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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걍갈 Nov 18. 2024

[영화] 아노라
-우리는 서로를 껴안을 뿐

황금종려상 수상, 성노동자의 이야기를 다룬 영화 <아노라>

제77회 칸 영화제 경쟁 부문에 초청되어 황금종려상을 받은 선 베이커 감독의 영화 <아노라>가 11월 6일 한국에서도 정식 개봉했다. 뉴욕의 스트리퍼 아노라는 ‘애니’라는 예명으로 일한다. 그러던 중 철없는 러시아 재벌 2세인 이반을 만나 충동적으로 결혼을 하게 되고, 그 사실을 알게 된 이반의 가족은 혼인무효소송을 시키려 한다. 그 와중에 이반은 아노라도 두고 도망을 가게 되고, 아노라는 이반 부모의 하수인 3명과 이반을 찾는 길에 나서게 된다.


먹고 사는 일에 대하여


아노라의 직업은 스트리퍼이다. 성 판매 여성이며 성 노동자, 매춘부 혹은 창녀이다. 어떤 호칭도 상관없다. 그 호칭이 아노라가 하는 일을 바꾸지는 않기 때문이다. 영화나 드라마, 심지어 다큐멘터리에서조차 성 판매 여성은 요망하게 혹은 불쌍하게 묘사될 뿐이다. 실제로 세계에 존재하는 다수의 성 판매 여성이 빈곤에 놓여있다는 사실은 차치하고. 그들이 반복적으로 일을 하며 밥을 먹고 삶을 유지한다는 사실은 차치하고. 차치해버리는 일은 이렇게도 간단하다.


그러나 이 영화에서 아노라가 이반을 만나기 전까지의 모든 장면은 아노라가 먹고 살기 위해 수행하는 일련의 작업 과정을 담담히 비출 뿐이다. 늦은 저녁 아노라는 자신의 일터로 출근한다. 화려한 화장과 꼭 맞는 드레스, 작업용 속옷은 필수다. 아노라는 상냥한 웃음으로 혼자 있는 남성에게 다가간다. 짧은 시간 안에 남성의 욕구를 파악하여 적절한 서비스를 제안한다. 얼굴과 몸매가 어떤지, 얼마짜리 서비스를 제안할지, 어떤 말로 이야기를 시작할지, 무슨 춤을 출 수 있는지, 얼마나 술을 잘 마시는지는 모두 ‘아가씨’의 능력을 결정짓는 요소들이다. 이 점에서 아노라는 가게의 에이스다.


일을 하고 밥을 먹는다. 일이 바쁘기 때문에 업무 중 밥을 제대로 먹을 수는 없다. 백스테이지에서 아노라는 락앤락에 담은 도시락을 급하게 먹는다. 이곳은 테이블 사이를 걷는 와중에도 멈추지 않았던 아노라의 미소가 마침내 멈추는 공간이다. 친한 동료와는 농담을 나누며, 앙숙인 동료와는 말다툼한다. 팁을 어떻게 분배할지, 밥시간을 어떻게 보장받을지와 같이 근로조건을 결정짓는 사항은 관리자와 시시때때로 협상해 낸다. 밀리면 끝이다. 밥 먹을 시간조차 없을지 모른다. 


해가 뜨면 아노라는 퇴근한다. 밀폐된 장소의 밝은 조명 아래 환히 빛나던 아노라의 얼굴은 없다. 아노라는 ‘작업복’을 벗고 후드티를 깊게 눌러 당긴 채 화장기 없는 지친 얼굴로 대낮의 도로에 나선다. 아노라의 방은 지하철과 너무 가까워 한낮에 자기 위해 누우면 소음이 멈추지 않는다. 잠을 청하기 위해 귀를 막고 눈을 막아본다. 이반과 같이 특별 손님의 요청이 있다면 낮에도 출장 서비스를 나가야 한다. 잔업인 셈이다. 아노라는 출근하고 퇴근하며 때때로 잔업을 한다. 영화는 아노라의 사정을 설명하지 않는다. 감정에 호소하지 않는다. 어떻게 그녀를 봐달라고 설득하지 않는다. 그저 그녀의 작업 과정을 여과 없이 담아낼 뿐이다. 그것은 이제껏 어떤 성관계를, 어떤 어필을, 어떤 분위기를 팔아 먹고사는, 이미 존재하는 수많은 여성의 이야기에서 가장 부족했던 지점일 것이다.


동일하지 못한 삶의 무게



아노라의 작업 과정에서 가장 중요한 지점이 있다면 그것은 셈하기다. 아노라는 이 남자가 나에게 얼마를 쓸 수 있을 것인지 셈한다. 내가 제공해야 하는 서비스가 몇 분 남았는지 셈한다. 속옷을 완전히 벗어야 할지, 고객이 콘돔을 거부하면 어떻게 해야 하는 지, 어떤 서비스를 줘야 또 나를 지명할지 셈한다. 내가 받은 팁을 가게에 나누면 나에게 얼마나 남는지 셈한다. 반반한 얼굴과 몸을 유지하기 위해 해야 하는 노력을 셈한다. 이번 달 집값과 생활비를 셈한다. 아노라는 끊임없이 삶의 조건들을 저울질한다.


반면 이반은 셈하지 않는다. 그럴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러시아어를 알아들을 수 있다는 이유만으로 아노라는 밥을 먹던 중 이반에게 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해 스테이지로 나갔다. 이반은 아노라의 번호를 물어보고 그녀를 집으로 초대한다. 이반은 좋으면 하면 된다. 가족의 사업을 이어받기 전 미국에서 일탈을 최대한 즐길 뿐이다. 아노라는 으레 있는 잔업을 대하듯 졸린 눈을 비벼 이반의 집으로 향한다. 소음이 멈추지 않는 아노라의 방과 고요하고 웅장하며 깨끗한 이반의 저택은 둘의 삶만큼이나 대조적이다. 아노라는 예상보다 엄청난 그의 집을 보고 놀란다. 아노라의 표정은 그녀의 주요 관리 대상 중 하나이지만 으리으리한 저택 앞에서 잠시 무장 해제된다. 그러나 놀란 표정도 잠시다. 아노라는 손님에게 제공해야 하는 서비스를 성실히 제공한다. 그 과정에서 부가적으로 즐길 수 있는 부자 남자의 요소들, 그러니까 비싼 술과 고급 이불, 다정한 태도를 향유하는 것을 두려워하진 않는다. 어두운 가게와 달리 환한 낮의 태양이 여과 없이 들어오는 이반의 집에서, 아노라의 얼굴에 새겨진 근심과 셈하기 노동의 흔적은 더 뚜렷이 보인다.


이반이 아노라에게 일주일 동안 여자 친구가 되어달라고 했을 때, 큰 금액을 제안받은 아노라는 기쁘게 승낙한다. 이반은 어리고 재미있으며 천진난만한 웃음을 짓는, 무엇보다 돈이 많은 손님이었기 때문이다. 손님으로서 이반은 거절할 구석이 없지 않은가. 그러나 라스베이거스에서 이반이 아노라에게 청혼했을 때 아노라는 당황한다. 아노라는 셈이 빠르기에 이반과 같은 재벌이 자신과 결혼까지 하지 않으리라는 사실쯤은 알았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이반의 마음을 마침내 진심으로 받아들였을 때, 아노라는 결혼의 의무와 권리에 대해 셈하기로 한다. 사회적으로 우리는 이러한 태도를 책임감이라고 부를 것이다. 문제는 아노라가 창녀라는 점과 이반이 창녀가 아닌 데다 돈이 많다는 점 정도였을 뿐이다.


할 말은 남아있지 않고 서로를 껴안을 뿐


처음 이반의 부모님이 보낸 하수인들이 이반의 집을 찾아왔을 때 아노라는 그들을 이반과 자신의 사랑을 파괴하러 온 외부의 적으로 취급했다. 그러나 이내 이반이 무책임하게 홀로 도망치자 아노라에게는 그들을 따라 이반을 찾는 것 외엔 마땅한 대안이 남지 않는다. 이반에게 들어야 하는 말이 있기 때문이다. 자신을 사랑하며, 자신과 이반이 만든 가정을 지키겠다는 절절한 다짐 같은 것 말이다. 초반 빠른 속도로 전개된 아노라와 이반의 연애 물은 이내 코믹 추격전으로 장르를 전환한다.


이반의 부모가 보낸 하수인은 어딘가 맹하지만 하수인이라는 역할에 맞게 제대로 겁박할 줄 아는 자들이다. 남편에게 배신당한 아노라를 조금이라도 동정할 줄 아는 것 역시 이들이다. 아노라와 하수인 사이에 그어진 적대적 긴장감은 이내 방향을 바꾼다. 이반네 가족에게 성 판매 여성과 편법과 불법을 넘나들며 자신 가문의 일 처리를 해주는 직원들은 어차피 그리 다른 족속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중에는 이고르가 있었다. 이고르의 직업은 시키는 대로 힘을 쓰는 것이다. 깡패, 양아치, 조폭, 그런 이름으로 불린다. 그러나 이고르에게는 아노라와 같이 품위가 있다. 그는 돈을 받고 하는 자신에 일과 아노라를 대하는 일 사이를 셈하여 아노라에게 최소한의 충격을 주기 위해 애쓴다. 아노라가 하는 말을 창녀가 하는 말이 아닌 사람이 하는 말로 들어준다. 아노라는 이고르의 겉모습을 보고 처음에는 무서워하고 오해한다. 그러나 이반을 추격하는 과정에서 이 둘은 하는 수 없이 서로를 이해해 버린다. 모든 것이 끝난 밤 이반의 저택에서 밤을 지새우며 서로의 이름의 뜻을 물어본다. 아노라는 이고르에게 애니가 아닌 아노라가 된다.


눈이 펑펑 오는 날 아노라는 이고르를 안고 펑펑 운다. 둘 사이가 각별해져서가 아니다. 눈앞에 서로가 있었기 때문이다. 붙잡고 울 수 있는 것이 그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 둘의 포옹은 특별하기보다 보편적이며, 둘 사이의 일이기보다 각자의 일이다. 계절에 맞지 않게 너무 오래 따뜻했던 날들이었다. 따뜻한 날일 아무리 길어져도 겨울은 오고, 찬 바람은 불며 눈은 오고 손은 언다. 재수 없는 세상에서 우리는 어쩔 수 없이 눈앞의 사람을 끌어안고 흐느낄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저 살아갈 뿐인 우리들에 대해 아노라는 이렇게 영화를 마무리 짓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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