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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원장 Apr 28. 2024

‘아버지가 딸을 구한다고 믿지만 딸이 아버지를 구한다’

수많은 이들의 묘비명을 써줬던 이어령선생님은 일찍 세상을 떠난 딸 이민아목사의 묘비명은 쓸 수 없었다고 했다. ‘운명이여 오라’고 외쳤던 당대의 인문학자도 딸의 짧은 인생을 담을  단어를 고르지 못했다. 이민아 목사는 오래전 미국에서 갑자기 아들을 잃었다. 그의 묘비에는 ‘Resting his Father’s house’(아버지의 집에서 쉬다)라고 쓰여있다.


김한길 선생의 ‘눈뜨면 없어라’를 읽은 것은 군대를 제대할 무렵이였다. 한참 뒤에야 책에 등장하는 ‘미나’가 이어령 선생의 딸 이민아목사라는 사실을 알았다. 아버지 이어령 선생은 민아와 한길의 결혼을 반대했다. 이민아 목사 나이 22살 때다. ‘사랑은 맡겨두었다가 찾아쓰는 예금 통장이 아니라고’ 아버지를 설득했단다.


김한길선생의 아버지 김철은 동경대에서 공부하고 사회민주주의 운동을 하다 유럽으로 망명했다. 그 역시 어느 학보사에 쓴 글로 정보기관에 관심 인물이 되고 어린 부부는 결혼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무작정 미국으로 떠난다.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을 찾아 떠난 것이 아니라 유황의 불길을 겁내며 달아났다’.

 

‘눈뜨면 없어라’는 미국에서 이 어린 부부가 보낸 5년의 이야기다. 눈뜨기 전까지 무슨 일이 있었는지를 일기처럼 기록했다. 방탄유리가 있는 주유소에서 밤새워 일하다 흑인 손님에게 봉변을 당하거나 햄버거가게에서 점원으로 일하며 지켜본 이방인들의 삶을 적었는데, 사실은 그들이 이방인이였다. ‘나무들을 자르려고 도끼가 숲으로 들어왔을 때 나무들은 그 도끼의 자루가 자기들 중의 하나인 것을 알고 슬퍼했다’


‘눈뜨면 없어라’의 마지막 페이지.  


‘애니웨이, 미국 생활 5년 만에 그녀는 변호사가 되었고 나는 신문사의 지사장이 되었다. 현지 교포사회에서는 젊은 부부의 성공사례로 일컬어지기도 했다. 방 하나짜리 셋집에서 벗어나 바다가 내려다보이는 언덕위의 삼층짜리 새집을 지어 이사한 한달 뒤에 그녀와 나는 결혼생활의 실패를 공식적으로 인정해야 했다. 바꾸어 말하자면 이혼에 성공했다. 그때 그때의 작은 기쁨과 값싼 행복을 무시해버린 대가로’


어떤 소중함도 그 시간에 맞춰 이뤄져야 진짜 두껍게 소중해진다. 미국으로 떠난 젊은 부부가 성공을 위해 내달리며 잃은 것은 무엇일까. 김한길선생은 부인 이민아 목사의 말을 빌려 이렇게 전했다.


‘다섯 살 때였나 봐요. 어느날 동네에서 놀고 있는데 피아노를 실은 트럭이 와서 우리집 앞에 서는 거예요. 나는 지금도 그때의 흥분을 잊을 수 없어요. 우리 아빠가 그 시절을 놓치고 몇 년 뒤에 피아노 백대를 사줬다고 해도 나한테 그런 감격을 느끼게 만들지는 못했을 거예요’


그들은 ‘남편과 새끼들을 위해 바둥대고 눈치보고...중략, 우리는 그러지 말아야겠다. 그분들의 초라한 삶을 복수하기 위해서라도 우리는 참으로 멋지게 살아야겠다.’라고 다짐하지만 그러지 못했다. 행복해지는 것을 두려워하는 사람들처럼 기쁨과 쾌락을 유보하고 미래를 준비하는 여느 부지런한 한국인의 삶을 따랐다. 한참 뒤에야 이 젊은 부부는 자신들이 흘려보낸 시간에 무엇이 휩쓸려갔는지 깨달았다. 그렇게 인생의 경험을 나누고 각자의 삶을 향해 떠났다.


이민아 목사는 여러차례 중병과 맞서 싸웠다. 죽음과 시간을 다투는 딸 앞에서 무신론자였던 이어령선생은 신을 받아들였다. 2007년 7월 세례를 받고 딸의 여생의 편안함을 신에게 간절히 기도했다. 양자역학을 믿었던 미래학자는 그렇게 딸의 영성을 받아들였다. 자신이 쏜 화살은 과녁을 명중한 뒤 부러져 바닥에 떨어지지만 딸이 쏜 화살은 과녁을 뚫고 부르르 떨면서 진동을 일으킨다고 했다. 늙은 유심론자는 변화를 만드는 그 작은 차이를 ‘앵프라맹스 inframince’라고 했다. 자신의 지성은 은빛 화살이 하늘의 과녁을 통과하지 못하고 떨어진 영성의 부스러기라고 했다.


드라마 <삼체>에서


[물리학자인 예원타이는 신을 믿느냐는 질문에 답하지 못하고 침묵하다 홍위병들에게 맞아죽는다. 문명의 추락에 절망한 예원타이의 딸 예원제는 천문대에서 일하다 우연한 기회에 외계 문명과 접속하고 메시지를 주고받는다. 그 외계문명과 지구와의 과학의 차이는 인간과 메뚜기와의 그것과 비슷할까. 예원제와 추종세력은 예수를 기다리듯 그들의 재림을 기다린다. 외계문명의 양자 때문에 입자가속기에 과학이 설명할 수 없는 오류가 잇달아 발생하고 예원제의 딸 베라 예 박사는 동료 물리학자 사울에게 신을 믿느냐고 묻는다. 사울은 “물리학이 설명하지 못한다고 해도 그것이 신의 영역이 아니야”라고 답했다. 신의 존재를 부인하고 싶었던 젊은 과학자들은 미지의 외계 문명을 신처럼 숭배하던 예원제의 세력에 공격당한다. 예원제는 딸 베라 예 박사까지 버린다. 그들은 신을 믿은 것일까 과학을 믿은 것일까]


이민아 목사는 2012년 세상을 떠났다. 이어령 선생은 ‘죽음은 엄마의 세계로 건너오라는 명령이다’라고 했다. 그는 죽음이 생명을 떠나보내지만 말은 끝나는 것이 아니라고 했다. 딸의 아들이 죽고 딸마저 세상을 떠나자 늙은 아버지는 슬픔의 단어들을 어렵게 조합해 딸에게 사과했다. 미용실에서 잠이 들어 딸의 결혼식에도 지각한 부족한 아빠였던 그는 딸을 떠나보내고 딸과 함께 하지 못한 회한을 ‘딸에게 보내는 굿나잇 키스’에서 이렇게 전한다.


‘지금 약속할게 

네가 다시 올 수만 있다면 하루가 아니라

삼백예순날이면 어떠냐

서울 밤 풍경이 별처럼 빛나는 날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거기 있거라

이게 너에게 해주지 못한 말이야

그 전화에 대고 이렇게 말할걸...’


이 책이 책꽂이에 꽂혀 있다면 딸을 가진 아버지들은 언제든 울 수 있다. 모든 아버지에게 딸은 우주며 생명이며 신이다. 세상의 모든 딸들은 태어남으로서 아버지를 구한다는 말을 이제야 깨닫는다.


‘아버지들은 딸을 구한다고 믿고 있지만 사실은 딸이 아버지를 구하는 일이 더 많다. 그걸 알면 아버지들은 절대로 전쟁같은 것, 남의 생명을 빼앗는 폭력 같은 것, 숲을 사막으로 만드는 환경을 파괴하는 짓은 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생각해요’


나는 도서관에 기억할 누군가의 이름을 붙이는 서양의 관행이 늘 부러웠다. 안산둘레길을 걷다가 만난 ‘이진아도서관’은 그래서 더 반가웠다. 이진아도서관은 사고로 딸을 일찍 잃은 아버지가 딸의 이름으로 세웠다. 이어령선생은 2012년 탈북청소년 대안학교인 '열린 다음학교'에 자신이 출간한 책 인세 3천만 원을 기부했다. 다락방에는 탈북 청소년을 위한 천여 권의 책이 마련됐는데, 이 책방의 이름은 ‘민아의 방’이다. 죽음을 탄생의 그 자리로 돌아가는 것이지 영원히 닫혀버리는 것은 아니라고 했던 선생은 그렇게 또 세상을 떠난 딸을 기억했다.

이어령선생님과 이민아교수 1981 열림원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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