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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석화 May 25. 2024

아무튼 수족관

수족관 광인의 바다 탐험기


나는 왜 수족관 광인이 되었지?


곰곰이 생각해 보니 

시작은 사진 한 장이었다. 


너무 어릴 때라 내 기억 속엔 없어서

사진이 전해준 

추억이었다.


줄무늬 핑크 원피스를 입고 야무지게 양 갈래머리를 한 내가 

엄청 신기하게 생긴

털신 모양의 노란 열대어를 바라보고 있는 찰나의 사진 


그 사진을 처음 봤을 때

조금 억울했다


얘는 내가 여기 있었다고 증명하는데

하나도 기억나지 않아서

지금의 나도 여기에 가고 싶다!

하고 생각했던 것 같다

막연하게.


그래서 '수족관'에 대한 내 최초의 감상은 향수 鄕愁였다.

잃어버린 기억에 대한

아니

저장되지 못한 기억의 향수


또 하나 덧붙이는 감각은 

미디어가 만들어주었다.


박혜련 작가님의 "너의 목소리가 들려(2013)"라는 드라마에서 

남자 주인공 수하는 어릴 적 사고로 인해 

타인의 눈을 보면 그 사람의 마음이 들리는 능력을 갖게 된다.

남들보다 한층 더 시끄러운 세상에 살고 있는 수하가 

유일하게 고요함을 느끼는 공간이 수족관이었다. 


그때의 내 감상은 '오 물고기의 마음속은 안 들리나 보다 넘나 다행!'이었는데

수족관 광인이 되어버린 지금의 나는

'왜 왜! 물고기 마음소리 왜 못 들어!! 왜! 들어죠라 제발!!'

하고 광광 소리치는 사람이 되었다.


어쨌든 그 당시 

수하가 우주처럼 광활하고 새파란 수족관에서

혼자 유유히 고요함을 만끽하는 장면들은

퍽 인상적이었다. 




그래서 내 마음속에 "고요함=수족관"이란 공식이 생기게 된다.

썩 비극적인 결말을 예상하게 하는 공식인데

실제로 몸과 마음이 너덜거려 처음으로 

혼자 찾아가 본 수족관이 

정말이지 너무 요란스러워 헛웃음이 나던 기억이 있다.

 


그럼에도 거듭 내가 수족관을 찾게 되는 이유는 아이러니하게도

어둠이 두려워 

해가 뜨고 나서 잠이 들어야 마음 놓이는 내가

수족관의 어둠은 무척 안전하고 아늑하게 받아들인다는 것이다.


'누군가 의도를 가지고 설계한 암흑은 빛을 돌아보게 하기 위함이니까,

안심하자'라는 이성적인 판단이기보다, 

그저 직관적으로 

내가 안도감을 느끼는 공간이기에 끌린다.


누군가 영화관의 어둠과 무엇이 다르냐고 묻는다면

어둠 속에서의 '내 태도'가 다르다, 고 답할 것이다.


영화의 호흡에 맞춰야 하기에 

글을 쓰는 것도, 마음껏 생각을 이어 나갈 수도 없는 빽빽한 그 어둠과 다르게 

느슨한 어둠 속에서 능동적으로 멈추고 걷고 앉을 있는 내가 있다.


스포트라이트를 받는 그들을 망연히 관찰하는 내가 아닌

천천히 

하지만 멈추지 않고 

질문하는 나만이 남는다.


그 포근한 어둠 속에 둘러싸여 

새로운 자극에 

늘 취약하기만 한 내가 긍정적으로 자극을 치환할 있는 힘을 기르는 곳이다.


정적이지만 충분히 역동적이고

캄캄하지만, 반드시 빛이 흐르고

고요한 듯 소란하여 

사색하기에도

대화하기에도 손색이 없는 

나의 

방공호인 것이다.



수족관 동물들에겐 

여전히 죄책감이 들고 미안하고 마음 아프지만

이 나쁜 인간인 나는 죄스러운 마음으로


그저 아름다워 

평화롭게만 느껴지는, 


시간이 멈춘 낙원으로 

거듭 떠납니다.

 





2024년 4월을 기준으로 

방문했던 타국의 수족관은 5곳으로 

공교롭게 모두 일본이었다.


(껍질만 남은 나를 채우기 위해 발걸음하는 수족관이기에

수많은 인파와 한국어를 

감당할 에너지가 없었던 순간의 선택지였음을 미리 전하며)



일본의 첫 수족관 경험은 오키나와였는데,

더위가 한풀 꺾인다는 9월임에도 맹렬했던 태양과 

걸을 때마다 마음을 빼앗긴 히비스커스의 화려한 색감이 

남국의 정취를 북돋는 곳이었다. 


각자의 집 마당마다 언제든 사용할 수 있게 관리해 걸어둔 

스노클링 도구와 세워둔 서프보드가 섬사람들이 얼마나 바다와 밀접한 

삶을 살고 있는지를 보여주어 무척 좋았다.


바다가 일상에 들어와 있는 삶이라니!  


오키나와의 방언으로 '아름다운'이라는 뜻을 가진 '츄라'와 

일본어로 '바다'를 뜻하는 '우미'가 만나 


'아름다운 바다'라는 뜻을 가진, 세계 2위 규모의 츄라우미 수족관에 갔었다.



이곳의 전 층을 통틀어 가장 오랜 시간 넋을 빼앗긴 장면은 

헤아릴 수 없이 긴긴 세월 

지구상에 존재해 온 원시 原始의 아름다움이라


영원을 꿈꾸게 했다.


2018.09 처음 온몸으로 깨달았다. '빛을 느낄 수 있다는 건 정말 아름다운 거구나' 하고


그때의 감각이 아주 깊은 곳에 묵직하게 가라앉아, 


모든 게 버거워 

턱턱 숨이 막힐 때

떠올라 제법 기운 좋은 산소통이 되어 나를 이끌어 주었다.

그 이후로 틈날 때마다 훌쩍 


혼자서 낯선 곳의 수족관을 다녀오곤 했다.

두 번째로 갔던 곳이 오사카의 가이유칸이었는데 


하나의 커다란 원통 수조가 위에서 아래로 수족관 전체를 꿰뚫고 있었고, 


그 원통수조를 감싸듯 차례로 나눠진 공간이

아래로 향할수록 

조도를 낮춰 시각적으로나 공간적으로

심해의 감각을 느낄 수 있도록 만들어진  

입체적인 구조가 정말 좋았다.


그저 수족관이 미술관에 걸린 그림처럼

한쪽 방향에서만 수조를 바라보는 감각이 아닌


진짜 바닷속에 있는 같다, 고 느낀 최초의 수족관이었다.


2019.04 손에 잡힐 듯 헤엄치는 고래상어가 꿈같았다.


그때의 감각들이 촘촘히 쌓여

형태를 갖춘 그림이 되었고


나의 작품들 중

최초로 재화의 가치를 갖고 팔린 


1호 그림이 되었다.


우측 상단의 그림을 맨 처음 그렸고, 이를 마음에 들어 한 컬렉터가 요청하여 나머지 3개의 작품을 연달아 그렸다. 게으른 작가가 늦게 올린 것이지만, 판매일은 21년 10월 31일



첫 개인전을 준비하며 

문장을 모으고 거르는 작업을 반복하다

번뜩 떠오른 장면이 있었다.


내가 기억하기에

태어나 처음, 이 손으로 크레파스를 쥔 후

펼쳐진 스케치북 아래

그려낸 그림이 '바다'였다.


정확히 말하면 -바닷속 세상의 장면-


바다가 멈추는 곳의 

밑바닥 모래와 춤추는 미역 그리고 꽃게,

불가사리들을 꼬물꼬물 그려 넣던 장면이 제법 생생하다.


이게 참 공교롭게 좋았던 거다.

변덕스러운 사람이라 생각해 왔건만 

이제 와서 좋아하는 것들을 늘어놓고 보니 일관되도록 

맥락이 있는 사랑을 하는 자였다.


그 변함없는 취향이

그저 넓고 깊은 파란빛에 이끌려서인지


'캄캄하지만, 반드시 빛이 흐르던' 시각적 경험 때문이었을지


일상적으로 만날 수 없는 생물의 아름다움에 이끌렸던 건지


그냥 고요한 걸 좋아하는 사람으로 자랐기 때문인지


명확히 정의할 순 없지만

꽤 서사 깊은 사랑 노래였던 거다.


나에게 바다란 건.

22.03.28-04.03 윤석화 개인전 "널 통과한 빛" 내 첫 전시 레터링은 뭐가 될까 궁금했는데 역시 세상은 요지경 '제가 태어나, 처음 그렸던 기억은 깊은 바닷속이었어요.'



앞으로 기록하게 될 수족관 광인의 이야기는

언제나 예측불허의 날씨 같아서


한껏 기대하고 방문한 크리스마스의 스미다 수족관에 실망해

조금 눈물짓거나


슬램덩크의 기찻길을 찾으러 갔다가 결국 신에노시마 수족관에 당도하거나


18도의 날씨라고 해서 반팔과 가죽 재킷만 입고 간 나에게 

9도의 날씨를 선사한 멸망 3초 전의 울음을 담은 

마린월드 우미노나카미치 등등을 적어볼까 합니다.





전개하는 글의 커다란 틀은


1. 어디 수족관을 

2. 왜 방문했는지 (이 당시의 여행을 계획했던 목적)

3. 누구와 갔는지 (대부분 혼자였지만, 아니었던 적도 있었을...까)

4. 방문하기에 위치는 어땠는지 (교통과 접근성, 재방문 의사)


5. 그곳에서 얼마나 머물렀는지 (어느 섹션이 가장 기억에 남았는지 혹은 가장 큰 공간을 할애한 존과 내가 머문 시간이 일치했는지)


6. 무엇을 보았는지 (이벤트 관람-돌고래쇼나 물개 쇼는 거의 관람하지 않지만 그래도 처음 갔을 때 일행 때문에 보았던 기억이 있으므로)


7. 방문 당시에 분위기가 어땠는지 (달력을 다시 봐야 확실하겠지만, 아마 주말에 방문한 적은 없었다, 하지만 크리스마스라던가 특정 연휴가 있는 주간에 방문한 경험이 있어 기억에 남음


어떤 단위의 관람객들이 많았었는지- 부부와 아가의 조합인지 여러 나이대의 커플들에 휩싸여있었는지, 유치원 아가들의 단체 관람이 많았는지를 기록, 한국 사람이 유난히 많은 곳도 있었고 나올 때까지 한마디의 한국어도 듣지 않은 곳도 있었다.)



8. 꾸며 놓은 공간이 어땠는지 (수조의 공간 구성, 조명과 수조의 크기, 영어로 된 설명이 존재하는지의 유무-왜냐하면 난 얼추 일어를 말하고 들을 줄 알지만 까막눈이기에... 그렇다고 일일이 찍어 번역기에 정성을 들일 만큼 기계에 의존하고 싶어 하지도 않으므로 영어 소중함... 

분할해 놓은 섹션과 테마의 특징, 관람 동선이 매끈한지-이 와중에 길치 이슈 있음, 

또 건물의 형태와 실내외를 어떻게 분리해서 사용하고 있는지가 나에겐 커다란 핵심)


왜인지 표지 그림의 콩달이 눈동자와 원유순이란 지은이의 이름, 콩달이가 엄마와 떨어지지 않길 애타는 걱정만이 남아있음

9. 어떤 동물들이 있었는지 (이게 좀 충격인데 이 바보 인간은 수달과 해달을 구분하지 못했다, 

나에게 X달은 콩달이뿐이라 전부 콩달인줄 알았다고... 왈칵, 그래서 최초로 해달을 만나고 내 세상은 해달을 만나기 전과 그 이후로 나뉨/ 그 이전의 내 삶은 정말 아무것도 아닌 먼지였던 것...)



10. 리플릿의 디자인, 스탬프 공간의 유무(어린이들의 관람 집중도를 위한 가이드지만... 사실은 전부 내가 함)

기프트샵의 굿즈와 가챠(뽑기 캡슐) 배치의 진심도를 기준으로 한 번 써 내려가 볼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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