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렁이 인(蚓)의 초기 형태에서 고를 균(勻)이, 고를 균(勻)에서 큰소리 굉(訇)이 파생되었다. 이 큰소리 굉(訇)에서 파생된 한자들이 있으나 대부분 상용 한자가 아니므로 다루지 않았다.
큰소리 굉(訇)이 들어가 있는 한자로 일상 생활에서 접할 수 있는 한자로는 국문할 국(鞫)이 있는데, 어문회 한자 시험에서는 이 한자를 성/국문할 국(鞠)과 동자 관계로 놓고 鞫은 준특급, 鞠은 2급 한자로 지정해 鞫보다는 鞠의 사용을 장려하고 있다. 인명용 한자에서는 이 둘을 별개로 수록했다.
비록 현대에는 鞫을 쓸 자리에도 鞠을 쓰고 있지만, 두 한자는 원래 별개의 한자다. 《설문해자》에서는 鞫을 다음과 같이 쓰고 있다.
鞫의 소전과 해서화(⿱竹⿰幸⿹勹言). 출처: 小學堂
즉, 鞫은 원래 수갑을 나타내는 다행 행(幸)과 사람 인(人), 그리고 말을 뜻하는 말씀 언(言)이 뜻을 나타내 죄인을 무릎 꿇리고 말로써 신문하는 것을 나타내는 한자며, 큰소리 굉(訇)과는 무관하다. 《설문해자》에서는 때로는 言이 생략되기도 한다고 한다. 그런데 위의 대 죽(竹)은 왜 들어가 있는 걸까? 허신은 이 竹이 소리를 나타내는 것이라고 해설했는데 이에 따르면 鞫은 竹에서 파생된 한자인 것이다.
마왕퇴한묘에서 출토된 성/국문할 국(鞠). 출처: 자오핑안(趙平安),〈“국문할 국”과 상관 있는 여러 글자들의 풀이〉(釋“鞫”及相關諸字).
그러나 전한에서 출토된 성/국문할 국(鞠)을 보면 幸 위에 올라가 있는 글자가 竹이 아니라 스물 입(廿)같이 보이기도 하고 입 구(口) 같이 보이기도 한다. 그렇다면 이는 갑골문에서 출토된 다음 문자와 바로 연결된다.
鞫의 갑골문. 출처: 小學堂 본래 이 문자는 잡을 집(執)의 갑골문으로 여겨졌다.
執의 갑골문과 해서. 출처: 小學堂 그러나 잘 살펴보면 執에는 없는 口가 幸 위에 겹쳐져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이 형태가 따로 갑골문이나 금문에 나오기도 한다.
鞫의 왼쪽 부분이 독립적인 문자로 쓰인 갑골문. 출처: 小學堂 執에 있는 다행 행(幸)은 수갑이나 칼 등 형틀의 일종으로 보는데, 幸 위에 口가 겹쳐지면서 목에 칼을 걸친 모습이 되었다. 따라서 이 문자가 鞫의 갑골문이 되고, 목에 칼을 걸친 사람을 나타낸 것이다. 후에 뜻을 강화하기 위해 말씀 언(言)이 추가되고, 위의 口는 廿이나 竹 등으로 변형되다가(《설문해자》에 수록된 게 이 형태) 마침내 아래의 幸과 융합하면서 가죽 혁(革)으로 와전된 것이 현재의 鞫이다.
이 한자는 음과 뜻이 비슷한 수갑 곡(梏)·외양간 곡(牿)과도 연결된다. 실제로 梏·牿과 鞫이 상통하는 관계로 쓰인 용례도 있다. 그렇기 때문에 위의 갑골문을 執이 아닌 鞫으로 따로 해석한 것이기도 하다.
《설문해자》에서는 鞫에서 言이 빠진 형태를 '생략형'으로 보았지만, 이상의 분석에 따르면 오히려 이게 원형이고 鞫은 나중에 만들어진 한자다. 이 한자는 유니코드에도 수록되어 있지만, 기본 평면 밖이라 그대로 쓰면 깨지기 쉬운 한자이므로 파자해서 ⿱竹⿰幸人으로 쓰겠다. ⿱竹⿰幸人은 《설문해자》에서 두 글자의 성부로 쓰이고 있는데, 바로 다할 국(⿱宀⿱竹⿰幸人)과 뻐꾸기 국(⿰鳥⿱竹⿰幸人)이다. 설문해자의 설명은 다음과 같다.
다하다{窮}를 뜻한다. 집 면(宀)의 뜻을 따르고 ⿱竹⿰幸人는 소리를 나타낸다.
은 ⿱宀⿱竹⿰幸人에서 혹 구멍 혈(穴)의 뜻을 따른 것이다.
갈국(秸⿰⿱竹⿰幸人鳥)이라는 새인데, 곧 뻐꾸기{尸鳩}를 뜻한다. 새 조(鳥)의 뜻을 따르고 ⿱竹⿰幸人는 소리를 나타낸다.
그 외에도 ⿱竹⿰幸人가 아니라 ⿱竹⿰幸⿹勹言의 생략형에서 파생되었다고 서술한 한자도 있다.
누룩{酒母}이다. 쌀 미(米)의 뜻을 따르고 ⿱竹⿰幸⿹勹言의 생략형이 소리를 나타낸다.
혹 보리 맥(麥)의 뜻을 따르고 鞠의 생략형이 소리를 나타내 이렇게 쓰기도 한다.
일정(日精 - 국화의 별명)으로, 가을에 꽃이 핀다. 풀 초(艸)의 뜻을 따르고 ⿱竹⿰幸⿹勹米의 생략형이 소리를 나타낸다.
혹 생략해 이렇게(⿱艸⿰幸人) 쓰기도 한다.
竹과 艸는 비슷하게 생겨서, 둘 다 원래 鞫의 형태에서 幸 위에 있던 口가 廿을 거쳐 변형된 형태로 보이는데 《설문해자》에서 ⿱竹⿰幸人는 국문하다로, ⿱艸⿰幸人는 국화로 달리 풀이한 것을 보면 어느 시점에서 鞫이 국화의 뜻으로 가차되어 쓰였다가 ⿱艸⿰幸⿹勹米의 형태로 독립해 나간 것 같다.
한편 鞠은 《설문해자》에서는 “답국(축국)을 뜻한다. 가죽 혁(革)이 뜻을 나타내고 움큼 국(匊)이 소리를 나타낸다. ⿱竹⿰幸⿹勹革은 鞠에서 혹 ⿱竹⿰幸人의 뜻을 따른 것이다.”라고 풀이해 革과 匊이 합한 것으로 본다. 그러나 위의 마왕퇴한묘에서 발굴된 형태를 보면 《설문해자》에서 서술한 혹체가 원래의 글자인 것 같다. 지금 이 글자는 성, 국문하다, 다하다, 기르다 등 《설문해자》에 나와 있는 축국 외에도 다양한 뜻으로 쓰이는데, 이 중 '다하다'는 지금은 쓰이지 않는 ⿱宀⿱竹⿰幸人를 흡수한 것 같다.
한편 누룩 국(麴)은 지금은 보리 맥(麥)이 뜻을 나타내고 움큼 국(匊)이 소리를 나타내는 형성자로 쓰지만, 원래는 鞠이 《설문해자》에 나오는 누룩 국(⿱竹⿰幸⿹勹米)과 같은 한자였을 것이다. 鞠에 있는 쌀 미(米)를 옛날에는 麥으로 바꿔 쓰기도 했기 때문이다. 이것도 鞠이 匊에서 소리를 가져온 한자가 아니라는 것을 방증한다. 그렇다면 본디 鞠은 누룩(⿱竹⿰幸⿹勹米), ⿱竹⿰幸⿹勹革은 축국을 뜻했으나 두 한자가 나중에는 같은 한자로 쓰이면서 鞠이 ⿱竹⿰幸⿹勹革의 의미까지 흡수한 것이다.
지금의 鞠은 원래의 뜻 외에도 鞫, ⿱竹⿰幸⿹勹革, ⿱宀⿱竹⿰幸人의 뜻을 흡수하면서 鞫에서 파생된 한자들을 대표하는 한자처럼 되었다. 그렇다면 '기르다'라는 뜻으로 쓰였으나 현재에는 발견되지 않은 鞫에서 파생된 한자가 따로 있었을 수도 있다. 鞠이 그냥 '기르다'로 가차해서 썼을 수도 있지만.
⿱竹⿰幸人(국문할 국, 급수 외 한자)에서 파생된 한자들은 다음과 같다.
⿱竹⿰幸人+米=⿱竹⿰幸⿹勹米→鞠(성/국문할 국): 국문(鞠問/鞫問), 축국(蹴鞠) 등 어문회 2급
⿱竹⿰幸人+言=⿱竹⿰幸⿹勹言→鞫(국문할 국): 국문(鞠問/鞫問), 친국(親鞠/親鞫) 등. 어문회 준특급
鞠에서 파생된 한자는 다음과 같다.
鞠+艸(풀 초)=蘜→菊(국화 국): 국화(菊花), 수국(水菊) 등. 어문회 준3급
⿱竹⿰幸人(국문할 국)에서 파생된 한자들.
鞫은 목에 칼을 차고 있는 사람에게서 출발해 죄인을 국문하다는 뜻을 지니게 되었고, 국문은 죄를 탐구(?)하는 것이기 때문에 궁구하다는 뜻도 지니게 되었다. 그리고 죄인이 국문을 받는 모습에서 따서 공손한 태도를 나타내고자 몸을 굽히는 모습도 가리키는데, 이 뜻 역시 鞠이 가져가 국궁(鞠躬)이라는 단어에서도 鞠을 쓴다.
한편 鞠의 뜻 중 누룩은 술을 길러내는 것이기 때문에, 기르다는 뜻은 누룩에서 인신된 것이 아닐까 한다.
⿱宀⿱竹⿰幸人의 뜻을 지닌 ⿱宀⿱竹⿰幸人의 파생자는 다음과 같다.
⿱宀⿱竹⿰幸人은 宀(집 면)이 뜻을 나타내고 ⿱竹⿰幸人(=鞫)이 소리를 나타내며, ⿱竹⿰幸人의 뜻을 가져와 죄가 다할 때까지 캐내는 것처럼 다하다는 뜻을 나타낸다. 이 한자는 다할 궁(窮)과 음과 뜻이 모두 비슷하다.
鞫(국문할 국)은 예전에는 ⿱竹⿰幸⿹勹言·⿱竹⿰幸人의 형태로 썼는데, 갑골문의 목에 칼을 찬 죄수를 나타낸 문자가 변형된 것으로 죄수를 심문하는 것을 뜻한다.
⿱竹⿰幸人에서 鞠(성/국문할 국)·鞫(국문할 국)이 파생되었고, 鞠에서 菊(국화 국)이 파생되었다.
⿱竹⿰幸人에서 파생된 한자 중에는 국문 과정과 관련된 의미를 지니는 한자들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