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런치 작가가 되고 싶어서 심사용 글을 쓰려니 스트레스가 밀려온다. 이미 드립커피를 마셨지만 아이스라떼 한 잔을 더 시켰다. 카페인 빨로 버텨보자. 머리야 돌아라!
관심도 없던 브런치스토리에 갑자기 눈길이 가게 된 건, 내가 쓴 여행에세이 초고를 출판사 사장인 친구가 편집해 주며 던진 말 때문이었다.
- 일단 써야 돼. 꾸준히 써야 실력이 늘어.
뭐든 꾸준히 하려면 공식적인 약속을 잡아야 하는 나였다. 그래서 필라테스 PT나 영어회화도 선생님이랑 '약속'잡고, 트레킹도 회원들이랑 '약속'을 잡는다. 일단 또 잡힌 약속은 칼같이 지키는 편. 브런치스토리와도 '약속'을 잡으면 어떻게든 지키겠지.
아, 그런데 브런치스토리 작가가 되려면 우선 심사를 통과해야 한단다. 그런 게 있다는 것에 놀라며 유튜브를 검색해 본다.
브런치 작가 되기, 브런치 작가 한 번에 되는 법, 브런치 작가 승인 필살기.... 관련 영상들이 주르륵 나왔다. 몇 개 훑어보니 점점 더 부담스러워진다. 심사라니... 어흡.
브런치스토리 어플을 받고 무작정 글서랍으로 들어가 이것저것 써보다가 급격히 피로해진다. 이런 게 바로 창작의 고통이고 작가의 삶이라는 건가! 조금이라도 더 좋은 문장을 위해 퇴고에 퇴고를 거듭하며 비쩍 말라가는 고뇌에 찬 작가 선생님!!
땡이다. 이 피로감은 순수한 창작의 고통이 아니라 쓸 게 없음에 대한 스트레스이다. 내 머릿속이 정리가 안되면 자판을 두드리던 손가락은 그 자리에 멈추고, 눈은 깜빡이는 커서를 하염없이 바라보고 있어야 한다.
어플을 닫고 공책의 아무 데나 펴놓고 멍하니 창밖을 봤다. 노지에서 바람을 맞으며 흔들리는 로즈메리를 보니 그 향기가 여기까지 나는 듯하다. 나는 뭘 쓰고 싶을까. 내가 꾸준히 브런치스토리와 약속 잡고 쓸 수 있는 주제는 무엇이고 내가 가진 경험 중 풍부한 글감이 되어줄 것은 무엇일까. 이 글은 독자를 위한 글일까 나 자신을 탐구하기 위한 과정일까. 확실한 건 내가 경험하고 생각하지 못한 것은 잘 쓰지 못한다는 것이다.
수년간 마음공부를 하며 연습해 온 대로, 지금의 나를 조금 더 유심히 바라보기로 한다.
심사에 탈락하기 싫다. 자기소개와 더불어 제출하는 글 세 편이라도 잘 써야 활동 중인 sns계정 '없음'을 만회할 수 있지 않을까 싶은 불안함이 크다. 한 번에 합격해서 우쭐한 기분도 느껴보고 싶다. 그래서 힘이 잔뜩 들어갔고 글은 점점 더 쓰기 어려워졌다.
어차피 이대로 이걸 붙들고 있어 봤자 글이 잘 나오지도 않을 것 같아서 글쓰기에 관련된 것은 잠시 덮어두고 다른 사람들의 글을 읽으면서 조급함을 내려놓는 연습을 하기로 한다. 힘을 빼보자는 의도였다.
집에 돌아와 나만의 '진리의 성전' 앞에 섰다. 나를 일으켜 세운 책들을 꽂아놓은 그 책장 앞에 서서 왼쪽부터 순서대로 책의 제목을 읽어나갔다. 그러다가 아잔 브라흐마(옮긴이 : 류시화)의 《술 취한 코끼리 길들이기》에서 눈길이 멈췄다. 하도 오래전에 읽은 책이라 내용이 잘 기억나지는 않지만 어쨌든 진리의 성전에 놓인 걸 보니 아주 중요한 책인가 보다. 무슨 내용이었는지 궁금해서 책을 꺼내 들고 첫 페이지를 폈는데, 첫 번째 문장이 이거였다.
"삶에서 우리를 힘들게 하는 것은 원하는 것을 이루지 못하기 때문이 아니라 원하는 마음을 내려놓지 못하기 때문이다."
....!!
나는 흥분을 가라앉히지 못하고 책장을 덮어버렸다. 그리고 다시 브런치스토리 어플을 켜서 까먹기 전에 얼른 이걸 쓰고 있다. 잘하고 싶은 조급한 마음을 내려놓지 못해서 힘들어하는 내 마음을 어쩜 이리도 단박에 알아챘을까. 두 번째 문장도 아니고 첫 번째 문장에서! 이래서 내가 어디 가서 마음공부라는 단어를 꺼내기가 어렵다. 이런 기묘한 일들이 어쩐지 사이비 종교 같을까 봐...!
이제 나는 무엇을 써야 할지 알 것 같다. 진리의 성전에 놓인 나의 소중한 책들에게서 좋은 글감을 찾고, 그것들이 나의 일상에 어떻게 스며들고 있는지를 쓰기로 한다. 살고 싶어서 시작했던 마음공부 이야기를 통해 지금이 힘든 사람들에게 여기 그런 사람 또 있으니 같이 외로워하자는 말을 건네고 싶다.
별로 인기가 없는 주제인 것은 안다. 차라리 종교적 색채가 강하다면 더 나을 수도. 하지만 이 얘기는 왠지 꼭 써야 할 것 같은, 지금이 아니어도 어차피 언젠가는 쓸 것 같은 직감이 든다. 내가 이 지구별에 왜 왔는지 끊임없이 탐구하는 동지들에게 들려주고 싶은 이야기를 풀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