활자중독의 글쓰기

by 랜선친구

마치 지난 26년의 인생이 그랬듯이 나의 글쓰기는 ‘어영부영’이란 단어와 아주 닮아있다.

나름 주변 친구들 중 가장 책을 많이 읽는 편이고 또 스스로를 이루는 여러 키워드 중 활자중독을 하나로 뽑을 만큼 무언가를 읽는 행위에 중독되어 있지만 글을 읽지 데서 멈추지 않고 쓴다는 건 아예 다른 차원의 이야기다.

우습게도 이곳에 글을 쓰게 된 계기도, 회사에서 나의 잘못이 아님에도 일방적으로 화를 쏟아내던 사람에게 정당히 항의하지 못했던 나 자신과 그 상황에 너무 화가 나고 당황스러워 이러한 감정을 풀 탈출구가 필요해 글을 쓰게 된 것이 이곳에 올린 첫 글의 부끄러운 비밀이다.


사실 살면서 나만큼 글을 ‘쓴다’와 어울리지 않는 사람도 보기 드물었다.

나는 기본적으로 아주 어릴 적부터 결벽적으로 사진이나 글 같이 내가 죽고 나서 나의 흔적이 될만한 것을 남기는 걸 싫어했다. 이러한 성향은 청소년기까지 이어져 백일장 같이 글과 그림 중 하나를 선택하여 완성해야 하는 과제가 주어지면 항상 못 그리는 그림을 선택했고 글을 쓰는 친구들을 조금은 동경하며 신기하게 보던 입장이었다. 대학생활에서 특정 분야와 지식에 관한 리포트를 쓰는 건 딱히 힘들어하지 않았던 것을 생각해 보니 나의 결벽적 글쓰기 혐오는 나를 표현하는 수단이 될 때만 발동되는 트리거 같았다.

이러한 성향은 어린 시절부터 나에게 가장 가까운 감정이자 이젠 동반자 같이 느껴지기도 하는 수치심 때문이다.

나는 나를 대표하고 표현하는 모든 것들이 부끄럽다. 어느 글에선 내가 나의 유일한 변호사라던데 그런 면에선 난 나의 변호사 자격에서 사임해야 마땅했다. 이런 수치심 때문에 나는 죽음이란 게 무엇인지 알기 시작하는 어린 시절부터, 내가 죽고 난 뒤 나의 부끄러운 흔적들이 나를 대표하며 남아있게 되는 상상을 하게 되면 너무 괴로워졌다.

하지만 10대의 마지막까지만 살기로 아무도 몰래 나와했던 약속이 무너져 스무 살 이후로도 6년을 덤처럼 살게 됐듯이 나와 너무 자주 만나 괴롭히던 수치심의 방문이 드물어지진 않았지만 점차 익숙해져 가 이제 더 이상은 나의 기록물을 남기는 게 죽고 싶을 만큼 끔찍하진 않다.

나는 변한 지금의 내가 변하기 전 어린 나보다 마음에 드니 이번 변화는 너무 다급하게 오지 말고 되도록 나와 오래가 나에게 글을 더 많이 써볼 기회와 스스로의 당당한 변호사가 될 기회를 허락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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