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도 일정 부분 동의합니다. 그랬으면 조금은 더 유행의 결을 맞췄을지도 모르는 일이죠.
그런데 한 가지 문제가 있었어요. 다른 것들을 이야기하자니 마치 '제 것'이 아닌 것 같은 느낌을 받았거든요. 그걸 두고 어떤 재미난 이야기를 한다고 해도 진짜 내 이야기는 아니겠다 싶었던 거죠.
<기획자의 독서>, 김도영
사람이 일을 한다는 것은 생각을 한다는 것이고, 그것은 큰 틀에서 '기획'을 벗어나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업무 보고서를 쓰는 것도, 사업 계획서를 짜는 것도, 누군가를 설득하는 것도, 콘텐츠를 만드는 것도, 모두 '기획'의 범주 안에 든다고 여기기에 나는 늘, 어제보다 오늘, 이 '기획'이란 것을 잘하고 싶었다.
그런 내가 최근 몇 년 동안 관심을 가져온 영역이 있는데, '나라는 사람은 어떤 이야기를 할 수 있고, 세상 사람들에게 어떻게 전달해야 하는가'에 관한 것이다.
처음에는 내가 할 수 있는, 하고 싶은 이야기는 무엇일까?로 시작했었다. 그런데 소위 퍼스널 브랜딩, sns 콘텐츠 기획, 글쓰기, 마케팅에 대해 점점 깊이 팔수록,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보다는 해야 하는, 소위 시장에서 잘 팔릴 수 있는 이야기를 해야 할 것만 같은 느낌에 사로잡혔다.
잘 팔리게 하려면 어떤 소재나 주제를 골라야 하나, 타겟팅은 누구여야 하나, 플랫폼은 어디를 써야 하고, 글쓰기 방식은 어때야 하나.. 등등
나로 시작했지만, 점점 내가 없어지는 느낌이랄까. 애초의 의도는 사라지고, 이루어야 하는 결과만 남은 모양새였다. 길을 잃은 기분이었다.
시행착오와 방황을 거쳐 지금에 이른 나는, 여전히 내가 어떤 이야기를 할 수 있는지, 또는 해야 하는지 잘 모른다. 다만, 지금 이 순간 나를 구성하는 것에 대해 이야기하기로 마음먹었다. 다시 나로 돌아온 것이다.
그래서 저자의 말이, 저자의 시도가 반가웠다. 저자는 기획자로 일하는 자신의 경험을 담아 책 이야기를 하고 싶었지만 책에서 또 '책' 이야기를 하냐며 주변에서 핀잔을 많이 들었다고 한다.
생각해 보면, 뭔가가 되어 간다는 것은 시도가 모여 모양을 갖추는 것인데 머릿속에서 너무 완성된 모양만을 좇다 보면 오늘의 시도에 너무 힘이 실리는 것 같다. 힘이 실린다는 것은 결국 무겁다는 얘기이고 무거우니 지속하지 못하고 포기하게 되거나, 오늘 치의 시도를 망설이게 된다. 결국, 내가 그리는 모양은 실현되지 못하고 내 머릿속에만 남게 된다.
미래 사회, 콘텐츠, 개인, 변화, 성장... 이런 류의 키워드를 파 나가다 보면, 결국 도달하게 되는 지점이 ‘인간으로서 한 개인의 고유성’인 것 같다.
'개인 고유의 것'을 발견하여 표현하고,
그것을 좋아해 주는 사람을 찾아내서
서로의 경험과 시간을 쌓아나가는 것.
그리고 그 시작은 거창한 것이 아닌,
자신의 '작은 서사'에서 시작하는 것.
여기서 '개인 고유의 것'이란, 나의 스토리, 내러티브, 인생의 주제, 세계관, 경험, 능력, 단점, 약점, 관심, 아픔, 강점... 그 외에 내가 인식하는 나의 모든 것들의 총합이지 않을까 싶다.
만약 나는 그런 게 없다는 생각이 든다면, 아직 발견하지 못했거나, 발견했어도 드러내고 싶지 않거나, 드러낼만한 것이라 생각하지 않거나, 이지 않을까?
내가 글을 시작하면서 인용한 김도영 작가(기획자)와 다른 플랫폼에서 인상 깊게 본 네이버 인플루언서(팔로워 4만 명, 누적 조회 수 1500만 회)이자 현직 마케터인 이형기 신세계백화점 콘텐츠전략팀장이 제일 처음에 어떤 글로 시작했는지를 검색해 봤다.
그들의 초기 글들은 내가 보기에 지금처럼 성숙하고 정제된 콘텐츠가 아니었다. 뭐라도 해보기 위해 지금 가지고 있는 것들을 꺼내 보이는 느낌이랄까. 시간이 흐르면서 경험도 쌓이고 주변의 피드백을 들으면서 자신이 하고 싶은 이야기, 남들이 인정하는 콘텐츠를 통해 방향성을 찾아나간 것 같았다.
그래서 난 오늘도 용기를 얻는다. 지금은 너무나 완성형으로 보이는 그들도, 처음엔 그저 작은 시도를 해보는, 나와 다를 것 없는 시절이 있었다는 것에. 그래서 난 '그들의 지금'을 닮으려고 애쓰기보다는 '그들의 시작'을 배워보려고 한다.
그런 환상은 잠시 접어두고서, 그저 기획하며 살고 있는 한 사람의 책 읽는 생활을 보여주고 싶었습니다.
<기획자의 독서>, 김도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