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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아름 May 25. 2024

류시화 작가님

언제 한 번 만나고 싶어요

문학이라곤 <개미> 이후 읽지 않았던 내가 어쩌다 보니 에세이에 빠지게 되었고 이젠 브런치 스토리에 작가로서 글도 올리고 있다. 십수 년간 비문학 실용서만 읽어 메마르고 부서지는 내 글에 영양제를 먹이고자 류시화, 박완서, 에릭 와이너를 매일 돌아가며 읽는다.


시는 더더군다나 더 못 읽는다. 그래서 류시화 시인의 '시'는 못 읽고 산문을 읽는다. 오늘은 <내가 생각한 인생이 아니야> 차례. 2023년 12월 21일이 1쇄인데 불과 한 달 뒤인 2024년 1월 20일에 20쇄인 걸 맨 뒷장에서 확인하고 작가님의 대국민적인 인기를 실감할 수 있었다.


첫 페이지에서 두 번이나 놀랐다. 작가님이 서귀포에 거주하신다는 사실(오예!)대놓고 적혀있어서 놀랐고, 그 바로 위의 두 문장 때문에 놀랐다.


바닷가 오솔길을 그녀는 단발머리를 하고 서쪽에서 걸어오고 나는 바닷바람에 장발을 날리며 동쪽으로 걸어가다가 정면으로 마주쳤기 때문에, 나의 범상치 않은 행색을 알아본 그녀의 예리한 시선을 피할 도리가 없었다. 대개 이런 경우, 서로의 산책을 방해하지 않도록 나 아닌 척하거나 눈 흰자위를 치켜뜨고 정신이 온전치 않은 시늉을 하지만 그럴 틈이 없었다.







길다! 저렇게 긴 문장을 한 번만 읽고도 장면이 부드럽게 연상되는 게 놀라웠다. 거기에 적절한 유머까지.

언젠가 운이 좋으면 제주도 어딘가에서 작가님을 마주칠 수 있지 않을까. 그땐 "작가님, 눈 흰자위를 치켜뜨고 정신이 온전치 않은 시늉을 하셔도 소용없어요. 작가님인 거 다 알아요."라며 팬심을 뽐내보리라 야무진 흑심을 품책을 읽어나갔다.


그러다 1/4 지점에서 한 문장을 만나고 책을 덮어버렸다.

더 이상 진행해서 읽으면 지금의 감정이 무너질 것 같아서였다. 책을 덮으니 표지가 눈에 들어왔고, 움푹 파인듯한 반짝이는 제목을 손가락으로 천천히 훑었다. 손끝의 감각으로 제목을 읽어보려는 듯.



그는 마치 삶이라는 책을 들고 다니지만 한 번도 제대로 펼쳐 본 적 없는 우리를 각성시키려는 듯 고독한 선지자 같은 자세로 등장하곤 했다.





이 문장이었다. 다음에 언제든 펴볼 수 있게 밑줄을 긋든가 귀퉁이를 접든가 뭐라도 표시를 해두고 싶었는데 차마 신성한 책에 그렇게 할 수 없었다. (나중에 중고로 팔기 위함이 아니다.) 필통을 뒤져 인덱스를 찾아내 붙여두고 잠시 생각에 빠진다.


'작가님은 어떻게 이렇게 글을 잘 쓰시지?? 근데 시샘이 안 난단 말이야. 너무나 넘사벽이라 질투를 느낄 대상이 아닌 건가? 하긴, 젊은 시절부터 열정적으로 꾸준히 써오셨으니 능력치가 어마무시하겠지. 나도 잘 쓰고 싶은데... 지금부터 20년 노력해 보면 되는 걸까!'


여기까지 생각이 미치자, 에라 모르겠다 일단 지금 상황을 브런치에 써보자 싶었다. 

책에서 작가님은 자신이 곤궁했고 절실했으며 그리고 그것이 글을 쓰는 일을 계속하게 만들었다고 했다. 배우 윤여정 님도 연기력의 원동력 이라고 하셨다. 나는 현재 돈 많아서(!) 그런 절박함은 없는데. 그렇다고 작가로 성공하고 싶다는 절실함이 있는 것도 아니고.

나는 왜 브런치를 하는 것이며 왜 글을 쓰는 걸까. 내 삶이라는 책을 나는 제대로 펼쳐본 적이나 있을까. 저 문장이 나에게 와서 꽂힌 이유는 책을 펼치고 그 책을 읽고 싶어서인가.


야밤에 감성에 젖어 쓴 글은 발행하지 않고 저장만 해두는 게 국룰이라는데... 작가님을 진짜로, 우연히, 제주도에서 만난 에피소드까지 적을 기회가 오기를 바라며, 발행 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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