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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삼선 윤일원 May 21. 2024

나를 슬프게 하는 것들

쫓겨난 나라보다 죽은 나라가, 죽은 나라보다 잊혀진 나라.

이 세상에서 가장 가여운 여자는 누구일까?


프랑스 화가 마리 로랑생(Marie Laurencin)은 “쓸쓸한 여자보다 불행한 여자가, 불행한 여자보다 병든 여자가, 병든 여자보다 버림받은 여자가, 버림받은 여자보다 의지할 데 없는 여자가, 의지할 데 없는 여자보다 쫓겨난 여자가, 쫓겨난 여자보다 죽은 여자가, 죽은 여자보다 잊혀진 여자”가 가장 가엾다고 말했다.


참으로 여성의 심리를 맛깔나게 묘사했다. 병들고 아프고 쓸쓸하고 굶주린 여자보다 ‘잊혀진’ 여자라니, 참으로 초현실적이고 낭만적이라 그래서 현실에서 매우 드문 희소성이기에 우리는 극적으로 ‘빵' 터져 공감한다.

이 세상에서 가장 불쌍한 나라는 어떤 나라일까?




“쓸쓸한 나라보다 불행한 나라가, 불행한 나라보다 병든 나라가, 병든 나라보다 버림받은 나라가, 버림받은 나라보다 의지할 데 없는 나라가, 의지할 데 없는 나라보다 쫓겨난 나라가, 쫓겨난 나라보다 죽은 나라가, 죽은 나라보다 잊혀진 나라다.”


공자의 제자 자공은 스승에게 묻는다. 


스승님 정치는 무엇입니까? “백성이 등 따습고, 군사가 넉넉하고, 백성에게 믿음이 있어야 하느니라.” 오호라, 그렇군요. 그런데 스승님, 만약에 이 중 하나를 버린다면 무엇을 가장 먼저 버려야 하나요? 


“옳거니, 자공이여, 그대는 참으로 내 제자답다. 가장 먼저 군대를 버려야 한다. 군대를 버려도 식량은 남아있으니 백성이 굶어 죽기야 하겠느냐?*”


그렇군요. 스승님, 그러면 왜 믿음을 맨 나중에 버려야 하나요?


“백성에게 믿음이 없다면 나라가 존립할 수 없기 때문이니라(民無信不立)”



나라가 위기에 처했다. 구한말이다. 곳간은 텅텅 비어 임진왜란 때 불탄 경복궁 근정전 하나 겨우 지을 수 있는 수준이었고, 군인에게 식량을 배급할 수 없어 모래 섞은 쌀을 배급했다. 연일 서구 열강과 일본은 강화해협을 지나 한강 마포에 진을 치고 있었다.


고종은 미리견(彌利堅, 미국)을 언급하면서 말한다.


“조선은 천 년 동안 예의와 정의를 숭상한 나라였다. 어찌 우리가 개나 돼지와 같은 야만인들과 평화롭게 지낼 수 있겠는가?”


우리는 먼저 침략을 해결하고 그다음 굶주림을 따져야 합니다. 허리띠를 아무리 졸라매더라도 미친개를 먼저 때려잡을 몽둥이가 필요 합니다.


이것이 백성의 마음이다. 


존재의 문제와 선택의 문제, 이는 완전 다르다. 


전쟁은 존재의 문제이지 선택의 문제가 아니다. 한번 패망하면 그다음 겪는 온갖 수모와 참상을 아무리 이야기해본들 무슨 소용이 있는가? 


이미 늦은 것이다. 잊혀진 나라, 소멸한 나라 그들이 설 곳은 없다.




"군사는 나라의 큰일로서 죽고 사는 문제요 존망의 도이니 어찌 살피지 않을 수 있으리오(兵者 國之大事, 死生之地, 存亡之道, 不可不察也.)" (손자병법 시계 1-1)


이것이 손자와 공자의 극명한 대립이며  우리는 공자의 화두 “백성에게 믿음이 없다면 나라가 존립할 수 없다”라는 명제를 어떻게 할 것인가? 마치 고종이 ‘예의와 정의’를 논한 것과 무엇과 다른가?


국가의 이성과 개인의 감성 충돌이다. 공자 사후 2000년 지나 발생한 유럽의 30년 전쟁 결과 “국가는 나무나 돌처럼 무생물이라 ‘도덕’을 묻지 않는다.”가 정설이 되었다. 다만, 국가라는 브랜드가치를 위해서 노력할 뿐 더 이상 더 이하도 아니다.



#손자병법 #시계편


*<논어> 안연편 제7. 子貢 問政. 子曰 足食, 足兵, 民信之矣. 子貢曰 必不得已而去, 於斯三者何先? 曰 去兵. 子貢曰 必不得已而去, 於斯二者何先? 曰 去食, 自古皆有死, 民無信不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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