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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삼선 윤일원 May 25. 2024

사주팔자와 이름 석 자

사주팔자보다 관상을, 관상보다 심상을, 심상보다 감사를

자고로 "하늘은 녹(祿)이 없는 사람을 내지 않고, 땅은 이름 없는 풀을 내지 않는다."라고 했듯이 사람이 태어나면 반드시 식별 부호인 이름(名)이 있다. 기왕 이름을 지을 바엔 뜻도 좋고 부르기도 좋아야 하며 더불어 이름 덕에 사주팔자를 고쳐야 함은 당연하다.     


조선 중기 때 이름(名)이 김홍연(金弘淵)이라는 사람이 있었다. 자는 대심(大深)이오, 호는 발승암(髮僧菴)이다. 무과에는 급제했으나 집안에 돈이 많아 벼슬로 나아가지는 않았다.     


그는 다소 한량 기질이 있어 '기생 둘을 겨드랑이에 끼고 두어 길 되는 담장을 훌쩍 뛰어넘을 정도'로 제법 풍류도 알았고, 한양을 드나들던 상인으로부터 진귀한 그림이나 보도(寶刀), 거문고, 기이한 화초와 이름난 매(鷹)와 백마를 죄다 사 모았다.     


그렇게 한 이유는 단 하나, 후세 사람에게 이름(名)을 알리고 싶어서였다. 하지만 이름이 생각만큼 그렇게 널리 알려지지 않자 드디어 묘한 생각을 하게 된다.      


이름난 산꼭대기 절벽 가장 외지고 험한 곳에 큼지막하게 ‘金弘淵’을 새기고 붉은 인주를 넣어 어디서든지 잘 보이게 했다. 동으로 금강산, 북으로 묘향산, 백두산 남으로 한라산, 속리산, 가야산 등 명산 어느 곳이든 그의 이름이 있었다.     



한 사람이 태어나면 반드시 이름을 짓는다.      


이름(名)은 집안의 부모나 조부모 혹은 이름있는 분이 지어주나 <예기>에 이름을 함부로 부를 수 없다고 하여 꺼릴 ‘휘(諱)’ 자로 불리기도 한다. 그래서 필요한 것이 자(字)였다. 자는 주로 남자가 성인(20세)이 되었을 때 부르는 이름이다. 자(字) 또한 부모나 스승, 이름있는 분이 지어주기에 이름만큼 꺼리게 되니 드디어 호(號)를 짓게 된다. 호는 스스로 짓는 자호(自號)에서부터 친구나 지인, 스승 등 다양하며 그 사람의 정체성을 가장 잘 표현했다 할 수 있다.     


그럼, 내 두 아들의 이름은 어떻게 지었는가? 당연히 아버님이 지어주었다. 

    

큰 손자가 태어나자 병(炳) 돌림자를 앞에 두고 一(한일)로 지어주었다. 아버지는 ‘一’ 자를 무척이나 좋아하여 내 이름도 돌림자를 빼면 '一' 자이니, 사실상 내 이름과 아들 이름은 같다. 둘째 손자가 태어나자 기력이 쇠하신 아버님이 내보고 지으라 하여, 국가 권력을 상징하는 '발이 세 개 달린 가마솥(鼎, 정)'을 생각하였으나 발음이 돌림자가 어울리지 않아 솥귀 鉉(현)으로 지었다. 솥귀는 아무리 가마솥이 커도 3개의 귀가 없으면 걸리지 않으니 꼭 필요한 존재가 되라는 뜻이다.     



지난달 곡우 전 화계 삼신마을 녹차 덖음 여행을 함께 했던 최 이사님이 드디어 손자가 태어났다. 이미 그때 손자가 곧 태어날 예정이어서, 칠불사 주지 도응 스님께 부탁을 드렸고, 드디어 지난주에 손자가 태어나 사주를 보내니 金範埈(김범준), 金旼局(김민국) 두 이름을 받았는데 뜻풀이는 없었다.     


오호라, 어찌 할미가 이 궁금증을 참을 수 있겠는가? Chat GPT-4에게 풀이를 부탁했더니만, “범준은 도덕적 본보기와 높은 성취를, 민국은 온화한 성품과 국가적 포부를 담고 있습니다.”라고 알려준다. 그러면서 “개인의 가치관이나 가족의 바람, 발음의 편리함을 중요하다”라고 덧붙인다.     


요즈음 집안에 아기가 태어나면 대부분 작명소에서 적게는 3만 원에서 많게는 수백만 원을 주고 이름을 짓는다. 그러다 보니 옛 어른들이 그토록 소중하게 생각했던 이름에 담긴 ‘뜻’보다는 부르기 쉬운 이름이 되어, 그 시대에 유행하는 식별 부호(1, 2, 3…. ∞)가 된 듯도 하다.     



어찌 한 인간의 태어난 사주(연월일시)가 그 사람의 운명을 결정지을 수 있는가? 나는 이름에 담긴 뜻과 발음도 중요하지만, 지은 할미의 정성뿐만 아니라 어미 아비의 정성으로 그가 한평생 버틴다는 것도 잘 안다.      

그렇지 않은가?      


그토록 이름을 후대에 알리고 싶어 했던 김홍연도 연암 박지원을 만나 <발승암기(髮僧菴記)>라는 기록의 소재가 되어 겨우 이름을 반쯤 알렸으니, 온전한 것을 이루려면 태어나게 한 부모의 정성에다, 이름을 지어준 이의 정성에다, 국가라는 커다란 버팀목이 있어야 한다. 거기에 사주팔자보다 관상을, 관상보다 심상을, 심상보다 감사를 더 해야 한다는 사실을 우리 範埈(旼局) 이도 잘 알 것이로다.     


*사진은 홍제천 장미(2024.5.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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