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최게바라 Apr 30. 2024

홍콩에서 가전제품 고치기

사는 게 낫나?

홍콩 화폐의 명칭은 홍콩달러다. 홍콩달러는 미국달러와 연동되는데 최근에는 환율이 올라서 홍콩 달라 1불이면 170원이 넘는다. 몇 년 전에 출장 왔을 때는 140원 정도였고 출장비안에서 해결하니 그렇게 물가가 비싸다는 생각을 못해봤는데 여기서 살면서 내 돈으로 생활하다 보니 모든 것이 비싸게 느껴진다. 자연스럽게 불필요한 소비를 줄이고 마트에 가서도 1+1 상품을 사고, 옷이나 신발도 휴가 때 한국에서 구매하려 노력한다.

그렇게 알뜰살뜰 살고 있는데 하루는 설거지를 하다가 주방의 인덕션의 유리를 깨뜨려버렸다. 그릇을 선반 위에 놓다가 놓쳤는데 그만 금이 가고 말았다. '이런~~ 인덕션에 금이 가다니' 하며 손으로 스윽 만지니 유리가 손가락에 박혔다. '으이그~ 오늘 되는 게 없네'하며 주먹으로 살짝 치니 금이 더 커진 거 같았다. 지멘스 제품 인덕션인데 이럴 수도 있나 싶었다.    

다음날 아파트 관리실에 문의해서 지멘스 서비스센터에 문의를 하여 수리공 방문시간을 잡았다. 3일 뒤 오후 1시부터 6시 사이에 방문한단다.

"뭐라고? 1시부터 6시 사이? 그럼 오후 내내 집에서 기다려야 해요?"

하고 물어보니 혹시 집에 가족이나 가사도우미 없냐고 되묻는다. 급한 마음에 일단 오기 1시간 전에 전화 달라고 하고 예약을 한 후 한국직원에게 물어보니 운이 좋단다. 보통은 전화하면 방문하는데 2주 걸린단다. 그리고 보통 예약시간을 넉넉하게 잡는다고 한다. 이거 참나...

'역시 지멘스는 다르네요~3일 뒤에 오다니~'라는 말에 위안을 삼을 수밖에. 이윽고 며칠뒤  약속한 날짜에 수리공이 집에 왔다. 꽤 친절한 아저씨였는데 인덕션을 한번 노려보고 껐다켰다를 두어 번 반복한 후 배면에 있는 모델명을 사진 찍었다.  

'오호 전문가라 모델명부터 찾아보네'

하는 생각을 하고 있는데 점검비용 850불을 달라고 한다. 그리고 수리는 다음에 부품을 가지고 와서 고칠 텐데 그때 부품비용, 배달비용과 또 수리비를 내야 한다고 말했다. 어이가 없어서  

"점검이 끝났다고? 이게 점검의 전부예요? 게다가 점검비와 수리비를 따로 낸다고요? 이렇게 비싼 게 맞나요?"

하고 몇 번을 확인하니

"원래 방문수리는 비싸요. 대신 수리비는 점검비보다 조금 쌀 수도 있어요. 일단 서비스센터에 전화해서 다시 예약하세요."

하고 휑~하고 가버린다. 그가 머무른 시간은 길어야 5분이었다.

다음날 서비스 센터에 전화하니

"유리 부품비용 1,590불, 내부 부품 교체비용 1,180불 배달비용 100불, 수리비용 850불입니다."

우와~~ 인덕션 유리가 살짝 금 갔을 뿐인데 4,570불, 한국돈으로 77만 원 이라니... 갑자기 못하던 영어가 술술 나온다.

"이게 말이 됩니까? 점검하러 온 사람은 그냥 껐다 켰다했다가 사진만 찍고 갔는데 850불을 냈어요. 근데 수리비를 또 내라고요? 부품도 유리만 갈면 된다 그랬는데 갑자기 왜 내부 부품을 왜 교체합니까?"

흥분해서 항의를 하니 고치기 싫으면 안 해도 되니 고칠지 말지 결정하란다.

암만 생각해도 외국인이라 바가지 쓴 거 같다. 나중에 다시 전화하겠다며  견적서를 상세하게 보내봐라 하며 씩씩 거리다 홍콩직원들에게 물으니 다들 놀란다.

새로 사면 얼마냐고 물어봐라, 우리 집은 가스레인지인데 엄청 싸다, 지멘스가 원래 비싸다 하며 말해주는데 큰 도움은 되지 않는다.

견적서를 받고 다시 전화를 했다.

"왜 이렇게 비싸죠? 할인은 안 되나요? 내부 부품을 꼭 교체해야 하나요?  새로 사면 대체 얼마입니까?"

이것저것 물어보니 친절히 대답해 준다.

"할인은 안됩니다. 내부부품은 교체해야 합니다. 오늘 신청하면 일주일 뒤에 배달이 오고 그다음 날 수리공이 갈 겁니다. 만일 새로 산다면 10,000불에 배달비에 설치비에~~~~"

단호하다. 빈 틈이 보이지 않는다. 좋다 대신 항의나 한번 더 하자

"지난번에 점검 온 사람은 사진만 찍고 갔는데 850불 냈다. 난 너무 비싸다고 생각한다. 아무리 방문했다지만 점검비 850불은 너무 비쌌다."

그렇게 투덜대다가 예약을 했다.  

역시나 물품 배달 예약시간은 오전 9시에서 12시 사이이고 다음날 수리는 오후 2시에서 6시 사이였다.

회사랑 집이랑 가까워서 망정이지 멀었다면 영락없이 이틀 연차를 낼뻔했다. 중간에 일정을 조정하기 위해 한번 더 서비스센터에 전화해야 했는데 그때도 점검비에 대한 항의를 빼먹지 않았다.

여하튼 서비스센터에서 말한 대로 물품 배달이 왔고 다음날 수리공이 왔다. 그런데 '이런!' 전에 점검했던 그 아저씨다. 아~내가 세 번이나 항의한 걸 전해 들었을까? 미안한 마음에 눈치를 보니 아저씨 표정이 안 좋다. 점검하러 온 날은 친절했었는데 무척이나 무뚝뚝했다.

묵묵히 깨진 유리판을 뜯어내고 내부를 살피더니 유리판만 교체하고 내부 부품은 가방에 챙긴다. 서비스 센터 직원은 조건 같이 교체해야 한다고 그랬는데 역시 기술자가 다르다. 뭐 물어보기도 겸연쩍고 쭈뼛쭈뼛하니 아저씨가 유리판 부품값을 달라고 하곤 '깨진 유리는 네가 버려'하고 가버렸다. 수리비를 안 받았다. 뭔가 이야기할 듯 말듯했던 것도 같은데 나도 더 이상 물어보지 않았다.   

미안한 마음과 돈 굳었다 하는 마음이 교차했다. 진상짓을 한 건가 아님 소비자의 정당한 항의를 한 건가 혼란스러웠다.

여하튼 예상보다 돈을 많이 세이브했다. 이겼다! 승리했다!

'아저씨 미안합니다~ 저도 돈이 없어서요. 그런데 아저씨네가 좀 심한 거 아니에요?'    



또 이런 일도 있었다. 여름이 다가와서 방안에 에어컨을 켜야 할 시기가 왔다. 전에 내 방에 살던 직원이 에어컨에서 물이 나올 수 있으니 온도를 28도 이상으로 맞추고 1시간 이상 켜지 말라고 당부를 했다. "무슨~, 난방하냐?" 하며 무시했는데 에어컨을 켜고 며칠 지나니 갑자기 에어컨이 물을 토해낸다. 그것도 '콸콸콸'하며 쭈욱 내뱉는다. 급하게 에어컨을 끄고 방을 닦다 보니 이 더위에 에어컨 없이 어떻게 지낼 수 있을까 생각이 들었다.

이번에는 또 얼마나 들까 걱정되었는데 다행히 에어컨은 집주인이 고쳐준다 한다. 다음날 집주인에게 이야기하여 에어컨을 고쳐달라 했는데 열흘 정도 기다린 것 같다. 그동안 28도로 난방과 껐다 켰다를 반복했는데 물어보니 홍콩에서 지내는 한국동료들은 모두 같은 경험을 가지고 있었다. 에어컨에서 물이 나와 침대가 다 젖었다거나 밑에 대야를 가져다 놓고 지냈다던가 하는 경험들이 있었다. 그럴 때마다 대부분 배관청소를 했다던데 문제는 청소를 해도 한 달 지나면 또 같은 현상이 반복되었다 한다. 그러고 보니 에어컨의 물배관이 보이지가 않는다. 어딘가 있겠지만 아마 배관이 작아 자주 청소를 해줘야 하는 모양이다.  

여름에 홍콩의 거리를 걷다 보면 건물 창문에 걸린 에어컨에서 물이 뚝뚝 떨어져서 머리에 맞곤 하는데 나는 그것을 '에어컨 국물'이라고 부른다. 그 에어컨 국물도 아마 작은 배관 때문이 아닐까?

여하튼 에어컨을 고치고 난 후 아직까지는 잘 쓰고 있는데 아무쪼록 별일이 없기를 바랄 뿐이다.

근데 에어컨 배관 청소비는 얼마일까? 집주인이 내서 잘 모르겠지만 그것도 비싸겠지?

작가의 이전글 홍콩에서 병원 가기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