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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뮤하뮤 Nov 30. 2024

아주 보통이 아닌 면허

10년 무사고 장롱면허소유자의 수동면허 따기

  이게 15,000원이라고? 나는 약국에서 사 온 긴장완화용 드링크제를 한입에 털어 넣었다. 이번엔 꼭 붙어야 한다. 시험응시료가 55,000원. 절대 적은 액수가 아니다. 지난번 시험점수는 44점, 터무니가 없는 성적이다. 비록 내가 운전은 개판으로 해도 10년 무사고 (거의) 장롱면허의 소유자가 아닌가. 그까짓 1종수동면허 따는 것 클러치의 작동원리만 이해해도 금방이다(그러니까 그게 가장 큰 문제라고요).


  내가 시험을 본 곳은 사통팔달 차들이 모였다 흩어져 혼잡한 교통의 요지요, 시간대 관계없이 꽉 막힌 도로사정으로 악명이 높은 도로다. 이곳에서 면허를 딴다면 어떤 상황에서도 당황하지 않는 강철 같은 심장과 운전스킬을 획득하게 될 것이다. 시험용 트럭에 나와 20대처럼 보이는 여자가 올라탔다. 시험관 선생님은 패드를 내밀어 우리에게 코스를 고르게 하고 시험장소에 데려다주었다. c코스가 나왔다. 이런, 4가지 코스 중 제일 어려운 코스가 아닌가? 좌회전, 우회전이 골고루 있고 유턴이 두 번씩이나 있는 고난도의 코스. 게다가 언덕이 있어서 반클러치를 제대로 못 밟는다면 시동이 꺼질 수도 있다. 떨리는 내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가을 하늘은 맑고 청명하다.


  트럭 운전대에 앉았다. 혹시라도 신발이 벗겨질까 봐 평소와 다르게 뒤꿈치가 막힌 운동화를 신고 왔다. 클러치를 꽉 누를 수 있게 지나치다 싶을 정도로 운전석을 앞으로 바짝 당겨서 앉았다. 지난번에 정차 시 기어 중립을 안 해서 먹은 감점이 도대체 몇 점이냐. 나는 오른손등위에 중립이라는 글자가 크게 새겨져 있다고 상상하며 심호흡을 했다. 시험을 시작하겠습니다라는 차가운 기계의 음성을 들으며 좌측깜빡이를 넣고 도로주행시험을 시작했다. 시동이 꺼지지 않게 신경을 쓰면서 짧게 정차할 때마다 기어를 중립 해야 하고 갑자기 끼어드는 폐지 줍는 사람의 리어카를 피하면서 차선을 바꾸고 잊지 않고 깜빡이를 켜야 한다. 머릿속에는 내가 끝까지 이 코스를 완주하고 집으로 갈 수 있을까라는 생각과 그 와중에 산만하여 도로 위 거대한 트럭과 더 거대한 버스를 운전하는 운전수를 힐끔댔다. 저 사람들은 위대한 사람들이야. 나도 이들과 함께 이 도로에 속하고 싶다. 긴장완화용 드링크를 마셨음에도 불구하고 클러치, 엑셀, 브레이크를 밟는 두 발이 벌벌벌 떨리는 것이 느껴졌다.


  코스를 3분의 2 정도 돌고 이제 도로사정이 가장 거지 같은 존으로 들어왔다. 정신을 똑바로 차리고 시험종료지점까지 가면 그래도 70점을 넘을 수 있지 않을까라는 작은 기대와 자꾸만 딴생각이 껴드는 머리를 흔들며 심호흡을 했다. 볼 수는 없었지만 기운으로 느끼건대 옆자리의 시험관 선생님의 안색은 어두운 것 같았다. 그래도 아직 시동은 안 꺼졌으니 끝까지 가보도록 하자. 이제 1차선으로 와서 유턴을 한 후 3개 차선을 건너 유턴을 해서 언덕으로 올라가야 한다. 내가 탄 트럭이 도로주행시험차량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주변의 차들은 절대로 양보할 생각이 없어 보였다. 어찌어찌 머리를 들이밀고 차선을 변경, 또 변경하여 간신히 언덕을 올라 시험을 종료했다. 얼굴이 벌게져서 숨을 내쉬고 있는데 시험관 선생님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음, 점수가 좀 부족하네요. 하면서 패드를 보여줬다. 결과는 66점. 합격까지 4점이 부족했다. 감점된 항목을 보니 클러치와 엑셀을 동시에 밟은 것이 상당히 많았고 좌회전 시 지정차로에 들어가지 않은 것 등 생각지도 못한 곳에서 점수를 잃었다. 하, 시험을 보러 여길 또 와야 하는군, 눈 오기 전에는 면허를 따야 할 텐데. 나는 황망한 표정으로 뒷좌석으로 물러나 앉았다.


  다른 시험응시자 차례이다. 내가 시험 볼 때보다 도로사정이 더 엉망이 되었다. 나는 속으로 파이팅이라고 응원을 보내며 창밖을 바라봤다. 가로수가 노랗게 빨갛게 물들고 있었다. 나야 푸드트럭을 할지도 모른다는 안일한 계획으로 1종수동을 따는 건데 저 아가씨는 무슨 연유로 2종보통면허가 아닌 수동을 따려고 하는 걸까. 내가 보낸 응원이 모자랐는지 그분도 언덕에서 시동을 한번 꺼트리더니 당황하여 연거푸 시동을 두 번 더 꺼트려 실격처리되고 말았다. 우리는 말없이 트럭에서 내려 다음 시험을 예약했다. 다음 시험의 결과를 먼저 이야기하자면 그 시험응시생과 나는 다음 시험에도 같은 트럭을 타게 되었는데 둘 다 간신히 합격했다는 기쁜 소식을 전한다. 두 번째 시험의 기억이 너무 강렬해서인지 정작 마지막 시험의 과정은 잘 기억이 나지 않는다.


  임시면허증을 돌려받고 지하철역으로 걸어가면서 시험응시생과 약간의 담소를 나눴다. 내가 어렸을 때는 한참 나이 많은 언니들이 왜 그렇게 미주알고주알 처음 보는 사람에게 넉살 좋게 이 얘기 저 얘기를 잘하는지 신기했다. 이제 내가 그 나이 많은 아줌마 포지션이 되어 20대 초반 여성에게 물어보지도 않은 이야기를 늘어놨던 것을 생각하며 피식하고 웃었다. 이유를 듣자 하니 트럭을 모는 것이 왠지 더 멋있어 보이고 재미있어 보였다는 것이었고 혹여 나중에 캠핑카를 운전할 때도 도움이 되지 않을까라는 것이었다. 아, 캠핑카, 그것 또한 어렸을 적 내 꿈이었거늘. 나는 얼마나 꿈을 잊고 살고 있는 걸까. 나는 언젠가 내 곁으로 오게 될 캠핑카를 떠올리며 면허시험장 근처에서 운전면허용 사진을 찍었다. 솜씨 좋은 사장님 둘이 10분 만에 뚝딱 보정을 해줬는데 이 사진을 박아 넣은 면허증을 폰사진으로 찍어 친구에게 자랑했다. 친구의 반응은 강남성형외과 다녀왔어? 였고 나는 외투주머니에 넣은 면허증을 손으로 만지작 거리며 노랗고 빨간 단풍을 느긋하게 눈에 담으며 집으로 돌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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