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원규 Nov 27. 2024

《사인 코사인의 즐거움》

어렵지만 아름답고 실제적인 삼각함수의 역사

수포자란 말이 일상에서 쓰일 정도로 사람들이 벽을 느끼는 존재인 수학. 그런 수학을 사람들에게 더 흥미롭게 소개하기 위한 책들이 많이 나왔고 많은 책들이 사라졌습니다. 오늘 소개할 책도 그 사라진 책 중 하나입니다. 2003년 3월 15일 한국에 번역 출판되었으나 절판된, 《사인 코사인의 즐거움》입니다.

《사인 코사인의 즐거움》 표지

글쓴이 엘리 마오는 수학자이자 수학사학자로, 미국 시카고 로욜라대학교에서 수학사를 가르쳤으며 여러 권의 수학과 수학사 대중 서적으로 명성을 얻었습니다. 영어 위키백과에서도 이 분을 찾아볼 수 있습니다. 한국에 번역된 책은 이 책 외에도 《오일러가 사랑한 수 e》, 《피타고라스의 정리》, 《무한, 그리고 그 너머》가 있으나, 이 책들도 모두 절판된 상태입니다. 이 책의 원제는 《삼각함수의 즐거움》(Trigonometric Delights)으로, 1998년 처음 출판되었으며 프린스턴 대학교 출판부의 프린스턴 과학 라이브러리 컬렉션에 포함되어 있습니다. 원서는 여전히 프린스턴 대학교 출판부와 아마존에서 판매 중이며 아마존 평점도 4.4점입니다.


수학자이자 수학사학자인 글쓴이의 활동 분야에 걸맞게, 이 책은 약 4000년 전에 이집트 서기가 작성한 파피루스에서 이야기를 시작합니다. 비록 이 파피루스에는 삼'각'함수에 걸맞은 '각'은 없지만, 삼각형을 이루는 변 사이의 비율이라는 원시적인 삼각함수의 개념을 처음으로 만날 수 있습니다. 이 조그마한 시작에서 인류가 기초적인 삼각함수를 발견하는 과정, 그리고 그 삼각함수가 기하학을 벗어나 발전하고 응용되는 모습을 보여줍니다.


글쓴이는 책을 구성하는 주제들을 엄밀한 연대기를 그려내고자 하는 목적이 아니라, 삼각함수의 매력과 흥미를 끌어내기 위한 목적으로 선택했습니다. 그래서 제목에 '즐거움'(Delights)이 들어가는 것입니다. 저는 고등학교 때 이 책을 사서 즐겁게 읽었으니, 적어도 저에게는 글쓴이의 의도가 확실히 먹혀들어갔습니다.


프롤로그와 열다섯 장 사이에는 사잇장 여덟이 들어가, 고대 이집트와 바빌로니아 수학을 보여주는 맨 앞 두 사잇장을 지나면 삼각함수에 기여한 수학자 여섯 명이 나옵니다. 원주율을 표현하는 무한곱을 처음 발견하고 삼각함수로 45차 방정식의 해를 구한 프랑수아 비에트, 복소수의 n제곱근을 구할 수 있는 드무아브르의 공식을 남긴 아브라암 드무아브르, '아녜시의 마녀의 곡선'으로 이름을 남긴 여성 수학자 마리아 아녜시 등의 이야기도 잊을 수 없지만, 저에게 가장 인상적인 인물은 에드문트 란다우였습니다. 기하학이 없이는 존재할 수 없을 것 같은 삼각함수를 그림 하나 안 그리고 설명하는 기행을 보여줬기 때문입니다. 사인 함수와 코사인 함수를 무한급수로 정의하고, 삼각함수의 덧셈정리에서 피타고라스의 정리를 유도하는데, 제가 고등학생 당시 함수를 무한급수로 표현할 수 있는 테일러 급수의 정체를 몰랐기에 란다우의 기행은 저에게는 더 충격적이었습니다.


책에서 다루는 화제들은 실생활이나 기술의 발전과 깊이 관련이 되는 것도 있고, 순전히 수학적인 아름다움을 보여주는 것도 있습니다. 그중에서도 제게 기억에 남는 것을 들자면, 실제 응용에서는 메르카토르 도법입니다. 이 메르카토르 도법은 지구상의 면적을 보존하지 못하기 때문에, 일반인에게는 아프리카를 작게 보이게 하고 유럽을 뻥튀기하는 지도라고 욕을 먹습니다. 그러나 메르카토르 도법이 발명되었을 당시 망망대해에서 배를 목적지로 향하게 하기 위해서는 지구상의 위선과 경선이 지도에서 직사각형 격자로 표시되어야 하고 배가 향하는 방향이 경선과 일정한 각으로 나타나야 하는데 그 결과가 바로 메르카토르 도법입니다.


이 도법의 제작자 게라르두스 메르카토르는 자기 지도에 담긴 수학적 원리를 구체적으로 설명한 적이 없고, 메르카토르 도법의 수학적 원리를 밝혀낸 수학자 에드워드 라이트는 메르카토르 도법의 수학적 비밀을 노가다 계산으로 풀었습니다. 그런데 마침 당시 로그가 발견되어 천문학자의 수명을 두 배로 늘려주었고, 로그에 열광한 사람들이 온갖 함수들의 로그 표를 만들다가 우연히 탄젠트 함수의 로그 표가 라이트의 적분 표와 일치한다는 것을 알아냈습니다. 이는 곧 라이트의 길을 따라 시컨트 함수를 적분하면 로그 탄젠트 함수가 된다는 추측으로 이어졌고, 아이작 배로가 고등학교 수열 문제 풀이에서 배우는 부분분수 분해로 이 추측을 증명했습니다. 저에게는 이 과정이 우연에 우연이 겹쳐 놀라운 발견으로 이어지는 학문의 발전으로 인상에 남았고, 부분분수 분해가 단순 계산 노가다가 아니라 “지도 제작자들의 낙원”(책 13장의 제목)으로 이어지는 길이라는 것도 뜻깊었습니다.


삼각형의 탄젠트 법칙과 탄젠트 합이 곱과 같다는 공식.


수학적인 아름다움으로 기억에 남는 것은 탄젠트 함수를 나타내는 무한 합과 탄젠트 공식, 그리고 삼각형을 이루는 세 각 α, β, γ에 대해 성립하는


tan α + tan β + tan γ = tan α tan β tan γ


이 공식입니다. 삼각형에서는 세 각의 탄젠트 합이 탄젠트 곱과 일치한다는 건데, 양수의 산술평균이 기하평균보다 항상 크거나 같다는 정리에 이 공식을 대입하면 예각삼각형에서 세 각의 탄젠트 곱은 정삼각형일 때 3√3으로 가장 작다는 결론으로 이어집니다. 비록 이 책을 그때 수학 선생님께 가져가셔 보여드렸을 때에는 삼각형에서 세 각의 탄젠트는 독립이 아니라서 산술 기하평균 관계를 그대로 적용하면 안 된다는 지적을 받았지만요. 그 때문에 더 기억에 남는 것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책은 1장부터 9장까지는 고등학생, 10장부터 13장까지는 이공계 대학생을 대상으로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한국에서는 6차 교육과정까지라면 고등학생이 읽을 수 있을 것 같은데, 7차 교육과정 이후로는 복소평면이 빠지고 삼각함수의 각의 합성 등의 주제가 공통 교육과정에서 선택교육과정으로 옮겨가는 등 고등학생이 그냥 읽기에는 어려운 책이 되고 말았습니다. 고등학교 3학년이면 읽을 수 있을 것 같은데 한국에서 고등학교 3학년이 입시에 도움이 안 되는 교양 수학 책을 읽을 여유가 있을까 싶네요.


그리고 대학교로 넘어가도 수학과 대학생에겐 너무 가벼운 책이고 수학과가 아닌 이공계생이라면 수학을 의무로 익히려고 할 따름이지 굳이 수학에 흥미를 더 가지려고 할 마음이 생길 것 같지는 않습니다. 이 책은 복소함수론과 푸리에 급수가 나오기 때문에 대학교 2학년 정도는 되어야 끝까지 제대로 독파할 수 있습니다. 제가 너무 변명을 늘어놓은 것 같지만, 한국에서 수학 교양서적으로 자리를 잡기에는 이 책이 목표로 하는 예상 독자층이 너무 어정쩡한 것 같습니다.


한 가지 책을 더 어렵게 하는 점을 들면 4장입니다. 4장은 삼각함수를 해석학의 영역으로 가져오는데, 분명 고등학교 과정으로 해독이 가능해야 하지만 오일러의 공식, 드무아브르의 정리, 편미분방정식, 푸리에 정리 등 고등학교 과정에서는 너무나 난해한 물건들이 잠깐씩이지만 얼굴을 비추고 나갑니다. 그리고 4장을 어렵게 하는 드무아브르의 정리를 다루는 사잇장 아브라암 드무아브르는 프랑수아 비에트에 밀려 5장 다음에서야 나옵니다.


비록 어떤 이든 쉽게 읽을 수 있는 책은 아니지만, 삼각함수에 지적인 도전을 하고 싶거나, 이미 배운 삼각함수의 매력을 찾아가고 싶은 분들에게 권하고 싶습니다. 절판된 책이라 쉽게 구할 수는 없지만요.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