링크아트센터 드림 뮤지컬 카르밀라 후기
6월 11일 뮤지컬 <카르밀라>가 링크아트센터드림에서 개막했다. 뮤지컬 <카르밀라>는 뱀파이어 소녀 카르밀라와 인간 소녀 로라의 사랑을 다룬 작품으로, 셰라던 르파뉴의 소설 <카르밀라>를 원작으로 한다. 폭풍우 치는 날 마차 사고를 당한 자매 카르밀라와 닉은 로라의 집으로 찾아오고, 로라는 카르밀라에게 알 수 없는 끌림을 느낀다. 자매가 마을에 머물며 오래전 로라의 아버지가 죽음을 맞이한 것과 같은 방식의 흡혈귀 살인 사건이 발생하며, 로라의 오랜 친구이자 신부인 슈필스도르프가 그 뒤를 쫓기 시작한다. 카르밀라와 로라의 사랑 그 끝에는 무엇이 놓이게 될까.
* 본문은 뮤지컬에 대한 줄거리와 일부 장면 묘사를 포함합니다.
대중 문화에서 뱀파이어가 재현되어 온 양상은 일정한 전형을 따른다. 희고 창백한 피부, 불사의 몸. 햇빛과 십자가를 싫어하며 인간의 피를 탐하는 이들. 외형은 인간과 구분되지 않으며 오히려 매력적이다. 인간의 피, 즉 생명을 탐하는 뱀파이어는 인간 외의 존재이지만 우리는 그들을 엄격하게 사람이 아닌 것으로 여기지 못한다. 뱀파이어에게 물리는 것의 결말이 죽음일 수도 있으나, 뱀파이어로의 탄생을 의미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카르밀라는 인간이었다. 닉은 500년간 뱀파이어였다는 사실 외의 과거가 나오지는 않으나, 연극의 설정을 고려하였을 때 인간이었을 수도 있다. 많은 인간은 본인이 아프지 않기를 바라고 오래 살 수 있기를 희망한다. 그러나 역설적으로 인간은 자신의 열망을 성취한 존재인 뱀파이어는 두려워한다. 인간은 뱀파이어를 두려워하기에, 그들을 없앨 방법을 고민한다. 뱀파이어가 두려운 까닭은 그들의 욕망이 나를 향할 수 있기 때문이며, 동시에 그들이 지닌 전염성-내가 그들과 같은 존재가 될 수 있다는 가능성-때문이기도 하다.
카르밀라는 슈필스도르프과 함께 부르는 노래에서 이렇게 읊조린다. 뱀파이어가 된 것도, 뱀파이어가 된 후 인간의 피를 갈망하는 것도 모두 선택할 수 있는 것이 아니었는데 왜 자신은 없어져야 할 대상이 되어야 하느냐고. 한편 슈필스도르프는 사제로서 카르밀라의 이러한 의문에 정면으로 맞서는 인물이다. 슈필스도르프는 성경이라는 기준점으로 이성(인간)과 비이성(뱀파이어)을 구분한다. 비이성의 영역, 자기 가족과 친구를 언제든 살해할 수 있는 뱀파이어라는 존재는 의문이 필요 없이 사라져야 하는 존재이다. 이후 카르밀라와 로라가 서로를 향한 사랑을 인정하고 영원을 약속하게 되었을 때, 슈필스도르프는 자신의 신념을 철회한다. 다만 초반 카르밀라와 슈필스도르프 간 형성된 대립이 흥미로웠으나, 해당 갈등이 해소되는 과정이 짧은 극 중에서 개연성 있게 제시된 것은 아니라 아쉬움이 남기는 했다. 그럼에도 카르밀라의 간절한 노래는 우리에게 질문을 던진다. ‘죽어 마땅한’이라는 수식어가 향할 수 있는 곳이 있는가? 당당한 기준이 되곤 하는‘인간적’ 속성이 결여된 이들을 우리는 어떻게 판별할 것인가.
영원한 행복은 행복일까. 영원한 고통도 고통일까. 인간에게 허용되고 인지될 수 있는 시간의 폭이 늘어난다면, 인간의 경험도 지금과 같지 않을 것이다. 카르밀라에게 불멸하는 자신의 육체는 저주였다. 그것은 무엇도 시작할 수 없고 그만둘 수 없는 상태였기 때문이다. 닉은 카르밀라에게 집착과 가까운 사랑을 퍼부었다. 사람의 피를 취하는 것, 그리하여 그 인간을 죽여야 한다는 것 역시 인간이었던 카르밀라에게는 고통이었다. 죽음을 감수한 카르밀라와 슈필스도르프의 활약으로 닉이 소멸하고 카르밀라 역시 소멸의 위기 앞에 놓이게 된다. 죽음을 앞에 두고 로라 품에 안긴 카르밀라는 자기 죽음을 담담히 받아들인다. 함께 하지 못할 로라의 시간은 슬픔으로 남지만, 로라를 사랑하기에 그녀만은 맑은 햇살을 받으며 매일의 일상을 잘 꾸려가기를 바란다. 영원의 시간이 내릴 저주를 카르밀라는 알았기 때문이다.
마침내 카르밀라가 눈을 감았을 때, 로라는 그 사실을 견딜 수 없는 나머지 자신의 피를 내어 카르밀라를 되살린다. 인간과 뱀파이어로서 그 둘은 함께 할 수 없었다. 카르밀라가 인간이 될 수는 없었다. 그 둘이 함께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로라가 뱀파이어가 되는 것. 로라는 카르밀라에게 이렇게 말한다. 우리 앞에 허락된 것이 비극뿐이라도, 너와 함께하는 비극을 선택하겠다고. 불멸의 생명 때문에, 인간에게 들키면 안 된다는 비밀 때문에 이 둘은 서로에게 서로밖에 없으며 영원의 시간을 떠돌게 될 것이다. 서로밖에 없다는 말은 낭만적이나 배타성과 폭력으로 점철된 말이다. 그런 점에서 닉과 카르밀라의 관계는 카르밀라와 로라의 관계와 얼마나 다른가. 외로운 닉에게 카르밀라가 필요했고, 서로의 존재를 서로밖에 몰랐던 관계. 카르밀라와 로라의 미래가 닉과 카르밀라의 미래와 얼마나 다를 수 있을지 우린 알 수 없다. 그러나 우리는 때로는 우리에게 허락된 뻔한 미래를 내다보고도 그곳으로 달리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그렇기에 바보 같은 선택을 우리는 이해해 버리고 마는 것이다.
* 아트인사이트에 기고했습니다
https://www.artinsight.co.kr/news/view.php?no=7095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