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의 첫 직장생활과 고찰

그리고 첫 기록

by 랜선친구

26의 나는 이르다면 이르게 또 늦다면 늦게 회사에서의 첫 사회생활을 경험 중이다. 내가 일하는 회사는 금융권인데 거기서 내가 하는 일은 마치 사이버세상의 친구들과 문자를 주고받는 일 같다.

얼굴도 모르는 여러 관계자들과 계속해서 연락을 주고받으면서 일을 진행해야 하는데 한 달간 일을 하며, 일방적으로 친근감을 가지게 된 사람도 있는 반면 가끔은 업무용 전화를 통해 개인적인 화를 쏟아내는 사람들도 있다.


그런 일들이 있을 때면 나는 나를 잘 나가는 연예인에 대입하게 된다.

꼭 나에게 쏟아지는 비난이나 화풀이가 형태는 없지만 감정은 선명한 악플 같다고 생각했다.

나는 운이 좋아 26, 만으로 24가 되는 지금까지의 생에서도 나의 면전 앞에서 나를 비난하는 사람을 만난 경험이 적었다.

(아예 없진 않았다. 학창 시절 선생님들에게 그런 식의 비난을 들은 적은 있으니까)

그래서 그런지 나는 그런 종류의 내게 던져진 감정덩어리들에 남들보다 크게 절망하고 슬퍼했다. 그 사람들의 행동에 대한 억울함과 그런 부당함에 잠시라도 겁먹은 내가 한심해서..

사실 위의 기분을 이기지 못하고 화장실 구석 칸에서 몰래 울기도 했지만 이건 지금까지도 앞으로도 누구에게도 말하지 못할 나만의 꾸질한 기억으로 남겨둘 것이다.

위에 살짝 언급했듯이 나는 상당히 운이 좋은 편이다. 살면서 가장 간절하게 원했던 일이 매번 나의 편을 들어주진 않았어도 예상치 못한 상황에서 주변에서도 깜짝 놀랄 정도로 운이 좋은 편이었다. 어쩌면 내가 지금껏 만나왔던 사람들 중 가장

사실 스스로 운이 좋다고 믿기 때문에 운이 좋아진 건지 운이 좋기 때문에 운이 좋다고 믿게 된 건지에 대한 선행관계는 아직 모르겠지만 나는 여기에 대한 아주 작은 비밀이자 믿음이 하나 있다.

나는 사람들마다 각자 어떤 시기에 겪어야 할 특정한 양의 슬픔이 있다고 생각해 왔다. 스스로에 대해서도 똑같은 생각을 하고 있어서 과하게 행복하려 욕심부리지 않는다. 적당히 힘들거나 슬프지 않으면 꼭 벌을 받아 내가 감당할 수 없을 정도로 힘든 상황에 빠질 것만 같다.

사실은 이렇게 적정량의 슬픔을 계속해서 마주하는 게 나의 비겁한 행운의 비결이라 생각한다. 나는 이미 내 몫의 슬픔을 겪었으니까 이 정도는 행운을 누릴 자격이 있다면서

사실 스스로가 가장 행복한 또는 슬프지 않을 상황에 놓여있기 위해 최선의 노력을 다해도 사람들은 항상 행복에 다다르기 힘들어하던데 이런 나의 생각이 스스로를 위해 충분히 노력하지 못하는 사람의 비겁한 변명 같기도 하다.

그래서 즐거운 상황에서도 그러한 기분을 온전히 즐기지 못하고 불안해하며 슬프고 괴로운 상황에선 앞으로 상황이 나아질 것이라는 보증수표 같은 안락함을 느끼기도 한다. 이러한 성향이 나의 삶에 도움이 되는지 장애물이 되는지 아직은 확신할 순 없지만 적어도 계속 생각하다 보면 어느 쪽에 가까운지 결론 내릴 수 있지 않을까

앞으로도 남은 사회생활이 그저 즐겁고 버겁지 않기를 바라지만 그런 상황을 온전히 즐길만한 성향도 아니니 그저 나를 지켜보는 것 밖에 다른 방도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