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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담 Oct 17. 2024

엄마, 조금만 더 기다려주세요

7월: 견우직녀달


              아이마음 이해하기 - 1부 


우리가 무엇을 생각하지 어른들은 몰라요
우리가 무엇을 바라보고 있는지 어른들은 몰라요
귀찮다고 야단치면 그만인가요
바쁘다고 돌아서면 그만인가요

-  어른들은 몰라요 노래 중


비나리는 호기심이 많은 아기였다. 바깥세상이 얼마나 궁금한지, 안정된 보금자리에서 새로운 미지의 세계로 빨리 나오고 싶어 했다.


그렇게 이른 시간부터 바깥세상을 궁금해하던 비나리는 결국 예정일보다 3주나 빨리 세상을 구경할 수 있게 되었다. 예정된 주수를 채우지 못해 성장이 느리진 않을까 하는 걱정과는 달리 비나리는 백일이 채 되기 전에 뒤집기를 시작하였다. 한 번 두 번 뒤집기가 익숙해지고 나니 곧잘 뒤집기-되집기를 성공하고, 귀여운 아기 도마뱀처럼 아둥바둥 거리며 누구보다 빠르게 기어 다니기 시작했다. 이때는 나는 우리 비나리가 마치 어릴 때부터 남달랐다고 하는 운동선수의 이야기처럼 유명한 운동선수가 되지 않을까 기대하기도 하였고, 150일이 넘도록 뒤집지 않아 걱정하는 부모들 사이에서는 부러움을 받는 존재가 되기도 하였다.




                      세상에 첫발을 내딛다


다른 아가들이 한창 뒤집고 있을 때 비나리는 물건을 잡고 일어나기까지 하며 누구보다 빠르게 성장하는 것처럼 보였지만, 웬일인지 돌이 지나도록 걷지를 않았다. ‘돌잔치에는 걸어가겠지.’라는 내 기대와는 달리 선물 받은 신발들이 작아질 때까지 한 발짝도 떼지 못했다. 나는 이전까진 주변 반응들에 조금 무딘 편이었지만, 주변에서 하는 “우리 ~는 이제 걷다가 뛰려고 해요~”라는 사소한 말들이 나를 불안하게 만들었는지도 모르겠다.


인터넷을 열심히 찾아보니 대부분 걱정하지 말라는 의견이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있는지 없는지도 모르는 질병들에 대해 걱정되기 시작했다. 급기야 비슷한 시기의 아이들이 아장아장 걷는 모습을 볼 때마다 조바심이 났고, 속상해지기까지 했다. 복잡한 마음에 걸어보자고 두 손을 잡아끌어보기도 했지만, 아이는 꿈쩍도 않았다. 잡고 서기 외엔 발바닥을 떼려고도 하지 않았다. 그렇게 우리 비나리는 또래 아이가 단어를 따라 하기 시작할 때까지도 걸으려 하지 않았다. 그러다 어느 날, 우연히 알게 된 육아 선배가 나에게 이런 말을 해주었다.


“완벽주의 아가들은 스스로 완벽하다고 생각이 들 때까지 시도하지 않는대요”

“그래요? 그럼 우리 비나리도 걷고 싶으면 걷겠죠?”

“물론이죠! 그러니 걱정하지 마요.”


그 말이 나에게 얼마나 큰 힘이 되었는지 모른다.


그렇게 나는 ‘왜 걷지 않을까’ 하는 걱정 대신 아이의 성향을 파악하는 데 관심을 가졌고, 우리 아이는 겁지 많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넘어지는 것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아예 시도하지 않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래서 무릎 보호대도 사주고, 넘어져도 아프지 않을 것 같은 푹신한 곳에서 일부러 넘어지는 시늉을 통해 아이도 놀이처럼 넘어지고 일어나 보도록 도와주었다. 그것이 아이에게 도움이 되었던 걸까. 나를 따라 한두 번 시도해 보더니 거짓말처럼 갑자기 한 발짝을 떼었다.

첫발을 떼기까지는 꽤 오랜 시간이 필요했으나, 그렇게 한두 번 넘어지면서 걷기를 시도하더니 급기야 이틀이 지난 후에는 신발을 신고 야외에서 뛰어다니는 것이 아닌가!


그렇다. 우리 아이는 느린 것이 아니라, 완벽한 것이었다!!

스스로 걸을 준비를 하고 있었던 것이다~!!




                         산 넘어 산


걸음을 떼고 나서는 누구보다 잘 걸었고, 누구보다 잘 뛰었다. 또래 친구들이 아직 뒤뚱거리면서 걸을 때 우리 비나리는 다른 아이들과 달랐다. 그 걸음걸이가 얼마나 안정적인지, 오래간만에 만난 비슷한 시기에 아이를 낳은 조리원 동기들은 비나리가 어떻게 이렇게 넘어지지도 않고 잘 걷느냐며 부러움의 표현과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하지만 그 부러움도 잠시, 금세 또 다른 관문에 도달했다. 이번엔 두 돌이 넘도록 말을 하지 않았던 것이다. ‘언젠가는 말을 하겠지.’라고 생각했지만, 걸음마와 다르게 언어발들에 대해서는 치료가 필요할지도 모른다는 이야기가 주변에서 들릴 때마다 불안해졌다.

나는 비나리에게 더욱 신경 써서 책도 읽어주고 말을 시켜보았지만, 비나리는 대부분 고개를 끄덕이거나 젓는 것으로 대답을 대신했다. 어떤 소아과 의사는 인터넷 게시글에서 30개월까지는 조금 느리더라고 기다려줘도 된다고 하였지만, 막상 아이가 있는 주변 부모들을 발달 체크 센터를 통해서 케어가 필요한지에 대해 확인이 가능하다며 센터를 추천해주기도 하였다.


이 시기에 빨리 확인해 보는 게 좋을 것 같았지만, 내가 불안해하는 것이 아이에게 전달되지는 않을까 하는 걱정도 있었다. 그래서 나는 남편과 상의하여, 비나리가 우리에게 말하고 싶은 완벽한 타이밍이 올 때까지 기다려보기로 하였다. 내가 기다려고 괜찮다고 판단을 했던 것은 우리 아이가 전혀 말을 못 한 것은 아니었기 때문이다. 엄마, 아빠, 싫어, 또 줘 등의 기본적인 단어는 스스로 표현하였고, 간혹 특정 단어를 따라 하기도 하였다. 하지만, 처음 따라 한 단어의 발음이 말하고자 하는 단어와 다르면, 그 이후부터는 그 단어를 더 이상 따라 하려 하지 않았다.


예를 들어, ‘바나나’ 같은 쉬운 단어는 “바. 바. 바나..”라고 시도를 시작하였지만, ‘딸기’처럼 어려운 단어는

“따리..”라고 살짝 따라 해 보다가 그냥 더 이상 따라 하려는 시도를 하지 않았다.


나는 이러한 아이의 성향이 언어발달을 더욱 느리게 하는 것은 아닐까 하는 걱정이 생겼다. 하지만, 나는 아이에게 시간을 주기로 이미 결심을 하였기에, 아이에게 따라 하라고 강요하는 대신 수다쟁이 엄마가 되어 보기로 하였다. 나는 나의 반복되는 일상에 대해 매일매일 큰 소리로 말해주었다. “아침이 왔네.”, “화장실에 가야지~.”, “청소해야지~” 등 사소한 말들부터 나는 혼자서 쫑알쫑알 말하는 습관을 가졌다.


그러던 어느 날, 나의 이 쫑알거림에 비나리가 대답을 해주었다!. 비나리의 입에서 나온 첫 문장은 너무나 화려해서 아직도 내 귓가에 생생하게 맴돈다. 당시 상황은 이러했다. 비나리를 차에 태우고 목적지를 향해 가려던 참이었다. “자, 이제 출발합니다~”라고 늘 해오듯 반사적으로 내밭은 나의 혼잣말에 전혀 어색하지 않은 대답이 들려왔다,


“엄마, 나도. 우리 어디 가요?”




                 이제는 당황하지 않는다.


정말 육아에는 많은 관문이 있다. 하지만, 이번 관문에서는 아이도 나도 누구보다 여유가 있었다. 이번 관문은 바로 ‘대소변 가리기’였다. 빠른 아이들은 돌이 지나고부터 기저귀를 떼는 아이도 있다고 했다. 나는 아이가 말하기 시작하면서부터, ‘깔끔쟁이’라는 것을 알았기 때문에 쉽게 뗄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나는 부지런히 육아템-어린이 소변기, 대변기 등-을 일찌감치 구매해 두었다. 하지만, 아이는 ”변기 시러요~ 나는 기저귀가 조아요~“ 라고 또박또박 의사 표현을 했고, 기저귀에 볼일을 보면 바로 갈아달라고 요청했지만, 기저귀를 떼고 싶어 하진 않았다.


그렇게 때문에 나는 이번에는 억지로 떼려 하거나 조바심 내지 않았다. 그 시기 어느 육아 서적에서 ‘다른 사람에게 피해가 가지 않는 선에는 아이의 의사를 존중해 주는 것이 좋다’는 내용을 보았고, 그 말에 나도 동의했기 때문이다. 만약 초등학생이 기저귀를 한다면, 그것은 크고 작은 면에서 다른 친구들에게 피해를 줄 수도 있다. 하지만, 아무리 덩치가 있다고 해도 아직은 어린이집에서 케어받고 있고, 또 비나리와 같이 기저귀를 사용하는 친구도 있었기에 빠른 친구들과 비교하거나 재촉하고 싶진 않았다. 그래서 나는 그 시기까지 기저귀를 차고 다니는 우리 아이를 향한 걱정의 목소리에 당당하게 이야기했다.


“혹시 초등학교에 기저귀를 차고 온 아이가 있나요?”

“글쎄요. 못 본 것 같아요.”

“그래요. 결국 그때는 모두가 기저귀를 뗄 수 있다는 거죠! 그전엔 우리 비나리도 떼지 않을까요? ㅎㅎ“


긍정의 힘은 대단한 것이다! 그렇게 한해를 더 거급하고, 결국 40개월이 지나 기저귀를 훌러덩 벗어버렸다! 다른 사람들 기준에는 늦었을지도 모르나, 나에게 있어 우리 아이의 대소변 가리기는 시도한 지 단 하루 만에 성공하였으며, 아직까지 단 한 번도 침대에서도 실수한 적이 없는 놀라운 적응력이고 자랑거리이다!




                    아이의 성장 속도


지금까지는 ‘나’의 경험이었다. 나는 비나리의 성장 발달에 기다림을 선택했지만, 무작정 기다리는 것이 정답은 아니다. 내가 참고한 수많은 책 중 아이에게 시간을 주라는 의견도 있었지만, 일부 책에서는 만약을 대비하여 발달 관련하여서는 빠르게 판단하고 해결해야 한다는 의견도 많았다. 나 같은 경우, 아이의 성향을 알았기에 혹은 내 판단이 아이에게 잘 맞았기에 또래보다 발달이 느린 것이 다른 발달의 문제가 아니라 아이의 성향에 의한 속도 차이라고 믿고 기다릴 수 있었다. 가장 중요한 것은, 아이의 성향을 알기 위한 부모의 노력과 아이들마다 다른 개개인의 성장 속도를 이해하고 기다려줄 수 있는 인내심인 것이다.


우리도 커가면서 내가 다른 사람과 다르다는 것을 알게 되고, 나의 능력이 남들보다 뛰어나거나 때로는 조금 뒤처질 수도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누구에게나 강점은 있고, 내 강점은 내가 가장 잘 알 수 있다. 우리 아이드리도 자신들의 강점을 스스로 잘 발견해 줄 수 있을 때까지 우리의 응원이 필요할 것이다.


아직 감정표현에 서툴고 모든 것을 배워 나가야 하는 우리 아이들에게 우리가 정해놓은 속도에 맞추지 말고, 아이들의 속도에 맞춰 우리가 잘 이끌어주는 것은 어떨까. 어떠한 관문이 와도 못 넘을 것은 없다. 아이에게 그 험난한 길을 함께 묵묵히 걸어주고, 지지해 줄 부모의 믿음만 있으면 된다.



-비나리의 육아 일지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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