 분 저분 만나다가, 아주 부잣집 딸과 결혼했다는...

그래서 건물 전체를 병원으로 개원했다는 소문이 들려왔다.

 

아무튼 그때 그 시절 나는. 그냥 별 걱정 없이, 해맑게, 하루하루 만족하며 살았던 것 같다.


대학교 3학년 2학기 때던가.


가끔, 조별 과제를 한다고 모이면. 약속시간에 본인이 늦었을 때는 미안하다는 내색도 없이 그냥 넘겨놓고선다른 친구들이 늦으면 화내며 앙칼지게 굴기도 하고.

본인들에게 피해를 끼친 것도 없는 한 친구를 이유도 없이 뒤에서 무섭게 씹어대고. 나쁜 소문을 만들어내던 뒷담화 잘하던 친구들과 한 조로 엮여서 그 무서운 기세에 눌러 괴로워했던 기억.


뒷담화 하던 그 친구도. 그 친구의 친언니도. 고등학교 때부터 왕따 시키기로 유명했다고 싫다고. 무섭다고. 그래놓고선, 본인도 뒷담화의 대상이 될까 봐 겁이 나서인지. 아니면 본인에게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아서인지.  같이 동조하며 그 무리와 어울리던 친구들을 보며. 의아해했던 기억.


나중엔 이유도 모른 채 뒷담화의 대상이 내가 되어 버려, 한 동안 학교 가기 싫었던 기억.


돌고 도는 것이 뒷담화라더니. 그 때나. 지금이나... 뒷담화가 말썽이었네... 마음이 단단하지 못했던 내가 겪기에는 사실 그 당시에는 버거운 일들이긴 했다.


그리고 아주 가끔. 내가 가고 싶었던 학교를 가지 못했다는 것이 떠오를 때. 그렇다고 부모님께 다시 재수하겠다고 말할 용기는 없었으면서. 나도 모르게 속이 쓰렸던 기억.


나보다 성적이 안 좋았던 친구가 수능 대박이 터져서 나보다 좋은 학교에 갔을 때 몹쓸 질투심이 올라왔던 기억.


가끔씩 떠올라서 문득문득 괴로웠던 그 찰나의 순간들을 제외하고는. 크게 좌절하거나 욕심을 낸 적도 없는 것 같다.


그런 찰나의 기억보다 친구들과 즐겁게 보냈던 시간들이 더 기억에 남아 있는 것을 보면...


그런데 말이다.

인생에는 총량의 법칙이라는 것이 존재하는 걸까?

살아 보니, 마냥 평탄하지만 않은 것이. 인생이더라.

사연 없는 인생은 없다는 말이. 정말이더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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