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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햄사 Jun 25. 2024

뉴질랜드|#00 떠나게 된 것은

회사를 그만두었다. 허허벌판에 로드맵부터 그리던 프로젝트라 정이 많이 들었지만 결국 그렇게 되었다. 몰아치는 사건사고에 휩쓸리다 정신을 차려보니, 그곳에는 더 이상 내 시간과 정신을 기꺼이 내던질 만한 어떤 모험도 남아있지 않았다. 회사를 떠나게 된 것은 그런 이유였다. 무기력함에 절여진 나는 몇몇 마음 맞는 사람들과의 연결고리만을 남긴 채 백수가 되었다.


모든 면담을 마치고 퇴사일이 확정되었을 즈음 덕배는 나에게 멀리 떠나는 여행을 제안했다. 급작스러운 퇴사라 여러모로 여유가 없어질 것을 대비해야 한다고 생각했지만, 당시 휴직 중이었던 그는 언제 또 이렇게 같이 시간을 낼 수 있을지 모르겠다며 나를 설득했다.


틀린 말은 아니었다. 직장인인 우리는 어디 한 번 떠날라치면 중요한 업무 일정을 확인하고, 부재인 동안 내 업무를 대신해 줄 사람을 정하고, 인수인계 자료를 만들고, 여행 중에도 메신저를 확인하며 내 일부를 사무실 한 구석에 두고 온 것처럼 굴기 일쑤였다. 일상을 온전히 내려놓지 못해 마냥 즐겁지만은 않았던 여행들을 떠올렸다. 늦은 저녁까지 대화한 끝에, 목적지는 천천히 정해도 좋으니 쉬는 동안 어디든 다녀오기로 마음먹었다.




우리에게는 치킨이 아주 맛있는 동네 아지트가 있다. 퇴사 후 여느 때처럼 그곳에 자리를 깔고 앉아 시시콜콜한 이야기를 나누던 날이었다. 유독 날이 더웠던 탓인지 별생각 없이 한마디가 툭 튀어나왔다. 여행을 아예 시원한 나라로 가보는 건 어때? 남반구는 곧 겨울이겠다 싶어 알아보니 그 시기의 뉴질랜드는 평균 10도. 덥고 습한 것을 세상에서 제일 싫어하는 나에게 너무나 매력적인 날씨였다. 여행지는 얼떨결에 정해졌다.


뉴질랜드에 대해 아는 것이라곤 거대한 산과 호수, 양 떼 가득한 목장과 반지의 제왕뿐이었지만 그것만으로도 충분했다. 너른 대자연은 새로운 모험이 되어, 단 한 줌도 남지 않은 내 의욕을 다시 채워줄 것만 같았다. 행선지가 정해지니 다음 준비는 순조로웠고, 하고 싶은 일들로 차근차근 여행 일정을 채워가며 떠날 날만을 기다렸다.


그렇게 본격적인 무더위를 앞둔 일 년 전 오늘, 때아닌 겨울옷을 바리바리 싸들고 우리는 지구 반대편 뉴질랜드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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