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끄러움은 온전히 내 몫, 드러내야 성장한다.
완벽한 시작은 없다. 부족함을 드러내고 아프지만 나의 본모습을 바라보는 과정이 있어야 한 단계 나아간다.
중학교 아이가 다니는 학원을 보니 요즘 수학 학원들은 거의 매주 테스트를 본다. 시험은 얼마나 피하고 싶은 것인지 너무나 잘 알고 있어서 아이를 생각할 때 가끔 안타깝기도 하지만 내심 학원이 매주 시험을 보게 하는 것이 만족스럽기 그지없다.
미국에서 지낸 지난 2년 정도의 시간 동안 큰아이와 나는 학습태블릿을 이용하여 온라인으로 한국의 수학을 공부했고 열심히 진도를 나간다고 나갔었다. 그러나 엄마인 내가 아이에게 매번 시험을 보게 강요하기는 어려웠고 진도라도 나가는 것이 어디냐며 안주하고 있었다. 그러다가 ‘시험’도 연습이 필요한 것이고 ‘대치동 학원’들은 매주 시험을 보는 시스템이기 때문에 본인은 미국에 있어도 아이 진도에 맞춰서 시험을 보고 있노라는 주변 엄마의 충고에 정신이 들었다. 시험도 봐 버릇해야 떨리지 않을 것이고 시간에 맞춰서 문제를 풀어낼 수 있겠다는 생각에 아이에게 시험을 5번 보면 원하는 것을 하나 사주겠다는 ‘딜’을 걸고 ‘엄마표 시험’을 보게 하였다.
처음에는 시간을 정하고 그 안에 문제를 풀어내야 한다는 압박감에 아이가 안절부절을 못하면서 시험을 풀어나갔고 급기야 시간 안에 다 풀지 못하자 울기까지 했다. 학교 시험도 아니고 학원 시험도 아니고 엄마만 확인하는 엄마표 시험지이라서 말이 시험이지 못 봤다고 어디 기록이 되지도 않는 것임에도 단어 자체가 주는 압박이 있었던 모양이었다.
시간을 정해놓고 문제를 푸는 과정을 통해 나를 드러내게 된다. 내가 아는 것이 뭔지, 모르는 것이 뭔지, 실수하는 것이 뭔지가 1시간 안에 들통이 나는 것이다. 이렇게 자신의 실력에 대해 까발라지면 부족한 단원이 무엇이고 어떤 유형을 못하는지 알게 되어서 극복할 수 있는 방법이 나온다. 많은 연습을 거치고 이제는 매주 시험을 보는 고통도 곧잘 감내하며 부족한 부분에 대해 스스로 보충을 하려고 한다.
브런치에 글을 쓰기 시작한 것도 이런 이유에서이다. 늘 재판부에 제출하는 서면을 쓰고 퇴고하는 과정을 거쳤던 사람이지만 불특정 사람들에게 오픈된 적은 없었던 것 같다. 삶에 대한 단상들을 지인들과 공유하는 톡이나 수다가 아닌 좀 더 정제시켜서 공유하고 싶은 욕구가 생긴 것이다.
그런데 막상 시작하고 보니 상당히 나의 부족함이 드러나는 듯하다. 아직 부끄러움이 있다. 건전한 피드백의 과정을 통해 메타인지를 장착하여 점차 나아지는 작가가 되려는 것이 브런치를 시작한 나의 성장의 목표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