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가장 내부에서 이야기하는 외부란
박상현 작/연출의 연극 <오슬로에서 온 남자>가 8월 30일(금)부터 9월 8일(일)까지 대학로 예술극장 소극장에서 재공연됐다. 연극 <오슬로에서 온 남자>는 5개의 장소에서 펼쳐지는 5가지 이야기로 구성되어 있지만 각각의 이야기는 하나의 플롯으로 이어져 있다.
연극은 산티아고에서 만났던 남녀가 서울의 등산로에서 다시 만나는 ‘사리아에서 있었던 일’, 이태원의 부동산을 배경으로 하는 ‘해방촌에서’, 아버지 땅 문제로 누나 집에 모여 어릴 적 살던 곳을 추억하는 ‘노량진에서’, 해외입양인에 관한 연극을 연습하는 ‘오슬로에서 온 남자’, 부대찌개 집 할머니의 기일에 모인 가족 이야기인 ‘의정부부대찌개집’으로 구성되어 있다.
연극 <오슬로에서 온 남자>는 경계에 있는 인물들에 대한 관심을 전면에 내세운다. 연극에는 유년 시절 해외로 입양을 갔다가 생모를 찾고자 한국에 왔던 ‘욘 크리스텐센’, 한국인 아버지의 학대를 피해 베트남 출신 어머니와 도망치게 된 ‘띠하’가 등장한다. 한편, 해방과 한국 전쟁 직후 주둔한 미군 부대 인근에서 각자의 방식으로 생존한 ‘어른들’ 역시 이야기의 주축으로 등장한다. 이는 경계에 있었던 후자가 전자의 경계가 된 시간에 대한 이야기이기도 하다.
<오슬로에서 온 남자>에서 표현하고자 했던 경계는 한국 사회에 이미 속하고 존재함에도 그 성원권을 온전히 보장받지 못하는 이들이 서 있어야 하는 곳이다. 국적과 인종, 이주를 다룬 때에는 경계의 개념을 적극적으로 사용한다. 인권은 보편적이며 천부적이라고 하지만, 인권의 구체적 실현은 국민국가 내에 법률을 통한 시민권의 보장이 될 수밖에 없는 한계를 지닌다. 이때, 자신이 체류하는 곳과 시민권을 실제로 보장받을 수 있는 국가가 일치하지 않거나 전쟁과 재난 등의 이유로 총체적 권리 상실의 상황에 놓이게 되는 사람들이 다수 발생하게 된다. 한국은 ‘다문화’라는 제도·사회·문화적 개념이 뒤떨어진 것으로 느껴질 정도로, 고도로 국제적 생산관계에 속해있는 국가이다. 이중 연극은 혈연으로 한국에 엮여 있는 해외 입양인과 한국-베트남 혼혈 아동에게 관심을 기울인다.
다만 이들의 경계성을 표현하고 갈등을 봉합하는 방법은 지극히 한국적이었다. 한국이라는 국가에 대한 향수와 통합 의지가 주축을 이루었고 경계는 달라지지 않았다. 예를 들어 양부모와의 갈등이 있지 않던 인물이 한국에 와서 어떠한 이질감이나 고통 없이 고향 같은 기분을 느꼈다는 것과 같은 설정은 일면 비약적이기도 했다. 또한 한국에서만 살았고 한국 정규교육 과정을 밟은 띠하의 경우 아버지의 학대를 고려하더라도 외국인처럼 대해지는 점과 그것을 쉽게 수용하는 태도는 당황스러웠다.
5가지의 이야기는 각자 줄거리는 다르지만, 방법론적으로 후일담의 형식을 취하고 있다. 어떤 사실과 관련하여 그 후에 벌어진 경과에 대하여 덧붙이는 방식으로 서사가 진행되다 보니 연극의 대부분은 ‘우리 그때 그랬잖아’로 구성되었고, 배우들의 연기보다는 명절에 큰집에서 친척 어른들의 대화를 엿듣는 기분이 들기도 했다.
한편, 잘 구현되지 못한 사투리 연기, 대사 암기 미비 등은 연극의 전체 주제를 생각했을 때 아쉬운 점이었다. 예를 들어 <오슬로에서 온 남자>는 한국 부산을 배경으로 하는데, 부산 출신 인물의 악센트는 처음에 이 인물이 외국인을 표현하고자 하는 것인지 부산 사람을 표현하고자 하는 것인지 헛갈리게 하였다. 한자어와 추상어가 너무 많이 들어간 대사의 경우 해외 입양인이라는 설정에 어긋나게 느껴진 것도 사실이다.
연극 <오슬로에서 온 남자>는 현대적 주제를 전통적 감각으로 다루었다. 그렇다면 주제는 현대적인 것으로 남을 수 있는가. 지나온 과거에 대한 통찰과 이미 지나가고 있는 오늘에 대한 이해가 우리에게 필요함을 다섯 가지의 이야기를 들으며 다시금 생각하게 되었다.
* 아트인사이트에 기고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