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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성 Dec 27. 2023

몽블랑을 먹으면서

가끔 아무 말 대잔치 08

얼마전 기억에 남는 몽블랑을 먹었습니다.

제가 요즘 1~2년 사이에 경험한 우리나라 디저트 맛의 트렌드는

진하고 덜 단 맛, 정확하게는 재료의 맛을 진하게 내어 단맛을 희석하는 그런 경향이 짙었습니다.


예를 들어 몽블랑은 단맛이 세다는 인식이 있는 디저트죠.

작년 그리고 올가을과 겨울에 먹은 몽블랑을 떠올려보면,

설탕을 줄인다거나, 밤 본연의 맛을 살린다거나 하는 방식으로

단맛보단 특유의 고소한 밤 맛을 내세운 몽블랑이 많았습니다.

밤 페이스트를 직접 만들기도 하고,

큼지막한 통 밤이 인서트로 들어가기도 합니다.

상큼함을 더해 균형감을 잡아주던 베리류도

밤 맛을 강조하기 위해 생략되는 경우가 보였고요.

가을밤의 수수한 모습이 떠오르는 고소한 몽블랑입니다.


신논현 베이커리 꼼다비뛰드


저는 잘 만든 빵, 디저트가 먹고 싶은 날에 찾는 가게가 몇몇 있습니다.

신논현의 베이커리 꼼다비뛰드도 그 중 한 곳이죠.

여전히 웨이팅이 쉽진 않아 자주 가지는 못하지만요.

오랜만에 매장에서 먹은 그릴 샌드위치는 여전했고,

많은 디저트를 사와 집에서 천천히 먹어 보았습니다.

놀랍도록 맛있었던 플럼 파리지엥, 바닐라 타르트는

글재주가 부족해 설명할 방법이 없어 뒤로하고,

신기하게도 몽블랑이 가장 기억에 남아 이렇게 적습니다.


딱 일반적인 생김새의 몽블랑 타르트 (가운데)


보기에도 비주얼적으로 화려한 몽블랑은 아닙니다.

요즘엔 국수처럼 밤크림을 뽑아 화려하게 장식을 하기도 하고

독특하게 모양을 내기도 하니까요.

하지만 이 몽블랑은 화려합니다.

화려하다는 의미를 맛의 영역으로 확장해보면

이렇게도 만드는구나 싶을 만큼 화려한 몽블랑입니다.

처음 위에 장식된 마롱글라쎄를 입에 넣을 때 올라오는 달큰한 향과

겉의 옥광밤 크림을 먹을 때 느껴지는 럼향.

호불호를 많이 줄이고 밤의 고소한 맛에 집중한

요즘의 밤 크림과는 정반대입니다.

달고, 고소하고, 향이 풍부하네요.

안쪽의 흰 크림은 가볍고 산뜻하고 부드럽습니다.

개성이 강한 밤 크림과 조화롭게 어우러집니다.

이어지는 크림 사이사이 초콜릿의 크런치한 식감이 가장 독특했습니다.

잘게 쪼갠 머랭에 초콜릿을 코팅해 넣었다고 하네요.

보통 머랭은 겉에 올려 디자인적으로 활용하는 경우가 많은데 말이죠.

그리고 바닥에는 가나슈와 비슷한 나멜라카 초콜릿 크림과

밤 덩어리들이 들어가 있습니다.

밤을 확 드러내지 않죠.

신기합니다, 달고 쌉싸름한 다크 초콜릿의 맛이 강한 몽블랑은.

이 또한 요즘의 트렌드와는 전혀 다르게 다가왔는데,

무겁게도, 부담스럽게도 느껴지지 않고 참 맛있더군요.

재미나게도 이러한 요소가 외려 더 참신하고, 고급스럽게 느껴졌다고 해야할까요?

마지판 없이 견과류와 과일만으로 맛을 낸 슈톨렌

어쩌면 트렌드를 놓치지 않는 것도 중요하지만,

자신의 스타일 안에서 해오던 일을 꾸준히 발전해 나가다 보면,

그것이 오히려 새로운 방향성을 만들어내는 게 아닐까 싶습니다.

비단 디저트에만 국한된 건 아니겠지만요.

늘 꼼다의 빵은 이런 식이네요.

마지판이 들어가지 않은 꼼다의 슈톨렌은 

외려 올해 가장 강렬한 맛을 선사해 주었습니다.

요즘 제가 하고 있는 고민의 해결 아닌 해결을

이곳의 디저트에서 만나게 되었네요.

방향을 잡는 방법은 꼭 외부에서만 찾아야 하는 게 아닐지도 모르겠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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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강남구 강남대로110길 62 지하1층 꼼다비뛰드 

@comme__d_habitude 

11:00 ~ 소진시까지 / 목, 금, 토요일 영업




확실히 시대의 흐름은 점점 더 자극적으로 변해가고 있다는 걸 많이 체감하는 요즘입니다.

디저트도 그렇고, 공간의 인테리어도 자극적인 게 부쩍 늘어났죠.

몇 년 전에도 안 그랬겠느냐마는 최근은 정말이지 자극의 경쟁에 심한 피로감이 들만큼 과해졌습니다.

특히 유행하기 시작한 숏폼 영상이 그 경쟁에 불을 더욱 지폈고요.

저처럼 신상 카페를 소개하고 찾아다니는 사람조차도 이게 맞나 싶을 정도니까요.


그러면서 저는 지난 글에서처럼 일회성 소개 포스팅을,

소위 컨텐츠라고 부르는 그런 것들을 양산하는데 물려버렸고요.


새로운 공간을 가장 빠르게 자신들의 포스팅으로 올려야만하는 

SNS 속 그 어처구니 없는 경쟁에서 한 걸음 물러서기로 하니 조금 시야가 넓어진 느낌도 듭니다.


오랜만에 좋아하는 베이커리의 빵과 디저트를 먹었지요.

신기하게도 몽블랑을 한두 입 먹자마자 이런 내용의 글을 적어야겠다는 생각이 확 들었습니다.

그렇게나 안 써지던 글이 술술 써지더군요.


얼마전 아는 지인 분에게 고민을 상담하던 중 '너는 너만 할 수 있는 걸 해봐' 라는 말을 들었습니다.

제가 많은 베이커리와 카페를 다녔던 경험은 절대 헛되지 않을 거라며

꼭 그렇게 새로운 곳을 경쟁하듯 찾아다닐 필요는 없다. 

클래식이 꾸준한 데에 이유가 있듯 네가 하는 작업도 알아주는 사람이 분명 많을 것이다.

라는 내용이 골자였는데, 무언가 확 와 닿았습니다.


아직 아는 건 많이 없지만 그래서 조금은 깊은 내용을 다루어 보려고 합니다.


저는 몽블랑을 참 좋아합니다만 사실 최근의 밤 맛만 가득한 몽블랑은 그렇게 선호하진 않습니다.

조금 밋밋하다고 해야 할까요? 

확실히 비주얼적으로 자극적인 디저트가 늘면서 큼지막한 통 밤이 속에 들어가고

국수 뽑는 기계로 크림을 짜는 그런 몽블랑이 늘었죠.

머랭을 백조 모양으로 만들어 장식한 몽블랑도 보았습니다.

뭔가 영상 찍기 좋은 구성인데 맛은 비주얼만큼 화려하진 않았습니다.


피스타치오가 한창 유행할 때도 그렇고

확실히 강렬한 원재료 맛을 가진 디저트를 20대 초중반의 분들은 선호하시더라고요.

뭐랄까 예전에 속 재료가 터질 만큼 들어가던 깡빠뉴가 유행하던 시절을 보는 것 같았어요.

디저트를 건강하게 먹고 싶어하는 사람들의 심리도 조금 반영되었는지 디저트의 당도도 무척 낮아졌네요.


저는 저런 디저트를 접하면 사실 조금 균형이 깨진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드는데

한편으로는 이런 생각을 하는 것 자체가 내가 꼰대 아닌 꼰대가 된 건가 싶기도 합니다.

결국 소비자가 선택하는 게 어느 정도 정답이긴 할 테니까요.


항상 여담을 적을 때 길어지네요. 끝내는 타이밍을 잘 못 잡아서 그런지.


크리스마스가 지나고 올해도 끝이 보입니다.

내년엔 더 많은 글을 쓰고, 많은 새로운 일을 할 수 있었으면 합니다.

여기에다가 라도 작게 다짐을 하며 마무리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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