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끔 아무 말 대잔치 02
언젠가부터 빵의 사진을 찍었다. 단순하게 기록용. 그렇게 인스타그램을 시작했다.
하나, 둘 달리는 리플을 통해 다른 사람들과 빵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은 재미있었고, 그렇게 계속 사진을 찍어갔다.
아무 생각 없이 빵을 책상에 펼쳐놓고 한 두장 찍고 말던 사진은 접시에도 담아 놓고 찍어보고 이리저리 세팅도 해가며 찍기도 하다가
급기야는 카메라에 손을 대기까지 이르렀다.
그러다 지금은 이상한 습관이 들었다.
내가 먹는 모든 빵의 사진을 찍으려 하는 강박증 아닌 강박증.
스튜디오에서 조명을 설치해 찍지 않는 이상, 아니 설사 그렇게 해도
밤에 찍은 음식 사진은 대낮에 자연광을 받는 상태에서 찍은 사진을 따라가지 못한다.
물론 내가 전문가가 아니니 기술이 모자란 걸 수도 있다.
그래, 낮에 사진을 찍어야 써먹을 데가 생긴다.
그것이 SNS든, 다른 출판물에 들어가든 말이다.
인천에 사는 나에게 가장 힘든 일은 바로 이것이었다. 장기 보관이 힘든 빵과 디저트의 특성 때문에 밖에서 빵을 사면 당일 해가 지기 전에 돌아와야만 했다.
그래야 사진을 찍을 수 있으니까.
어처구니가 없는 일이다.
보통을 서울로 많이 가기 때문에 왕복에 걸리는 시간만 세 시간이 넘는 경우가 허다한데
해가 지기 전에 집에 도착하려면 오후 세시가 되기 전에 서울에서 인천으로 출발해야 하니 말이다.
서울에 머무는 시간이 이동시간보다 짧아지는 날이 많아지다 보니
결국 버티지 못하고 선택하게 되는 방법은 그냥 늦게 들어가고 다음날 아침에 사진을 찍는 방법이었다.
여기서 발생하는 문제가 바로 망가진 빵의 사진을 찍는 문제.
하루 종일 들고 움직이는 빵과 디저트 그런 것들이 제 모양을 유지할 리가 있겠는가?
아무리 조심해도 망가지거나 눌리는 일은 발생한다.
날이 더울 때는 크림이나 버터가 올라간 빵이나 디저트는 삽시간에 녹아버린다.
보냉팩은 이동 시간이 짧을 때나 의미가 있다.
몇 시간이나 걸려, 몇만 원이나 주고 사온 디저트가 팍삭 주저앉아버린 모습을 집에서 확인할 때의 허탈감이란 어떻게 말로 표현할 수가 없다.
솔직히 이러한 집착이 부질없다는 걸 잘 알고 있다.
그렇게 잘 찍은 사진이라도 쓰이지 않고 버려지는 경우는 무척이나 많다.
물론 가끔 아주 가끔 요긴하게 쓰일 때가 있기는 해서 이런 집착을 못 버리지 않나 싶기도 하지만 말이다.
왜 내가 하필 유통기한이 이리도 짧은 빵과 디저트라는 음식에 취미가 붙어 이렇게 되었나 하고 자책도 해본 적도 있다.
어쩌다 주객이 전도되어 빵을 즐기는 그 자체보다 사진을 남기는 것에 더 열중하게 된 것일까?
어느 순간부터 나를 보는 사람들은 음식의 맛있어 보임 보다 사진의 색과 구도, 감성 그런 것들에 더 관심을 가진다.
나 또한 음식보다 음식을 둘러싼 배경, 플레이팅 그러한 요소들에 집중하고 있다.
누구는 포토그래퍼가 아니냐고 물어본다.
처음엔 사진 전문가가 되는 것도 좋지 않을까 생각했었는데,
역시 나의 길은 아니지 싶다.
그쪽도 그쪽 나름의 힘든 점이 많은 건 당연할 테지.
게다가 솔직히 나라는 사람이 사진에 유니크한 재능을 가진 것도 아니었으니. 나는 사진에 필요한 재능보단 다른 쪽의 재능을 더 많이 가진 사람이었다.
사람들은 으리으리한 공간, 멋진 풍경이 있는 여행지 그런 것들을 더욱 좋아하는 모양이다.
물론 당연하기도 하고, 나도 싫어하진 않는다.
하지만 나는 여전히 맛있는 빵집을 발견하고, 맛있는 빵과 디저트를 먹고 있을 때의 내가 가장 좋다.
인생 샷이라는 사진 속에 담긴 나는 뭐 진짜 나 같지도 않으니까.
그 특유의 감성이 있어야 인스타그램을 잘한다는데,
내 감성은 주류와는 한참 동떨어져 있다.
주류가 되고 싶은 생각도 없고.
그래서 결론은, 요즘엔 빵 잘 먹고 있다는 거다.
뭐든 조금 내려놓으면 편하다.
사진 안 찍고 먹는 빵이 많아졌다. 기록은 남지 않지만 몸과 마음이 즐거웠으면 된 거 아니겠는가.
덕분에 살도 포동포동 찌고 있다.
망가진 빵을 보며 자책하는 일도 줄었다.
망가져도 공이 들어간 빵과 디저트는 맛있다. 수저로 싹싹 긁어먹고 있다.
당시엔 세상 중요해 보이던 일도 시간이 지나고 보면 아무것도 아니었다는 평범한 진리를 다시 깨닫고 있는 애어른의 일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