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저께부터 아들은 "움파룸파~ 둠파디두 ~" 노래를 부르며 우스꽝스러운 율동을 했다. 짧고 통통한 팔을 위로 들어 올리거나 손바닥을 앞으로 내밀고 한 바퀴 빙 도는가 하면 상체를 숙이고 엉덩이를 보여주기도 한다. 영화 '웡카'에 나오는 소인족 '움파룸파'를 흉내 내는 거였다. 올레티브이에 웡카가 떴다는 건 진즉에 알았지만 시청료가 1만 원 가까이 되니 선뜻 틀어주기가 부담스러워서 모른 척해왔는데, 급기야 학교에서 웡카를 본 친구에게 노래와 율동까지 배워와선 저러고 있으니... 내가 졌다. 오늘 같이 보자.
그렇게 아들과 영화를 보며 임시공휴일을 보내고 자려고 누우니 "움파룸파~ 둠파디두~"가 입에서 계속 맴돌았다. 안돼 자야지. 고개를 좌우로 털고 다시 잠드는 것에 집중해 보지만 마음속 그 노래는 누가 틀어놓은 것마냥 끊임없이 재생된다. 도저히 안 되겠어서 폰을 집어 들고 유튜브를 켰다.
현재시간 11시 10분. 이맘때 유튜브 검색창을 열면 검색기록 중 최상단에 '저녁명상'과 '잠잘 때 듣는 음악'이 자동으로 뜬다. 하, 귀신같은 것. 내가 이 시간대에 유튜브를 열면 이 영상을 필요로 한다는 걸 얘는 다 아는 것이다. 따로 키보드를 누르지 않아도 되니 편하면서도, 우리 사이가 너무 가까워서 부담스럽게 느껴지기도 한다.
며칠 전엔 쿠팡에서 뭘 좀 사려고 검색하다가 그냥 안 사고 어플을 닫았는데, 이후 며칠 동안 네이버 어플의 광고가 그것과 관련된 것만 올라오는 걸 보고 '와, 이 지독한 놈들'하며 기함을 한 적도 있다.
제주도에 놀러 온 친구도 비슷한 경험을 얘기했다. 인스타그램에 자꾸 제주도 맛집이 뜬다는 것이다.
- 나 제주도에 온 거 어떻게 알았지? 왜 이런 거 자동으로 보여주지? 나 인스타그램에서 검색한 적 없는데??
- 제주도 오는 항공권, 스마트폰으로 구매했냐?
그렇단다.
- 그것 때문이네 그럼.
친구는 놀라는 눈치다. 정확히 어떤 방식이라고 설명할 순 없었지만 친구도 나도 항공권 구매와 제주도 맛집 추천이 자동으로 뜨는 것 사이에 뭔가가 있음에 동의하며 끄덕거린다.
초등학생 아들은 내게 자주 AI에 대해 묻는다. 내용은 주로 "엄마, AI가 인간 세상에 쳐들어오면 어떨 것 같아요?"라든가 "AI랑 고질라랑(!) 싸우면 누가 이길 것 같아요?"같은 거다.
- 어어... 글쎄? 우리는 이미 AI에게 서서히 삶을 점령당하고 있는 건 아닐까?
기실, 그렇다. '지독한 놈들'이 만든 알고리즘에 맥없이 패배하고 끌려다닌다. AI나 알고리즘이나 챗GPT나 큰 차이를 모르겠는 나는 그 끌려다니는 느낌이 불편하다. MZ들은 이걸 어떻게 받아들일지 모르겠지만, 천리안&나우누리 세대인 나는 일상을 분석당하는 것 같아 부담스럽다. 나의 취향을 알아봐 주는 건 고마운데 결국 광고를 틀어주거나 그 페이지에 오래 머물게 만들어서 돈 쓰는 걸로 연결시켜 버린다!
알고리즘은 편리하고 똑똑하다. 그 편리함을 쫓아가다가 내가 바보로움이 되고 있다. 분명 이걸 보려고 유튜브를 연 게 아닌데 몇십 분째 딴 것만 보다가 정작 하려고 했던 건 까먹고 폰을 닫게 될 땐 스스로가 바보스럽게 느껴지기도 한다.
나, 뭐 하는 거지? 이것도 답을 알려줄 수 있니, 챗GPT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