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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쿰파니스 Apr 25. 2024

구름이 이마에 닿은 날

240416. 감사 일보 3.

하느님도 뒤끝이 있나 보다.

어제 줄기차게 비를 내려주시길래 하루로 끝내실 줄 알았다.

그런데 웬걸,

오늘도 오전 내내 이어졌다.

이슬비와 가랑비 중간쯤 되게.


지쳤음인지 아님 이만하면 되었다 싶었는지,

오후 들면서 비는 그치고 구름이 땅으로 내려왔다.

잠시 한눈이라도 팔다간 구름에 이마 부딪치기 십상이었다.


이마에 닿는 구름 사이로 바라본 오늘의 감사한 일들이다.


- 보험이여 안녕


암보험을 해약했다.

매달 30만 원 가까이 20년 납이다.

90세가 만기다.

2년 넘게 넣었다.

적립금이 7백몇십만 원이라고 했다.

1백2십여 만 원 돌려받았다.


얼마 전 길을 걸으며 보험사 광고를 보았다.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보험을 들면 누가 더 이익인가.


간단한 확인 방법이 떠올랐다.

보험사에 해약 문의 전화를 했다.

극구 만류한다.

듣고 있자니 눈물겹다.


문득 영화 '다음 소희'가 떠올랐다.

'계약 해지를 요청할 때 어떻게든 유지시켜야 한다.

그게 유능한 직원이다.'


확실했다.

보험은 보험사에 이익이라는 심증이 강하게 들었다.

내게 더 이익이 컸다면 그리 입에 거품 물고 유지시키려 노력하지는 않을 터이다.


며칠간 냉정하게 생각해 보았다.

20년이면 6천만 원가량 납입한다.

암, 상해, 심혈관 등을 보장한다.


그런데 그런데 말이지,

온몸 빠진데 없이 모두 아파서 보장을 받는다 해도 이 금액보다 적었다.

보험사가 비싼 땅에 빌딩 짓고 돈 버는 이유가 어렴풋이 짐작이 갔다.


언젠가 진짠지 가짠지 모를 이런 풍문을 들었었다.

보험사가 상품을 출시할 때는 그 일이 일어날 확률이 0.02% 미만일 때라고.

맞는 것 같다.


보험금 수령액이 뉴스로 나올 때가 있다.

뒤로 넘어져 코피 터지는 일처럼 드물다는 뜻일 게다.

해약하길 잘했다.


누님이 걷는 것이 좋다고 했을 때 긴가민가 했었는데,

걷기에 이런 묘용까지 있을 줄이야.


고마운 일이다.

(보험 관련업에 종사하시는 분들의 오해가 없었으면 한다.

이건 순전히 내 생각일 뿐이까.)

(보험 든 사연은 다음에 해야겠다)


- 생얼로 당당하게

작년 여름 광선각화증으로 고생했다.

햇볕 많이 쫴서 피부에 문제가 생긴 것이다.

피막 이식 수술을 받았다.

병원도 한 달여 들락거렸다.

치료는 아직도 진행 중이다.


햇볕에 민감한 피부니 노출을 삼가라는 처방을 받았다.

그날 이후 선크림은 생필품이 되었다.

눈사람처럼 하얗게 지내는 날이 많다.


오늘 선크림을 건너 뛰었다.

화장품 광고에,

흐린 날은 자외선이 굴절되어 더 위험하다고 잊지 말라고 당부하지만

이런 날 하루쯤이라도 지친 얼굴 피부에 휴식을 주고 싶다.

왜, 피부에 휴식도 필요하니까.


순전히 비와 구름 덕택이다.

"하느님, 이런 날을 주셔서 고맙습니다."


- 봄날 그리고 겨울옷​


크리스마스가 가까워지나 보다.

춥다.

비가 내리고 덩달아 기온도 내려갔다.

봄옷으로 만끽하던 상쾌함도 삼일천하로 끝났다.

갑자기 싸늘해진 날씨에 옷장에서 잠자던 겨울 조끼를

꺼냈다.


작년 겨울의 일이다.

시장에 점퍼를 사러 간 일이 있었다.

주인장이 싸게 줄 테니 조끼도 들여놓으라고 권했다.

이럴 때 사 놓으면 후회하지 않을 거라는 은근한 꼬임과 함께.

할인율에 감동받아 가져왔다.


문제는 이게 입을 일이 없다는 것이었다.

옷장만 차지하던 애물단지였다.

귀가 얇았던 당시를 후회했다.

반성 참 많이 했다.


그 옷을 드디어 활용한 것이다.

봄이 한창일 때, 그것도 겨울옷을.

여하튼 그 주인의 선견지명 때문에 나름 괜찮은 하루를 보냈다.


늦게나마 고마움 전한다.


- 내 마음 푸르게 푸르게

꽃 피는 춘삼월이 지났다.

바람이 지나며 꽃잎이 날리고,

숲은 연녹색으로 변했다.

비가 적시고 사월의 나무는

진녹색 옷으로 갈아입었다.

싱그런 잎새에 마음이 푸르러진다.


봄날의 싱그런 풍광에 감사한다.


- 이런 재주라도 있어서 다행


벌써 세 번째 감사 일기다.

시작하기까지 많이 망설였다.

종이를 펼치면 광막한 벌판이었다.

처음 며칠은 제목만 적었다.

다음 몇 번은 일기장에 소심하게 적었다.

과감해지기로 했다.

블로그에 페이스북에 올렸다.

드디어 브런치에도 올린다.

다행이다.

이런 글 쓰는 재주라도 있어서,


참으로 고맙고 감사한 일이다.


오늘의 감사 일기 끝.


새벽 안개비로 길이 촉촉하다. 맨발걷기하면 딱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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