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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게바라 Jun 23. 2024

원스 어 폰 어 타임 인 홍콩(3): 구룡채성

어두운 홍콩의 과거?

6, 7년 전쯤 2박 3일 짧은 일정으로 홍콩에 처음 왔었다. 그때의 홍콩의 이미지는 좁은 거리에 빽빽하게 들어 선 낡은 고층건물 사이로 수많은 사람들이 어지러운 간판 밑으로 북적이며 걸어가는 것이었다. 게다가 무척이나 더워서 거리를 걷기 힘들었는데 다닥다닥 걸린 건물 에어컨 밑에선 물이 똑똑 떨어져 머리에 맞곤 했다. 

이후 사람들이 홍콩에 대해 물으면 '엄청 덥고, 좁고, 머리엔 에어컨 국물이 떨어져~' 말하곤 했다. 

몇 년이 지난 지금도 덥고, 좁고, 에어컨 국물을 피해 다니지만 이 비좁은 도심지에 공원이 참 많다고 생각한다. 

빅토리아 공원, 홍콩 공원, 구룡공원, 서구룡 문화공원등 큰 공원서부터 동네 입구의 작은 공원까지 어느 나라보다 많은 거 같다. 

빅토리아 공원은 종합 운동장 느낌이고 홍콩공원은 조그만 동식물원 같다. 

구룡공원은 Heritage로 지정된 오래된 건축물에 작은 박물관이 있어서 인지 기품이 있어 보이고 서구룡 문화공원은 유럽의 어느 한적한 해변같이 세련됐다.     

그중 가장 인상 깊은 공원은 구룡채성 공원이다. 

60~80년대 홍콩은 아시아에서 가장 잘 나가는 번화한 곳이었다. 그 당시 한국에서는 볼 수 없는 높은 빌딩 숲과 수없이 많은 쇼핑몰과 휘영 찬란한 네온사인에 서양문화에 자리 잡고 있어 아시아의 선진국으로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았다.(그래서 '홍콩 간다'라는 말이 생겼나?) 

반면, 어두운 이미지도 동시에 있었는데 개미집처럼 작고 비위생적인 공간에 여러 사람들이 다닥다닥 모여 살고, 삼합회등 조폭이 활개 치는 온갖 범죄가 난무하고 세상의 모든 가짜를 무수히 생산해 내는 곳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그러한 부정적인 이미지는 아마 구룡채성이 한몫했을 듯하다. 

 

한가한 주말에 가끔 구룡 채성공원을 가곤 한다. 

처음 갔을 때는 구룡채성에 대해 그다지 많이 알고 있지 못했었다. 공원이 되기 전 0.03 km2 면적에 에 무허가 고층 건물들 안에서 4~5만 명이 살았고 무법지대로 각종 범죄가 난무하고 삼합회가 지배했던 공간정도로 알고 갔다. 70억 인구가 제주도에 사는 인구밀도라나.... 블래이드 러너, 공각기동대, 베트맨의 고담시, 쿵후 허슬, 아비정전등 많은 영화에서 그 이미지가 차용됐다고 하니 어떤 곳일까 상상을 하며 찾아갔다. 그러나 막상 가니 한적하고 아름다운 공원이었다. 고풍스러운 정자에 연못에선 거북이들이 유유하게 헤엄을 치고 홍콩식 옛 건축물과 전시공간도 부담스럽지 않아 좋았다.   

하지만 가만히 벤치에 앉아 있으면 공기가 착 가라앉아 무거우면서도 뭔가 애잔한 분위기다. 비가 와서일까?    

맑은 날에 가도 사람은 많지만 그곳의 공기는 마찬가지다. 그냥 왠지 짠하다. 

공원의 중심부에는 조그맣게 구룡성채의 역사에 대해 전시해 놓은 곳이 있다. 해설해 주는 사람도 있고, 안내인, 안내서도 있다. 매우 작은 공간에 별 전시물 없이 단지 사진과 동영상을 보는 곳임에도 의외로 전시물을 열심히 사진 찍는 어르신, 학생들이 많다. 나도 열심히 들여다본다

게시물의 짧은 설명과 사진은 내가 알고 있던 내용과 다르지 않으나 구룡채성에 살았던 사람들의 인터뷰가 담긴 동영상이 있길래 유심히 보게 됐다. 모두들 그때의 열악했던 환경에 대해 이야기한다. 건물이 붕괴될까 봐 늘 걱정했다던 할아버지, 물이 더러워서 먹는 물은 밖에서 사 올 수밖에 없었다던 아줌마, 옆집에서 조그만 소리까지 다 들을 수 있었다던 아저씨, 화재가 나서 옆동으로 도망가서 겨우 살았다는 할머니등....

근데 가만히 보고 있으면 그 사람들의 얼굴이 어둡지 않다. 지옥 같은 구룡성채를 벗어나서일까? 아니면 지금은 살만해서 힘든 과거를 웃으며 기억할 수 있는 걸까?

한 아저씨의 인터뷰 중에는 힘든 와중에도 사람들과 모여서 음식을 나눠먹고, 서로 도와가며 살았다고 미소 짓는 아저씨가 있었다. 한 아주머니는 불법치과시설을 이야기하면서 솜씨가 나쁘지 않았다며 옹호한다. 모두 어제 일처럼 이야기한다. 

전시물의 설명서에 이런 글이 있다.

'구룡성채는 단지 특이한 역사가 아니다. 이전 시대를 살았던 홍콩사람들의 기억의 집합이다. 그들은 한때 여기 살았고 이곳에서 일했다. 그들 자신의 삶뿐 아니라 홍콩의 발전에 기여를 했다.'

이 말이 핵심인 거 같다. 이곳을 아무리 아름답게 꾸며도 이곳의 분위기와 공기는 힘들었던 사람들의 애환뿐 아니라 이곳에서 살아온 사람들의 희로애락 모든 것이 담겨 있었던 것이다. 단지 사람들이 지옥 같은 공간에서 각종 범죄의 고통 속에 아우성치는 그런 공간이 아니었다.

여기만 오면 황지우의 시구가 생각난다.


바람 속에

사람들이.....

아이구 이 냄새

사람들이 살았네

 

P.S

이 곳을 방문하기 전에는 반드시 대략의 역사를 알고 가야 한다. 인터넷이든, 유튜브등 보고 가야 공원을 감상할 수 있다. 특히, 영국 선교사 Jackie의 이야기를 포함해 이 곳의 과거 생활상을 봐야 한다. 그냥 가면 이쁜 공원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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