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천 년 전에 살던 땅으로 돌아온 사람들과 2천 년 동안 그곳에서 내내 살던 사람들이 또 싸운다. 어느 한 민족을 다 죽여야 싸움이 끝나려나 보다. 어디까지가 신의 뜻일까.
천년 전에도 기독교를 믿는 유럽인들과 이슬람을 믿는 서아시아인들이 이 땅을 차지하겠다고 2백년 동안 싸웠다. 대략 2백 만 명이 죽었다. 그때도 이유는 ‘신의 뜻’이였다.
이슬람교도들을 죽이면 천국에 간다고 했다. 젖과 꿀이 흐르는 땅에서 부와 명예를 약속했다. 1차 원정 때는 정작 예루살렘까지 가는 길에 기독교인들끼리 서로 더 많이 죽고 죽였다. 십자군원정은 자세히 들여다보면 교황과 왕들과 귀족들과의 갈등과 반목의 역사다.
말로는 신을 팔았지만, 십자군원정은 결국 돈이 지배했다. 백성들에겐 십자군에 참여하면 빚을 갚아준다고 했다. 십자군에 나서지 않은 사람들은 목숨 대신 돈을 냈다. 면죄부가 불티나게 팔렸다. 너도 나도 집과 땅을 팔려고 내놓으면서 가격이 1/4로 떨어졌다는 기록이 있다. 유태인들은 그때도 기독교인들의 재산을 담보로 현금을 빌려줬다
3차 원정 때는 프랑스의 필리프 2세와 영국의 리처드 1세(사자왕)가 함께 출병했는데 둘은 계속 다퉜다. 필리프 2세는 영국의 기사들에게 금으로 보수를 주겠다고 유인했고, 그러자 리처드 1세는 프랑스기사들에게 더 많은 금을 약속했다 -대중의 미망과 광기중에서/찰스 맥케이
영화 KINGDOM OF HEAVEN의 한 장면.
예루살렘을 지키려 온 주인공 발리앙이 죽은 병사들을 화장하려고 했지만 대주교가 말렸다.
“시신이 없으면 천국에서 부활을 하지 못한다네”
“이 시신들을 태우지 않는다면 우리는 모두 전염병으로 죽을 거예요. 하느님도 이해하실 거예요. 만약 이해를 못한다면 ...하느님이 아니겠죠”
그 대주교는 얼마 후 싸움이 기울고 성이 함락되기 직전에 발리앙에게 이렇게 말한다.
“협상을 해야 할 것 같아. 일단 이슬람으로 개종하는 게 좋을 것 같아... 회개는 나중에 하고”
한번은 기회가 있었다. 1993년에는 라빈 이스라엘 총리와 아라파트 팔레스타인해방기구(PLO) 의장이 ‘오슬로협정’을 맺었다. 이스라엘은 팔레스타인의 자치와 독립을 보장하고, 팔레스타인은 무장 해방투쟁을 접었다. 그렇게 두 민족은 땅을 내주고 평화를 건네받았다.
이듬해 두 정상은 노벨평화상을 받았다. 하지만 95년 라빈총리는 극우파 유대인의 총에 맞아 죽었다. 그들은 신이 주신 마지막 평화의 카드를 그렇게 버렸다. 그 시오니스트가 쏜 한발의 총알이 시민운동을 하던 하마스를 이슬람무장단체로 만드는 결정적 계기가 된다. 그리고 얼마나 많은 이스라엘 사람들이 하마스의 총탄에 죽었는가.
이스라엘은 국제법에 반하는, 심지어 미국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계속 사안지구 팔레스타인 자치촌으로 거주지를 넓혀나간다. 전세계 수많은 분쟁지역이 있지만 이렇게 신의 깃발을 높이들고 싸우는 곳이 또 있을까.
영화속 왕의 충신인 티베리아스가 발리앙을 떠나보내면서 이렇게 말한다.
“처음엔 신을 위한 전쟁인 줄 알았어. 하지만 돈과 땅을 위한 것이였어. 신께서 늘 함께 하시기를, 내 곁에는 더는 안계시지만...”
인도네시아와 말레이시아처럼 온건한 이슬람교도의 나라들도 계속 원리주의자들의 목소리가 세진다. 인도네시아는 혼전성관계를 불법으로 규정했고, 점점 의석수를 늘리고 있는 말레이시아 이슬람정당은 술 담배의 판매 금지를 추진중이다.
극우 정치인들이 목소리를 높이는 이스라엘 정치권에도 유대민족주의가 자꾸 커진다. 2018년에는 ‘민족국가법’을 통과시켜 이스라엘이 오직 유대민족의 나라라고 못을 박았다. 아리안족의 우수성을 배타적으로 믿었던 히틀러에게 끔찍한 학살을 당했던 유대인들이 배타적으로 자신들의 국가를 오직 한 민족의 것이라고 규정했다.
덕분에 이제 유대인도 유럽사람과 다르지 않는다고 말한다면 반유대주의자가 된다. 중국인들이 중국을 오직 ‘한족’의 나라라고 규정하면 어떤 일이 생길까.
2천년 전 이땅에 살던 유대인들 중에는 기독교인이 됐다가 7세기쯤 이슬람의 지배를 받으면서 하나둘 팔레스타인이 된 사람도 많다. 그들은 아브라함의 자손이 아닌가. 생물학적으로도 이들은 셈(SEM)족의 후손들이다. 언어도 비슷해서 상당부분을 서로 알아듣는다. 그런데도 종교가 다르다고 서로 죽이고 또 죽인다. 이번엔 많이 죽이기로 작정을 했나보다.
다시 영화 KINGDOM OF HEAVEN의 끝부분. 백성들을 살아서 달아나게 해주는 조건으로 예루살렘의 성을 셀주크튀르크에 넘겨준 발리앙이 살라딘(우리가 아는 그 위대한 군주)에게 묻는다.
[“예루살렘이란 도대체 무엇인가” 라는 질문에 살라딘은 답은 “Nothing...Everything”이였다. 예루살렘은 모든 것 일 수도, 아무것도 아닐수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