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고요한비 Jun 22. 2024

처음부터 무작정은 아니었다.

40대 초등교사 미국 유학기

처음부터 무작정은 아니었다. 분명 준비를 했다. 몇 개월에 걸쳐 준비를 했는데, 그것이 무용해졌을 뿐이다.


애초 우리의 계획은 일본에서 일년살기였다. “왜 일본이야?” 당연히 미국으로 갈 것으로 생각한 지인들은 우리의 의외의 계획을 의아해했다.

포켓몬고, 일본 애니 덕후인 남편에게 일본은 우리나라에서 보기 드문 포켓몬이 길바닥에 널린 곳, 연재만화책을 신간으로 빨리 읽겠다는 꿈을 실현할 곳, 약간의 히키코모리 기질이 있는 내게 일본은 온갖 장르의 집콕 취미생활의 천국(그래, 한심하겠지), 그것에 더해 우리나라 교육시스템의 원조인 나라에서의 학부모체험 등에 대한 흥미(그래, 어이없겠지) 등은 덮어두고, 우리는 “대중교통이 잘 갖추어져 있어 차를 구매할 필요도 없고, 남편을 초청하는 학교에서 아파트를 지원해 주기 때문에 생활비가 크게 들 일이 없다, 한국과 문화가 비슷하여 적응이 쉬울 것이다. 한국에 쉽게 드나들 수 있어 이주에 대한 부담이 없다.”는 현실적이고 이성적인 답을 내어놨다. 그러면, 다들 고개를 끄덕이면서도 여전히 개운치 못한 기색으로 하나같이 “애들은 국제학교에 갈 거지?”라고 이어 물었다. “아니, 일반학교에 보낼 건데.” 이 대목에서, 그들의 눈빛은 미묘하게 살짝 흔들렸다. “애들은 일본어를 잘해?” “아니, 이제 학교에 가면 배우겠지. 어리잖아.” “너 일본어는 할 줄 알아?”, “응? 일본 여행 가보니, 한자만 읽어도 살겠던데? 밥 먹고 돌아다니는데 뭐 문제 있겠어?” 이쯤 되면, 그들의 눈동자는 마구 흔들리고, 입술은 꿈틀꿈틀, 내 시선을 잡아끌지만 (그래, 할 말 많겠지) 매우 점잖게도 그들의 입술은 지퍼를 꾹 채운채 터지지는 않았다.

그러나, 나도 그들의 생각을 짐작할 정도의 눈치는 있었다. 남편 역시 나와 별반 다르지 않은 경험을 하고, 우리의 낭만적이고 완벽해 보였던 일년살이 계획이 대책 없고 무모한 것이 아닌가 의심이 들기 시작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