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령의 부모님과 같이 여행할 수 있는 시간이 많지 않다
“여행 가자, 더 늦기 전에!”
“그럴까? 그래, 가자!”
마음도 잘 맞는다. 한목소리로 결정도 빠르다. 대답은 그렇게 했어도 약간 주춤한 나를 동생이 잡아끈다. 걱정이 많고 우유부단한 나와 달리 동생은 매사에 결정도, 행동도 빠르다. 나는 동생을 잘 따른다. 결국엔 좋은 선택인 것을 아니까.
지난겨울, 설날 연휴 끝자락을 끼고 3박 4일 목포에 다녀왔다. 여행 멤버는 아버지, 엄마, 막냇동생, 나, 네 명의 나이를 합하면 286세다. 컴퓨터 286세대처럼 연식이 오래되었다. 아버지는 89세, 엄마는 85세. 고령화 시대 주인공 두 분과 초고령화의 주역이 될 자매이다.
우리는 대중교통으로 다녀왔다. 이유는 단순하다. 두 딸이 운전을 못 한다. 주변에서는 여행 자체를 반대했다. 연로한 부모님과 굳이 추운 겨울에 대중교통이라니, 너무 무모하다, 많고 많은 날 중에 꼭 한겨울에 가야 하는지, 낯선 곳에서 무슨 일이라도 생기면 어떻게 하려고 등등 걱정의 말을 건넸다. 다 맞는 말이다. 부모님과 함께 가는 여행은 남동생이나 제부 또는 남편이 시간을 내서 운전하는 차량으로 다녔다.
아직 거동은 잘하시지만, 연로하신 아버지와 장거리 대중교통 여행은 생각조차 못 해봤다. 하지만, 최근에 부쩍 약해진 부모님 모습에 마음이 조급해졌고, 좋은 날을 기다리기엔 남동생도, 두 남자도 늘 바빴다.
요즘 들어 장례식장에 많이 다니면서 “부모는 기다려주지 않는다”는 말을 실감하는 중이다. 우리에게 주어진 새털처럼 많은 날이 과연 있을까 싶다.
예순이 되도록 청년 같은 체력을 자랑하시던 아버지는 정년퇴직 후 가벼운 뇌경색을 시작으로 하나둘 병이 늘어났다. 매달 병원을 순례하시는 데 진료과가 일곱 개에 이른다. 한 보따리 처방받은 약으로 하루하루를 버티시는 아버지와 옆에서 부쩍 피곤을 많이 느끼시는 엄마를 보며 가슴이 서늘했다.
그러던 중에 동생이 “더 늦기 전에 여행 다녀오면 어때?” 의견을 냈다. 물론 가까운 곳에서 맛있는 식사 한 끼, 차 한 잔으로도 좋지만, 특별한 추억과 깊은 친밀감을 원한다면 낯선 곳에서 시간을 오롯이 함께 보내는 경험에 비할 수 없다.
빠른 결정만큼 실행도 일사천리였다. 첫 여행지는 목포. 부모님이 가보고 싶어 한 도시이다. 부모님은 전라남도의 정취도 느끼며 케이블카에서 보는 경치가 좋다는 말을 여러 번 하셨다. 나도 다른 곳에 가다가 목포를 지나기만 했던 터라 기대감이 생겼다.
행동이 빠른 동생은 머리도 손도 빨라서 결정하는 순간부터 폭풍 검색에 돌입했다. 며칠 동안 밤잠을 줄여가며 호텔과 케이블카를 예약하고, 여행 경로를 짰다. 그때부터일 것이다. 동생은 전문 가이드가 무색할 만큼 숙련된 안내자가 되기 시작한 것은.
맛집이며 볼거리, 즐길 거리를 쏙쏙 찾아냈다. 나는 그저 감탄만 할 뿐, 어쩌면 여행에서 최고 수혜자는 나인 듯싶었다.
그중에 단연코 으뜸은 대중교통수단 검색이다. 택시는 가끔 이용했고 주로 버스를 이용했다. 부모님은 승하차 때 오히려 버스가 더 편하고, 큰 창문으로 경치도 더 잘 보인다고 말씀하셨다. 우리 자매는 부모님 말씀을 잘 따르는 딸들이다. 동생은 차 안에서 환승 정류장과 시간 등을 검색하느라 정작 좋은 경치를 놓치기 일쑤였다.
여행을 출발하기 며칠 전부터 아버지는 설렌 마음에 어린아이처럼 좋아하셨고, 전날 밤에는 잠을 거의 못 주무셨다. 목포에 다 가도록 자다 깨다 하셨다. 아침 6시 전에 인천에서 출발하여 용산역 도착, 7시 30분경 무궁화호 열차를 타고 5시간 넘어 목포에 도착했다. 긴 시간이었지만 도통 지루한 줄 몰랐다. 소풍 가는 맛이었다. 엄마가 싸 오신 삶은 달걀, 떡, 사이다 등을 먹으면서 어린 시절 나들이를 떠올렸다. 부모님이 어린 삼남매를 오롱이조롱이 데리고 여기저기 쌩쌩 잘도 다녔던 시절이 있었다. 이제 세월이 훌쩍 건너뛰었다. 어느덧 희끗희끗한 머리카락이 보이는 딸들에게 계속 간식을 권하는 엄마의 모습도 여전하고, 즐거운 마음도 똑같다.
오랜 세월을 견뎌온 무궁화호 열차는 낡기는 했지만, 앞뒤 좌석 간격이 넓고 구석구석 깨끗해서 쾌적했다. 푯값도 저렴하다. 무엇보다 기차를 선택한 이유는 화장실을 자유롭게 이용할 수 있어서다. 거동이 느리고 불편한 아버지에게 좋다.
“와, 저기 좀 봐봐, 엄마, 눈이 많이도 왔네”.
“그러게, 경치가 참 좋다, 에그, 이 양반은 자느라 저걸 못 보네, 그렇게 잠을 안 자더라니, 좋은 거 다 놓치네”.
그 말에 애써 눈을 떴다가 어느새 감는 아버지 눈썹에 하얀 눈이 내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