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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꼬미 May 22. 2024

상담을 받아보려고 한다.

중앙 난임 우울증 상담센터

유산을 겪고 나서 유난히 대인관계에 어려움을 겪고있다. 타인의 눈을 마주치기가 어렵고, 타인의 안부를 묻거나 일상적인 대화를 나누는게 어려워졌다. 심지어는 지인들에게 오는 카톡에 답장하기도 머뭇거려진다. 누군가에게 연락이 오면 나한테 왜 연락을 했을까 의심부터 든다. 임신했다가 유산 한 게 내 탓도 아니고 잘못도 아닌건데, 괜히 숨기고 싶다. 내가 원치 않는 사람들에게까지 내 소식이 전해질까 꺼려지고, 괜히 내 이야기를 했다가 상처뿐인 위로로 돌려받을까 겁이 난다. 유산에 의한 슬픔은 이제 많이 지나갔다고 생각들만큼 가벼워졌는데, 대인관계 문제는 변함 없이 그대로다. 사람을 만나기가 싫다.


주말 사이 우연히 유튜브로 본 영상이 있었는데 가까운 사이에는 보일 것은 보여야한다는 내용이었다. 난 아주 막역한 친구도 없다만은 친구 관계에서도 마음 편히 지내기를 어려워하는 성격인 것 같다. 부모님이나 남편에게는 좋고 싫은 것을 다 이야기 하지만, 집 밖에서 만나는 모든 사람들에게는 거리를 지키고 웬만해선 나를 잘 드러내지 않는 편이다. 이런 성격이 계속해서 나를 옥죄이고, 숨막히게 한다는 사실을 알고는 있다. 하지만 선천적인 기질인건지 참 고쳐지지 않는다.


작년 3월 첫 아이를 임신했고, 같은 해 11월 두 번째 아이를 임신했다. 하지만 나는 아직 엄마가 아니다. 작년에는 뱃속에 아이를 품고 벚꽃을 구경했고, 올해 봄에는 아기와 함께 벚꽃을 보게 될거라고 생각했다. 꽃이 지고, 무성한 잎사귀들로 양분을 모아 다시 꽃이 피기까지 1년이 넘는 시간이 흐르는 동안 나는 두 번의 유산을 했다.


작년 겨울 지역 행사에 갔다가 느린 우체통에 1년 뒤 우리 가족에게 보내는 편지를 썼는데, 내년 크리스마스에는 아기와 함께 있을 우리를 상상하며 글을 적어 부쳤다. 이번 크리스마스까지 7개월 남았는데, 원하던 대로 따뜻한 크리스마스를 보낼 수 있을까?


처음으로 아기를 품었고, 처음으로 아기를 잃었다. 그 아픔과 상처가 나에게 너무나도 크고 아팠기에 마음을 추스리는 데에만 1년이 걸렸다. 떠올리기만 해도 마음이 아리고, 수도꼭지 틀어놓은 듯 눈물도 넘치게 흘렸다. 아기를 낳아 내 품에 안아야만 이 상처가 아물거라고 생각했는데, 감사하게도 지금은 상처가 아물고 새살이 돋아난 듯 떠올려도 전처럼 쓰리지는 않다. 유산의 상실감은 이루 말할 수 없지만, 아픔을 겪은 뒤 이겨내는 방식은 사람마다 다르다고 생각한다. 드물겠지만 누군가는 가볍게 넘어갈 수 있을 수도 있고, 누군가는 나보다도 더 오랜 기간 힘들어 할 수도 있을거라고 생각한다.


난 아무도 만나고 싶지 않았다. 정말 1년을 꼬박 홀로 보냈고, 만난 사람을 세어보자면 열 손 가락 안으로 셀 수도 있다. 유산 이후 몸 컨디션 관리도 해야했고, 다음 임신 준비를 위해서도 마음도 추스리기 위해서 직장도 그만 뒀다. 남편은 아침 7시가 되기도 전에 출근을 했고, 해가 진 뒤에야 집에 들어왔다. 나는 온 종일 집에 혼자 있으면서 슬퍼하고 싶은 만큼 슬퍼했고, 울고 싶은 만큼 눈물을 흘렸고, 자고 싶으면 자고, 임신과 유산에 관련된 유튜브 영상은 안 본 것이 없을만큼 다 찾아서 봤다.


내가 듣고 싶은 말만 듣고 싶었다. 누군가가 해주는 어떠한 위로도 조언도 듣고 싶지 않았다. 조금 더 솔직해지자면, 난 너무나도 위로받고 싶었지만, 위로 속에 숨은 충고나 조언을 들을 마음이 전혀 되지 않았다. 나를 걱정해서 연락해주는 사람들의 손길을 뿌리쳤고, 상대방의 진심은 알지 못한 채 마음을 닫아버렸다. 몸은 좀 어떠냐는 말, 잘 지내냐는 말, 어떻게 지내냐는 말 전부가 부담스러웠다. 그럴 때마다 그만 물어봤으면 좋겠다고 생각만 했다.


아기 심장소리를 들으러 병원에 갔다가 유산된 사실을 알게된 날에도, 나는 슬퍼하기도 이전에 남편을 살폈고 첫 손주도 못보셨는데 벌써 두 번째 유산 소식을 듣게 될 양가 부모님을 생각하며 마음 아파했다. 아기를 잃은 건 다른 누구보다도 내 뱃속에 아기를 품었던 나인데... 그래서 정말 괴로웠다. 나만 생각하고 미치도록 슬프고 싶은데 그러지 못하는 내 자신이 너무 힘들었다. 결혼 전 부터 손주를 기다리시는 시어머니가 어떻게 생각하실까. 벌써 두 번째 유산을 겪은 딸을 보는 엄마가 얼마나 슬플까. 매번 이렇게 슬퍼하고 울고 있는 나 때문에 남편은 얼마나 힘들까. 이전과 같지 않은 나를 보는 지인들이 나를 어떻게 생각할까.


사람들의 시선 속에 갇혀있는 나는 매 순간 자유롭지 못했다. 심지어 얼굴도 모르는 사람들이 들락거리는 블로그에도 내 솔직한 마음을 쓰지 못했고, 생각에 사로잡혀 내 일기장에도 적어보지 못했다. 어쩌면 나는 내 자신에게도 솔직하지 못했나보다. 무슨 이유에선지 갑자기 국가에서 지원해주는 난임 우울증 상담 센터가 떠올라서 몇 가지 후기를 찾아보다가 대뜸 예약 전화까지 해놓고, 지도를 살펴서 어디로 찾아가야 할 지 정해두었다. 첫 유산을 겪고 1년이 넘어서야 누군가를 만나 아픔을 꺼내놓고 이야기 해볼 용기가 생긴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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