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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원규 Nov 04. 2024

《우리말 '비어', '속어', '욕설'의 어원 연구》

우리 마음의 어두운 면을 보여주는 비어, 속어, 욕설

《우리말 '비어', '속어', '욕설'의 어원 연구》, 조항범, 충북대학교출판부, 2019.02.15.

일상생활에서 비어, 속어, 욕설은 함부로 써서는 안 되는 말로 여겨서 학자들이나 일반인들이나 그다지 주목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비어, 속어, 욕설은 일상생활에서 결코 없어지지 않습니다. 비어, 속어, 욕설은 우리들의 부정적인 감정을 표출할 수 있는 통로가 될 뿐만 아니라, 세상의 부조리함을 적나라하게 드러내는 폭로의 수단이 되기도 합니다. 부정적인 감정과, 부조리한 세상과, 어두운 악이 없어지지 않는 한 비어, 속어, 욕설은 결코 없어지지 않을 것입니다. 따라서 비어, 속어, 욕설은 금기시하고 쉬쉬해야 할 대상이 아니며, 연구하고 직면해야 할 대상입니다.


글쓴이 조항범은 충북대학교 국어국문학과 교수로, 《그런, 우리말은 없다》·《정말 궁금한 우리말 100가지》·《국어 어원론》·《우리말 어원 이야기》 등 우리말 어원을 다루는 책을 많이 썼습니다. 최근 2022년에는 《우리말 어원 사전》을 냈는데, 그에 앞서서 2019년에 비어, 속어, 욕설만을 중점적으로 다룬 책이 이 책입니다.


목차를 살펴보겠습니다.


1장. ‘卑語’의 어원 13

1.1. ‘女性’ 관련어 14

가시내, 계집, 계집애, 년, 여편네(女便-), 연놈, 오맞이꾼(五---), 오무래미, 종간나, 통지기, 할망구, 화냥년

1.2. ‘男性’ 관련어 46

개구멍서방(---書房), 건달꾼/건달뱅이, 공돌이(工--), 꼽사리꾼, 놈, 놈팡이, 불상놈(-常-), 인마, 텡쇠

1.3. ‘夫婦’, ‘子息’, ‘아이’ 관련어 65

가시버시, 가시아비, 가시어미, 덤받이, 서방, 시러베아들, 조무래기, 후레자식(--子息)

1.4. ‘職業’, ‘職分’ 관련어 84

가정오랑캐(家丁---), 각설이(却說-), 딴따라, 땡추, 비뱅이, 장돌뱅이(場---), 졸개(卒-), 타짜꾼

1.5. ‘身體 部位 異常者’ 관련어 103

검둥이, 곰보/얽보, 곱사등이, 귀머거리, 꼽추, 문둥이, 벙어리, 앉은뱅이, 옥니박이, 코머거리

1.6. ‘身體’, ‘모습’ 관련어 124

꼬락서니, 꼬랑지, 매가리, 배알, 사타구니, 이빨, 창알이

1.7. ‘出身地’, ‘異民族’ 관련어 138

강놈(江-), 갯놈, 두멧놈, 양코배기(洋---), 오랑캐, 짱꼴라, 쪽발이

1.8. ‘精神遲滯者’ 관련어 154

꺼벙이, 등신(等神), 미치광이(--狂-), 바보, 병신(病身), 아둔패기, 칠뜨기(七--), 팔푼이(八--)

1.9. ‘性格’, ‘氣質’ 관련어 174 개망나니, 게으름뱅이, 나부랭이, 얌생이꾼, 얌체, 염알이꾼(廉----), 자린고비(--考?), 좀팽이 1.10. ‘言行’, ‘생각’, ‘마음’ 관련어 199

개나발, 비럭질, 소갈머리, 얀정, 채신(-身)

1.11. 기타 206

공갈빵(恐喝-), 보리윷


2장. ‘俗語’의 어원 213

2.1. ‘女性’ 관련어 214

갈보, 논다니, 계(-鷄)

2.2. ‘男性’ 관련어 222

고바우, 노틀, 제비/제비족(--族)

2.3. ‘身體’ 관련어 229

가슴패기, 골통, 눈깔, 가리, 모가지, 무르팍, 배지, 배퉁이, 볼때기/볼따구니/볼퉁이, 아가리, 우거지상(---相), 터거리, 턱주가리

2.4. ‘性格’, ‘氣質’ 관련어 253

개차반(--茶飯), 깡통(-筒), 깡패(-牌), 노가다, 돌팔이, 따까리, 또라이, 빨갱이, 얌치머리, 양아치, 쪼다

2.5. ‘對象’, ‘物件’ 관련어 290

닭똥집, 따발총(--銃), 쇠천, 짱깨집

2.6. ‘言行’ 관련어 300

갈구다, 개소리괴소리, 개판, 구라, 꼴값, 노가리, 노라리, 맞짱, 사바 사바, 엿 먹어라, 지랄, 진절머리, 칠칠맞다, 토끼다

2.7. ‘죽음’ 관련어 336

골로 가다, 뒈지다, 물고(物故)를 내다, 황천(黃泉)으로 보내다

2.8. ‘氣分’, ‘體面’, ‘態度’ 관련어 345

강짜, 김새다, 눈치코치, 뻘쭘하다, 야코, 좆나게, 쪽팔리다, 쫑코

2.9. 기타 360

개씨바리, 골백번(-百番), 씨알머리, 젬병(-餠)


3장. ‘辱說’의 어원 371

3.1. ‘性行爲’ 관련어 372

네에미/네미/니미/니기미, 네미랄(럴)/니미랄(럴)/예미랄(럴)에미랄(럴), 제미붙을, 제미/지미/지기미, 제할/제미랄/지미랄(럴), 제길할/제기랄/ 제길/제기, 씹새끼/씹새, 씨팔놈/씨팔

3.2. ‘刑罰’ 관련어 403

경을칠(黥--)/경칠(黥-), 난장맞을(亂杖-)/난장칠(亂杖-), 넨장맞을/ 넨장/?장/옌장/넨장칠/넨장할·젠장맞을/젠장/젠장할, 오라질/우라질, 오살할(五殺-)/오사랄(五--), 육실할(戮--)/육시랄(戮--)

3.3. 기타 424

개새끼, 떡을할, 빌어먹을/배라먹을, 염병할(染病-)


이 책에서는 비어, 속어, 욕설을 각각 '낮추는 말', '통속적이고 저속한 말', '남을 모욕하거나 못마땅한 상황을 한탄하는 말'로 정의하고, 목차에서 보이듯이 각 낱말의 뜻이나 어원에 따라 몇 가지 범주로 묶어서 다룹니다. 오래전부터 널리 쓰인 말도 있는가 하면 한때 유행했다가 사라진 말, 최근에서야 널리 쓰인 말도 있습니다. 현대적인 말인 줄 알았는데 의외로 역사가 깊은 말도 있다는 것을 읽어보면 알 수 있습니다.


글쓴이는 비어, 속어, 욕설의 역사를 살피기 위해 사전 외에도 고전 문헌이나 근현대 문학 작품, 신문 등 풍부한 자료에서 이런 말들이 어떻게 쓰였는지를 끈질기게 찾아냅니다. 예를 들면 1975년의 《새우리말큰사전》에서야 '딴따라패'의 형태로 수록되는 딴따라가 동아일보의 1959년 1월 7일 기사에 이미 실려 있어 1950년대까지 거슬러가는 말임을 보여줍니다.


이렇게 먼저 각 낱말이 쓰인 예시들을 출전과 함께 제시하고, 낱말의 역사를 정리한 뒤에 어원을 본격적으로 탐구합니다. 그런데 어원이 하나로 깔끔하게 설명이 되기도 하지만 그렇지 않은 예도 많이 있습니다. 여러 가지 설이 있으나 어떤 설이 옳은지 판단하기 어려운 경우도 있고, 도저히 분석이 되지 않는 부분이 있는 낱말도 있습니다.


그럼에도 글쓴이가 어원을 알아내기 위해 학자의 양심을 다했다는 점을 짐작할 수 있는 대목이 있습니다. 벙어리의 어원을 설명할 때 본인이 2014년 주장한 '벙을-'+'-어리'보다 홍윤표가 2008년에 주장한 '벙을-'+'이'가 더 믿을 만하다고 하니, 자신의 새로운 학설보다 남의 옛 학설이 더 낫다고 솔직하게 인정하는 모습입니다. 물론 학자라면 모름지기 자신이 틀린 것은 틀렸다고 인정해야 하지요. 그러나 선행 연구가 자기 연구보다 낫다고 하는 건 연구 과정에서 사전 준비가 미흡했다는 것으로 보일 수 있는데 그럼에도 이렇게 하는 것이 겸손이요 참 학자의 자세라는 생각이 듭니다.


책에는 어떤 그림도 없이 글만 가득하고, 출판도 대학교 출판부에서 했기 때문에 딱딱한 학술 서적으로 보일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형식은 학술 서적이라 해도 일반 대중을 대상으로 한 책으로, 적어도 일반 사전보다 더 딱딱하지는 않습니다. 오히려 어원사전이고 여러 가지 가설들을 자세히 살펴보기 때문에 평소에 생길 수 있는 궁금증을 잘 짚어 줍니다. 무리하게 결론을 내지 않고 모르는 것은 모른다고 인정하기 때문에 확실한 답을 원하는 사람에게는 답답할 수도 있긴 합니다.


이 책에 나오는 어원들은 이제는 인터넷에서도 쉽게 찾아볼 수 있는 말들도 있지만, 인터넷의 어원 설명은 단편적인 것이 많고 이 정도로 학술적인 근거를 탄탄하게 갖추고 다양한 설들을 소개하는 것은 많지 않습니다. 더구나 아직 인터넷에서 찾아보기 어려운 풀이도 적지 않습니다. 단순히 어원 지식을 늘리기 위한 용도로도 이 책은 손색이 없습니다만, 이 책을 읽어야 하는 이유는 이뿐만이 아닙니다.


일반적인 낱말의 어원을 통해서도 알 수 있는 것이지만, 비어, 속어, 욕설을 보면 사회의 변화도 엿볼 수 있습니다. '강놈'은 서울 주변 강가 마을에 사는 사람을 낮추어 부르는 말인데, 옛날에는 한강 주변에는 뱃사공, 어부, 젓갈 장수, 소금 장수, 독장수와 같은 사회적으로 천대를 받는 사람들이 모여 살았기 때문에 생긴 말입니다. 지금은 한강 주변이 한강뷰라 해서 풍광이 좋은 고급 주거 단지들로 즐비하다는 것을 생각하면, 상전벽해의 변화가 일어난 것입니다.


그리고 비어, 속어, 욕설의 어원은 일반적으로 느끼는 어감보다 훨씬 더 극단적이고 잔인하기도 합니다. 3장의 욕설 대부분을 장식하는 성관계 관련 욕설은 차마 입에 올릴 수도 없는 패륜에서 유래하며, 형벌 관련 욕설은 잔인한 육체형에서 유래합니다. 물론 어원 의식은 점차 희미해지고 낱말 자체가 대중들이 쓰면서 부여하는 뜻이나 어감이 더 중요해지지만, 비어, 속어, 욕설이 아무리 없앨 수 없는 것이라고 해도 권장할 만한 것은 아니라는 점을 고려하면 비어, 속어, 욕설을 덜 쓰게 될 수도 있습니다. 어원을 알기 전에는 일상적으로 쓰던 말이었지만, 알고 나서는 이전에 그런 비어, 속어, 욕설로 표현해 온 한 어감에 비해 원래 낱말이 너무나 자극적이고 폭력적이라는 생각이 들 수 있습니다.


더 나아가서, 비어, 속어, 욕설의 어원은 우리 마음속에 있는 어두움을 보여 줍니다. 우리가 무엇을 비천하게 여기는지, 저속하게 여기는지, 그리고 무엇으로 사람을 모욕하는지를 볼 수 있으니까요. 목차에서 1장의 비어와 2장의 속어를 보면 신체나 정신 관련 비어나 속어가 많은 것을 볼 수 있는데, 이를 통해 우리들은 신체나 정신이 보통과 다른 사람을 천시하고 모독해 왔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신체 관련 비어는 장애가 아니라 그냥 특이하게 눈에 띄기만 해도 비어나 속어의 대상이 되기도 합니다. 이는 우리들이 신체 일부가 눈에 띄는 사람을 향해 그 사람을 사람으로 보지 않고 비인간화해서 비하하는 것을 보여줍니다. 성격이나 언행, 체면, 태도 등과 관련된 속어들은 도덕적인 판단과 이어지는데, 이것은 현대 심리학에서 도덕적 판단과 혐오가 깊은 관련이 있다는 것과도 무관하지 않을 것입니다.


지난번에 살펴본 《편향의 종말》에서 편향을 끝내는 방법은 결국 사람을 성별이나 직업이나 연령이나 인종 등 범주로 보지 않고 인간 그 자체로 보는 것이라고 했는데, 비어, 속어, 욕설에서 인간을 인간 그 자체로 보지 않고 어떤 범주에 집어넣고 비인간화하는 경향이 있다는 것은 결코 가볍게 볼 수 없습니다.


비어, 속어, 욕설의 어원을 탐구하는 것은 단지 우리가 쓰는 말의 뿌리를 아는 데에서 그치지 않습니다. 말은 사회가 지나 온 발자국이며, 우리의 마음을 비추는 거울이기도 합니다. 비어, 속어, 욕설을 아는 것은 사회와 우리 마음의 어두운 면에 빛을 비추는 첫 발걸음이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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