까다로움의 의인화가 바로 나였다. 예민했고 까칠했다. 엄마가 내게 "너랑 똑 닮은 딸, 더도 말고 덜도 말고 딱 하나 낳아서 키워봐라!"라고 하셨을 때 무슨 그런 악담을 하냐고 말대꾸할 만큼 나는 나의 까다로움을 알고 있었다.
엄마한테 한 게 있어서인지 막상 애를 낳을 때가 되니 걱정이 앞섰다. 정말로 나 같은 애가 나오면 어쩌지? 내가 울엄마처럼 헌신으로 애를 키울 수 있을까. 못할 것 같은데..... 세모 반듯하게 졸졸이 썰어둔 수박 중 가운데 토막을 아이에게 양보할 생각이 애시당초 없었다.
그러나 놀랍게도 내 뱃속에선 내 기준에 절대 용납 안 되는 일도 아무렇지 않게 넘기는, 심하게 무던한 녀석이 나왔다! 너 괜찮은 거니?? 하고 현재 심정을 아무리 인터뷰해도 아들은 심드렁했다. 그거 뭐~
다음 사례를 보자.
1. 볶음밥 만들 때 쓴 숟가락
손잡이가 긴 나무숟가락을 사용해서 볶음밥을 만들었다. 다 만든 볶음밥을 그릇에 옮겨 담고 아들 숟가락을 꺼내려고 보니 설거지해 둔 게 없었다. 개수대를 힐끔 보니 아들의 숟가락을 찾으려면 고무장갑을 끼고 뒤적거려봐야 할 상황이었다. 귀찮았다.
볶을 때 사용한 숟가락 그대로 그릇에 꽂아서 주었다. 아들이 어떻게 받아들일지 눈치를 살폈다.
엄마, 이거 말고 새 걸로 줘~
나 같으면 그랬다. 당연히 그랬다. 요리할 때 사용한 스푼에는 양념이 눌어붙어 있거나 손잡이가 찐득할 확률이 높기 때문이다. 울엄마는 그런 나에게 눈을 한번 흘기겠지만 결국 내 말대로 해줬을 것이다.
그런데 아들은 전혀 관심이 없다. 볶음용 숟가락인지 뭐인지도 모르는 것 같고 그저 숟가락이 있기만 하면 되었다. 놀랄 노자다!!
2. 윗도리가 꾸겨졌어
초등학생 시절. 내복을 입고 학교에 가면 화장실 한 번 가서 한세월이었다. 촉감에 민감해서 바지 안에 넣은 내복 상의가 구겨진 느낌을 참을 수가 없었다. 상의를 바지 안으로 넣으면서 구김이 전혀 없기란 너무나도 어려운 일이다. 그걸 해내려니 화장실에서 나올 수가 없는 거다. 마음대로 되지 않는 내복 상의 때문에 혼자 화장실에서 울기도 많이 울었다.
비슷한 맥락으로 "요가 구겨져서 배기잖아"가 있다. 잠을 못 잔다, 바닥에 깔린 요가 조금이라도 구겨지면!! 피부를 뚫고 내장까지 눌리는 느낌이다. 전생에 공주였을까?! 10층으로 쌓은 매트리스 아래에 놓인 작은 왼두콩 한 알 때문에 불면의 밤을 보냈다는 그 이야기 속 공주님처럼 말이다.
아들은 요가 구겨지든 내복이 꾸겨지든 역시 전혀 관심도 없다. 아마 내복과 그 위에 입은 맨투맨의 위치를 바꿔도 아무렇지 않을 수도 있을 것 같다. 이 또한 놀랄 노자다!
3. 생일선물 받은 드론을 친구가 조립해도 괜찮아
그게... 돼?????? 그게 용납 가능한 거야 정말???
너란 아들.... 놀랄 노자다!
아들 생일에 친구들이 잔뜩 왔고, 그중 한 친구가 드론을 선물로 주었다. 아이는 드론을 잠시 미뤄두고 다른 선물인 레고를 조립하고 있었는데, 친구가 앉아서 드론을 조립하기 시작했다. 그 아이의 엄마는 생일선물 받은 건데 너가 조립하면 안 된다고 아이를 말렸지만 역시나. 우리 아들은 관심이 없었다. 누가 하든 그저 드론이 잘 날면 그만인 애였다. 나였다면 상상도 못 할 일이었다. 아마 나라면 그 자리에서 선물을 풀지도 않았을 거다. 친구들이 내 소중한 선물 만지는 게 싫으니까!!
(그래. 인정한다. 예민이 문제가 아니라 사회성이 문제였다...)
아무래도 아들은 나에 비해 한참 한참 한~~~ 참 무던한 것 같다. 돈가스 옆에 사이드로 나온 주먹밥에 깨를 빼달라고 하긴 하지만 그 정도야 젓가락질 잘하는 내게 어려운 일도 아니다. 깨? 싫으면 빼줄 수 있지. 예민한 나에게 이 정도 요구는 껌이다. 그래서 아이는 나와 있을 때 편안해한다. 내 아들의 요구는 예측 가능하고 허용 범위 내에 있다.
너랑 똑 닮은 자식 낳아보라던 울엄마의 저주는 대실패다, 얏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