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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게바라 Apr 30. 2024

그 섬에 가고 싶다(2): 홍콩 청차우 섬

홍콩인들의 주말 관광지

홍콩 관광청에서 추천하는 가장 인기 있는 섬 중 첫 번째로 올라가 있는 곳은 청차우 섬이다.  

나는 매년 빵축제를 여는 곳으로만 알고 있었는데 홍콩사람들에게 물어보니 다들 엄지를 올리며 어서 다녀오라 권했다. '어디 보자~~~ 주말에 함 가볼까?' 하며 인터넷을 검색하니 섬의 모양이 가운데가 아령처럼 짤록하기도 하고 혹은 동물의 목처럼 가느다랗다.  

야경 사진을 찍기 위해 느지막이 출발해 섬에 도착하니 오후 2시였다. 청차우 섬에 가려면 홍콩섬 센트럴 5번 부두에서 배를 타고 가야 하는데 1시간 정도 걸린다. 이르지도 늦지도 않은 시간인데도 커다란 배에 사람들이 꽉 찼다. '아~ 이 많은 사람들이 다 청차우에 가는 걸까? 게다가 배는 30분 간격으로 있는데 섬에는 지금 얼마나 붐비는 걸까?' 하며 도착하면 너무 혼잡해서 정신없을까 조금 걱정이 되었다. 아니나 다를까 배에서 내리니 홍콩에서 제일 붐빈다는 몽콕보다 사람이 많았다.  

게다가 선착장 앞은 해산물 식당과 길거리 음식을 파는 가게가 많아 더욱 북적댔다. 또한 부두옆에는 자전거 대여점이 있어 길에 수많은 자전거를 어지럽게 쌓아 놔서 가뜩이나 좁은 길이 더 혼잡해 보였다. 선착장에 내리면 바로 커다란 시장이다. 골목골목 이쁜 카페도 있고 길거리 음식도 있고 기념품집도 있고 건어물 파는 가게도 있는 흔한? 홍콩의 어촌 관광지다.  

대충 시장골목을 구경한 후 섬을 둘러보려 관광 안내 표지판을 보니 보니 3가지 코스가 있었다. 홍콩에서 하이킹이나 관광지를 갈 때는 안내표지판을 보고 따라가는 게 가장 낫다. 마치 라면도 조리법대로 하면 실패할 확률이 적은 것처럼 안내표지판은 실망시키지는 않는다.

먼저 표지판이 알려준 대로 Tung Wan Beach를 지나 Mini Great Wall 가는 방향을 가보기로 했다. 날은 덥고 습한 데다 사람들이 북적대서 힘들었지만  Tung Wan Beach를 지나니 어느새 한산해지기 시작했다. 사람들이 모두 시장과 해변에만 있나 싶었다. Tung Wan Beach는 길이는 제법 길지만 폭이 짧아 특이했다. 아직 수영하기엔 이른 편이어서 바다보다는 백사장에 사람들이 더 많이 있었다. 해변을 통과해 가는 길에 초등학교 고학년쯤으로 보이는 평상복 차림의 남자애들 세 명이 물에 빠진 생쥐처럼 온몸이 젖은 채 벤치에서 이야기를 하며 쉬고 있었다. 해변에 놀러 왔다가 서로 바다에 빠뜨리는 장난이라도 한 걸까? 해마다 여름이면 목동의 파리공원 분수에서 물을 한바탕 맞고 오는 아들 녀석이 생각났다. 세명의 아이들을 미소 지으며 바라보다 '니들도 엄마한테 혼나겠다~~' 말을 건네주고 싶었다.

해변을 지나 Mini Great Wall 가는 길은 얕은 산길로 인적이 뜸했다. 바다에 인접해 있어 우측 편으로는 끊임없이 새가 지져대는 산과 좌측 편으로는 탁 트인 바다를 볼 수 있는 산책길이다. 조금 올라가니 기암괴석이 서있었지만 구경할 만한 바위가 많지 않아 그야말로 미니 규모였는데 그 마저도 바위에 낙서가 되어 있었다.  

'어디 보자~~'하며 스마트폰으로 글을 번역하니 '바다를 사랑하는 마음은~~'어쩌고저쩌고 하는 시구였다. 다행이다. '누가 누구를 사랑한데요~. 하트'같은 유치한 낙서라면 완전 실망했을 수도. 첫 번째 코스는 가는 길도 짧고 가파르지도 않고 바위도 많지 않아 시시한 감이 있다. 하지만 반대로 '힘드네', '괜히 왔네' 보다는 낫지 않은가, 오랜만에 맑은 공기 마시고 새소리를 벗 삼아 한적한 길을 걸으니 그저 즐겁다.  

이번에는 두 번째 코스인 전망대에서 야경을 찍으러 가기 위해 다시 선착장으로 가야 했는데 이왕이면 안 가본 마을길로 가보기로 했다. 얼마 전 읽은 홍콩 역사에 관한 책에서 영국식민지 초기엔 빅토리아 피크와 여기 청차우는 영국인들만 살 수 있었다고 해서 어떤 마을일까 궁금했었다. 그런데 몇몇 바다를 바라보는 고급주택 몇 채 빼고는 집들이 모두 조용하고 소박했다. 내려오는 골목은 부산이나 망상의 달동네 풍경과 비슷했다. 빅토리아 피크처럼 고급주택들을 생각했었는데 아마 같은 지명의 다른 장소를 내가 잘못 안 걸까?


다시 선착장에 내려왔는데 해가 지려면 아직 멀었다. 앞에 시장으로 가서 요기도 할 겸 한국 블로거들이 추천하는 망고 찹쌀떡, 빵축제를 상징하는 찐빵, 빅피시볼을 먹었는데 그렇게 인상적이진 않았다. 하지만 관광지에서 사 먹는 길거리 음식 맛이란 게 있지 않나. 평범해 보이면서도 자극적이고 가격이 싸 보이는데 비싼, 하지만 안 먹어 볼 수는 없는 그런 맛!

그 재미를 위해 새로운 곳을 가면 길거리 음식을 꼭 한 번씩 맛본다.   

전망대 가는 길에는 도교 사원과 매년 빵축제가 벌어지는 공터가 있는데 운 좋게도 빵축제를 준비하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청차우는 빵축제 때에는 다양한 퍼레이드와 행사가 열리는데 특히 빵 따기 경기가 유명하다. 올해는 5월 21일에서 26일까지 열리고 4월 18일에 선수 신청이 마감된다 한다. 빵으로 쌓은 탑에 올라가 제한된 시간 안에 빵을 많이 가져오는 사람이 승리하는 경기다. 예전에 사고가 나서 한동안 중지된 적도 있다고 하는데 그래서 사전에 신청을 받고 테스트를 한 후 선발된 선수만 참가한다. 원래 기원은 해적들에게 희생당한 주민들의 영혼을 기리기 위해서 혹은 나쁜 기운의 영혼을 막기 위해서라고 하는데 빵을 제사상에 올린 것이 기원이라고 한다. 빵 따기 경기를 위한 구조물을 실제로 보니 아직 완성이 안되어서 그런지 그렇게 높아 보이진 않다. 하지만 저기 꼭대기로 빠르게  올라가서 빵을 따는 모습을 상상하니 박진감 넘칠 것도 같다.   

 

슬슬 날도 저물어 가고 야경을 찍기 위해 전망대로 슬슬 올라가니 몇 분 안 되어 바로 정상이다. '으잉? 이렇게 얕다고? 사진 찍을 수 있는 거야?' 하며 좀 조금 더 걸어가니 아름다운 길이 바다 사이로 펼쳐진다. 홍콩 관광책자에서 봤을까, 인터넷에서 봤을까 어디서 본 듯한 이쁜 길을 따라가다 보니 인터넷에서 봤던 뷰포인트를 찾았다. '바로 여기서 찍었구만' 하며 하늘을 보니 해가 쉽사리 떨어질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길의 끝까지 가보자 하고 한참을 내려가니 어느덧 다시 바다가 보이고 Coral Beach다. 사람도 없고 해변에 쓰레기도 있는 게 무인도 같다. 무인도에 갇힌 사람처럼 백사장에 앉아 한참을 바다를 보며 해가 저물기를 기다리다 다시 뷰 포인트로 올라가니 사람들이 하나 둘 하산하고 있었다. 좀 더 기다리니 날도 어둑해지고 이 산속에는 나밖에 없다. 근데.... 아무리 나지막한 산이고 부두와 가깝다고 하나 여기도 산이 아닌가? 오는 길에 아까 들개인지 뭔지 개들이 모여 자고 있던데.... 하늘에는 독수리 같은 큰 새라 내 머리를 맴돌고.... 불쑥 어두운 하산길을 걱정되면서 고민하며 최대한 버티다 보니 멀리 건물들에 하나 둘 불이 들어오기 시작했다. 조금만 더 어두워지면 좋겠는데 이쁘게 사진이 나올 거 같은데 또 돌아가는 길은 겁이 나고 최적의 시간을 찾아야 했다. 그렇게 얼마간 사진을 찍다 하산을 했는데 사진이 좀 아쉽다. 딱 원하는 그 장면이 안 나온다. 하지만 예상대로 내려오는 길은 어둑 컴컴해서 잘 내려왔다 싶기도 했다. 내가 무슨 사진작가도 아니고 말이다.  

다시 홍콩섬을 돌아가는 배안에서 오늘 찍은 사진을 보다가 '월터의 꿈은 현실이 된다' 영화가 생각났다. 영화의 마지막 즈음에 사진작가 숀펜은 그토록 사진을 찍기 위해 기다리던 눈 표범을 만나고선 사진기를 내려놓으며 그 순간을 눈에, 마음에 담으며 말한다. "어떤 때는 안 찍어. 아름다운 순간이 오면 카메라로 방해하고 싶지 않아. 그저 그 순간 속에 머물고 싶지. 그래 바로 저기 그리고 여기"  

나도 차라리 사진에 신경 쓰지 말고 해가 차차 저물며 불이 하나둘 켜지는 해변과 부두의 광경을 바라봤다면 좀 더 좋았을까? 핸드폰에 저장된 사진처럼 멋진 야경을 보며 느껴던 감정이 좀 더 오래 마음에 저장되지 않을까?  

혼자 어두워지는 낯선 산속에서의 두려움과 사진의 각도만 신경 쓰다 보니 아쉽다. 다음에 올 때는 사진보다는 마주치는 풍경과 내 감정에 좀 더 충실해 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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