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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장 오사주 Apr 25. 2024

나비에 대한 이해


    내담자의 한숨이 가슴속을 후벼 판다. 부모님의 권유로 공무원 시험에 도전했지만 수차례 고배를 마신 그는 우울증과 수면 장애로 고생하는 중이었다. 자포자기하고 싶은 심정이지만 그랬다가는 정말로 삶을 망쳐버릴 것 같다며 자신을 이 지경으로 만든 부모님을 원망하고 또 원망했다. 밝은 미래를 선명하게 읽어 주며 위안을 건네고 싶었다. 하지만 그러면 그럴수록 머릿속이 더 복잡해져 차마 입이 떨어지지 않았다. 헛된 희망을 줬다가는 깊은 실망에 빠져 좌절할 것이 뻔하기 때문이다. 내일은 또 어떤 사연들이 나를 찾아올까 괜스레 두려워진다. 행여라도 헛다리를 짚을까 싶어 예약된 내담자들의 사주팔자를 한 번 보고, 두 번 보고, 세 번 보는 걸로도 모자라 자기 전에도 한 번 더 들여다보곤 한다.




    답답한 마음에 터벅터벅 산책을 했다. 지난주만 하더라도 더위를 이기지 못해 땀을 뻘뻘 흘리며 걸었는데 어느덧 선선한 바람이 부는 걸 보니 가을이 성큼 다가왔나 보다. 매미의 울음소리가 잦아든 자리를 찌르르 귀뚜라미 우는 소리가 대신한다. 노을로 물든 주홍빛 하늘 위를 너풀너풀 날아가는 흰나비도 보인다. 언젠가 다큐멘터리에서 보았다. 나비는 저 가녀린 날개를 팔랑이며 멕시코까지 날아간다고. 놓치고 싶지 않은 순간을 사진에 담으려 재빨리 핸드폰을 꺼냈지만 나비는 갈 길이 급했는지 그새 앵글 밖으로 사라졌다. 그 뒤를 끈질기게 쫓아가며 휴대폰을 들이댔지만 그런 나를 약 올리기라도 하듯 번번이 우아하게 달아나는 나비였다. 결국 사진 찍기를 포기하고 바닥에 주저앉아 나풀나풀 춤추는 나비를 가만히 바라봤다.




    고전 속 사주팔자의 고수들은 생김새만 보고도 그 사람의 과거는 물론이요, 미래까지 맞혔다고 한다. 뿐만아니라 바람에 흩날리는 나뭇잎을 보면서 앞날을 예견하기까지 했단다. 이 사실을 알게 된 이후로 모든 생명체의 몸짓 하나하나를 눈여겨보게 된다. 고전 속 도사처럼 나비의 날갯짓을 보며 삶의 비바람을 피할 방법을 사람들에게 들려주고 싶은 마음에서다. 하지만 이건 나의 욕심이라는 걸 안다. 깊은 겨울, 땅속에서 잠자고 있는 새싹은 아무리 춥고 외로워도 봄이 오길 재촉하지 않는다. 어두운 밤 세상 밖에 나와 목이 마르더라도 따스한 햇볕과 쏟아지는 빗물을 묵묵히 기다린다. 꽃을 피웠을 때조차 나비에게 이리 오라고 소리치는 대신 언젠가 자신에게 다가와 꽃가루를 퍼트려 주길 그저 기다린다. 순리대로 돌아가는 대자연의 조화 속에서 자신이 필요한 바람의 방향과 봄비가 내리는 때를 갈구하는 건 오로지 인간뿐이다. 이러한 사실을 알면서도 내담자들의 기구한 사연을 들으면 덩달아 마음이 조급해진다. 그래서 자꾸만 점쟁이처럼 “보자, 보자, 어디 보자….” 주문을 외며 언제쯤이면 이들의 삶이 술술 풀리는지 미래를 점치려 애쓰는 것이다.




    이런저런 생각으로 괴로워하던 그때, 나비가 꽃 위에 살포시 내려앉았다. 꽃잎 하나하나에 귓속말이라도 속삭이듯 한참을 머무르던 나비는 바람결을 타고 날아온 꽃내음을 맡았는지 이내 날개를 움찔거렸다. 혹시 저 꽃으로 날아가지 않을까. 나의 짐작은 틀리지 않았다. 어쩌면 다음은 저 꽃으로 날아가지 않을까. 짐작은 확신이 되었다. 그래, 다음은 저 꽃으로 날아갈 거야! 안타깝게도 나의 도사 놀이는 여기까지였다. 하지만 조금은 알 것 같다. 나비의 움직임을 카메라에 담을 수 없듯 내담자의 앞날 역시 선명하게 읽어낼 수 없음을. 나비를 가만히 바라보아야 비로소 그 움직임을 읽을 수 있듯 내담자의 이야기에 귀 기울여야 그가 나아갈 방향을 예측할 수 있음을. 인생의 암흑기를 지나고 있다면 언제쯤 해가 뜨는지 일러 주고 그 햇살 아래에서라면 어디로든 나아갈 수 있다는 사실을 믿게 해주는 것이 내가 할 수 있는 일의 전부임을 말이다.




    다음날, 새 마음으로 새 손님을 맞이했다. “사람 때문에 너무 힘들어서요. 전 직장에서 상사가 너무 괴롭혀서 그만두고 지금 회사로 이직한 건데…. 이번에는 더 힘든 거예요, 진짜. 예전에 어디에서 들었는데 전 사람한테 평생 시달리는 사주래요. 설마 그게 진짜예요? 전 언제쯤이면 안정될까요?” 한숨 섞인 목소리로 고민을 토로하는 내담자의 말을 묵묵히 듣던 나는 회심의 미소를 지으며 입을 열었다. “선생님, 혹시 나비가 얼마나 멀리까지 날아갈 수 있는지 아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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