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덕호 <세탁기의 배: 왜 가전제품은 여성을 가사노동에
변한 세상 속 더 변해가는 우리
김덕호 <세탁기의 배: 왜 가전제품은 여성을 가사노동에서 해방시키지 못했는가>를 읽고
할머니가 된 지 딱 1년이 되었다. 손녀를 맞이하고 상봉기를 써서 읽어주었다. 아이는 이를 알아들었다는 듯 방긋방긋 웃었다. 맞벌이인 아들 부부를 위해 일찍 할머니가 된 나는 저절로 육아를 다시 시작한 느낌이다.
요즘 육아를 위해 등장한 전자제품들의 종류는 엄청 많다. 분유를 타기 위한 45도의 물이 자동으로 끓었다 식혀 저장되는 포터도 있다. 재료를 갈고 익혀서 이유식을 만들어 주는 제품까지 나왔다. 뭔가 예전의 육아에 비해 쉬운 것처럼 보이지만 사정은 전혀 그렇지 않다.
분유통을 한꺼번에 남비에 소독하던 시절과는 달리 소독기에 온갖 제품을 다 넣고 관리한다. 과학적으로 돌아가는 제품들을 사용하는 사람의 뇌도 과학적이여야 한다. 좀 느슨하게 생각하고 육아 노동을 했다면 요즘엔 공부하듯 시간과 방법을 기억해가며 한다. 안만큼 더 생각이 많고 염려도 깊어진다.
아들 부부가 멕시코로 친구 결혼식 참석을 위해 1주일 동안 손녀를 맡긴 적이 있다. 아들은 ‘할아버지 할머니를 위한 세온이 육아 지침서’라는 논문 같은 글을 인쇄해 놓았다. 몇 시에 어떻게 이유식과 분유를 먹이는 것부터 목욕시키는 방법, 심지어 비상상황에 대처하는 연락처까지 적혀있다. 육아하다 심심하면 갈 수 있는 카페 위치에 전화번호까지 들어 있을 정도였다.
아기 전용 세탁기, 전용 세제, 전용 티슈등 위생이 철저하다. 알면 알수록 더 복잡해지는 거 같다. 다른 표현을 빌리자면 모르는 게 약일 때도 있다. 기침 약간에 미열이 나고 콧물이 나는 아이를 병원에 데리고 가니 귀에 물이 조금 차 있다고 했다. 항생제를 먹이면서 계속 병원에 와 체크를 하란다. 두 주 이상 병원에 3일 간격으로 가서 체크를 하며 들여다보니 조금씩 물은 사라지고 있었다.
예전에는 그냥 한번 가고 기다리면 저절로 없어졌다면 지금은 증세가 없는데도 병원에 가서 혹시 모를 상황을 위한 점검을 한다. 병원에 감기 환자로 득실대는데도 말이다. 불안감이 나은 참사다!
기계나 로봇이 다 해 주는 시대임은 맞다. 더 편해져 할 일이 없을 줄 알았는데 기계를 다루는 인간도 기계가 되어간다. 몸을 편하게 했더니 뇌가 더 힘든 꼴이란 말인가!
아들의 어린 시절 모습을 똑 닮은 손녀를 봐 줄 때면 육아를 처음 시작한 그 시절로 소환되어있었다. 아기 띠보다 포대기가 편해 업고 산책을 갔다. 허리가 아파도 예쁜 아기의 미소에 통증은 다 사라진다. 몸이 아닌 마음으로 뇌가 아닌 가슴으로 육아하는 연습을 해보라고 얘기해주련다. 쉽진 않으리라.
비운 상태를 채우는 일보다 채운 걸 비워나가는 게 얼마나 힘든 일이던가? 편하게 나온 가전제품들의 혜택을 적절히 이용하되 노예가 되어가진 말아야 한다고 코치 아닌 조언을 해야겠다. 누구보다도 더 잘들 알고 실천해 가겠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