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아름 May 13. 2024

뇌 나이가 어때서

응, 곧마흔

최근 허리디스크로 신경외과에 출석도장을 찍고 있다. 제주 4.3 지정병원이라 그런지 유독 어르신들이 더 많게 느껴지는 곳이다. 오늘도 아이를 등교시키고 부랴부랴 준비해서 병원에 왔다.

안내데스크에 이름을 말한 후 의자에 앉으려고 빈자리를 찾다가 문득 많은 어르신들의 시선이 한 곳에 쏠려있다는 것을 알아챘다. 병원 내 대형 TV였다. <KBS 무엇이든 물어보세요?>가 방영 중이었고 오늘의 주제는 '뇌 나이가 어때서'였다. 평소라면 흥미가 없었을 텐데 마침 어제 글쓰기 단톡방에서 받은 이번 주 주제가 '내 나이가 어때서'였기에 글감을 얻을 수 있을까 싶어 TV가까이 맨 앞자리에 앉았다.

영상 속 출연자들은 치매 예방에 좋다는 초성퀴즈를 풀고 있었다. 정해진 카테고리 안에서 10가지 초성을 보고 제한시간 안에 단어를 맞추는 방식이었다. '동물'이 나왔고 ㄱㅁ, ㅈㄹㅇ, ㄴㅂ 등의 초성이 뜨자 몇몇 어르신들이 소리 내어 답을 말씀하셨다. 나도 속으로 답을 생각했다. 제한시간이 다 되어 가는데 출연자가 답을 다 맞히지 못하자 답답해진 어르신들은 들릴 리 없는 그에게 큰소리로 알려주시기 시작했다. 결국 그 문제는 시간초과로 다음 카테고리로 넘어갔고, 다음 출연자 역시 10개를 다 맞추지 못하자 환자들은 더욱 열성적으로 답을 알려(?)주셨다. 문제가 거듭될수록 열기가 더해갔고 어느새 나도 참여하고 있었다. 같은 초성 안에서도 각자가 생각한 답이 달랐지만 우리의 마음만은 한뜻이었다.

준비된 문제가 다 떨어지고 다음 코너로 넘어가자 병원 안도 잠잠해졌다. 갑자기 민망했다. 이게 뭐라고 이렇게 열심히 참여한 걸까.

어르신들 가득한 병원 안에서 30대 후반인 나는 '애기'수준이었다. 디스크로 처음 내원한 날은 제대로 걷지도 못해 허리를 부여잡고 어그적거리며 병원으로 들어왔는데, "젊은 사람이 벌써부터 그러면 어떡해."라는 말을 들을까 지레 겁을 먹었다. 전문의쌤은 분명 디스크가 쪼그라든 원인이 '노화'랬는데 여기 어르신들 앞에선 그런 단어는 금지다.

작년보다 흰머리가 눈에 띄게 많아지고 치아보험 광고에 눈길이 간다. 밤에 먹으면 소화가 안되어서 자연스레 야식을 피하게 되는 것은 서럽다. 언젠가 방송인 김숙 씨가 '야식도 먹을 수 있을 때 먹으라'고 했는데 그게 무슨 뜻인지 이제 알 것 같다. 깨알보다 작은 글씨를 만나면 폰으로 사진을 찍은 후 확대해서 본다. 양치할 때 가느다란 칫솔 끝부분이 닿으면 이가 시렵다고 언니들에게 말했다가 핀잔만 들었다.

노화의 분명한 신호들이 신체에 잡히는데 어디 가서 늙는 중이라고 말하기가 어려운 상황. 나는 얼마만큼 늙은 걸까? 늙어가는 젊은이인가? 아직 젊은 늙은이인가? 하나의 몸을 40년 가까이 썼으면 많이 쓴 것 같기도 한데... 노화에 극렬히 저항하고 싶지는 않지만 새치염색은 고려하고 있는 나에게 세상은 이렇게 말해준다. 니 나이가 어때서!

작가의 이전글 알고리즘이 알고 있는 것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