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서로를 이해할 수 있을까
유네스코 국제무용협회(CID-UNESCO) 한국본부가 주최하는 제27회 서울세계무용축제(SIDance2024)가 9월 1일(일)부터 9월 14일(토)까지 서울시내 주요 공연장에서 개최된다. 국제합작, 해외초청, 국내초청, 기획 제작 등 다양한 35편의 작품이 선보여질 예정이다.
이번 서울세계무용축제에서 내가 관람한 공연은 개막작인 HBE 무용단의 몸(BODY)였다. HBE무용단은 재캐나다 한국인 안무가 김현아가 창단한 곳으로, 예술감독이자 안무가인 김현아는 주로 무용수들에게 과제를 주는 태스크 베이스(task base)를 활용하여 무대를 구성한다. 발레, 힙합, 연극 등 다양한 장르의 무용수들이 주어진 과제를 독창적으로 해석하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불협화음 속 조화를 찾아내는 작업방식을 취하는 것이다. 그러한 그의 작업방식은 관람 중에서도 느낄 수 있는 부분이었다. 공연 몸(BODY)는 대비가 두드러지는 작품이었는데, 독무와 군무간의 온도차가 눈을 끌었다.
거리를 두고 서 있는 무용수들. 그 사이를 활보하는 한 명의 무용수로 작품은 시작한다. 해당 무용수는 다른 이들에게 호응을 유도하는 듯한 몸짓을 취하지만 그들은 정면을 응시할 뿐 호응하지 않는다. 장면이 전환되고 무용수 한 명과 함께 짝을 이루어 춤을 춘다. 다른 무용수들은 여전히 멈춰 서 있거나 두 명을 제외한 이들의 유기적인 군무를 보여줄 뿐이다. 다시 이어서 전체 군무가 나온다. 한 시간 가량의 공연 동안 이러한 래파토리가 반복됨을 확인할 수 있었다. 멈춰 서 있는 군중을 움직이게 하는 것은 해당 챕터를 맡은 한 명의 무용수이다. 각 무용수에 따라 자신의 특기를 살린 춤을 선보였기에, 공연 몸(BODY)은 마치 하나의 연작 소설 혹은 막과 장으로 이루어진 연극을 보는 듯한 인상을 남기기도 하였다.
개막작인 공연 몸(BODY)를 보기에 앞서, 춤의 주제가 몸이 되는 것에 대한 의문이 들었다. 춤은, 무용은 당연히 몸으로 하는 것인데 몸으로 몸을 표현한다는 것은 무슨 의미일까. 모든 춤은 몸에 대한 이야기일 수밖에 없고 모든 것에 대한 이야기는 무엇에 대한 이야기도 될 수 없기에 그 속에서 어떤 이야기를 포착할 수 있을지 고민이 되었다.
공연 몸(BODY)는 다양한 국적과 문화적 배경을 가진 예술가들이 신체의 움직임을 소통의 매개체로 함께 협력하고 소통하는 과정에 대한 작품이다. 일제히 움직이는 군무와 각 무용수의 장점이 담긴 독무를 오가는 래파토리는 대화를 닮았다. 태스크 베이스라는 연출 방법의 힘일 것이다. 인간이 인지하는 정보값에서 시각 정보는 가장 큰 부분을 차지한다. 우리는 서로 언어가 통하지 않더라도 상대의 감정과 기분, 뉘앙스를 추측할 수 있다. 춤의 기원을 제례와 영적 의식, 즉 언어로 소통할 수 없는 신과의 대화에서 발견하는 것도 같은 맥락일 것이다. 몸짓은 보편적인 기호가 되고 감정이 된다. 그리하여 온 몸을 통한 소통을 작품화한 개막작 몸(BODY)은 춤 그 자체에 대한 공연이었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그것이 공연 몸(BODY)가 전체 축제의 개막작이 된 이유였을 것이다. 현대예술은 이전의 직관적 감각적 아름다움을 전달하는 것을 넘어 철학과 함께 존재한다. 사유와 개념의 확장을 이루는 것, 없던 것을 창조하고 예술의 정의에 반기를 드는 것. 각 예술분야에 대한 지식을 전공하지 않았을 일반 시민의 입장에서는 전통적 장르든 현대적 시도든 이해도 면에서는 큰 차이가 없을 수 있다. 그러나 감각적 아름다움이 우리의 지식을 앞서 인간에 대한 경탄을 제공한다면, 철학과 함께하는 예술은 종종 이해하지 못하여 무엇도 남지 않아 버린다. 대중을 땅에 두고 예술은 앞으로, 앞으로 가는 것처럼만 보인다. 예술이라는 개념 자체도 근대에 창작된 것임을 고려한다면, 일상에서 분리되어 공연장과 전시장으로 간 예술에게 느끼는 우리의 괴리감은 일면 당연할 것일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한다.
개막작 몸(BODY)는 춤이 소통의 방법이라는 근본적 정의를 현대무용으로 표현한 작품이었다. 서울세계무용축제는 현대무용이 개념으로 남지 않고 시민들이 보다 쉽게 접하고 즐길 수 있도록 하는 것을 프로그램 구성의 목표로 한다. 소통을 전면에 내세운 작품을 개막작으로 한 까닭은 그것이 서울세계무용축제 자체가 하고 싶은 일이었기 때문이었으리라. 9월 14일(토)까지 준비된 많은 작품들이 보다 사람들 곁으로 갈 수 있기를 바란다.
* 아트인사이트에 기고했습니다.
https://www.artinsight.co.kr/news/view.php?no=7168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