깨를 좋아한다. 그 고소한 존재감 때문인가 싶다. 작기는 또 얼마나 작은가? 그 어린 꼬맹이들이 몸을 다 바쳐 온갖 주리를 틀리고 압사당해 껍질만 남긴 채 오일로 재탄생된다.
비슷해 보여도 꽤 다른 깨들이 남긴 참기름과 들기름을 한번 보자. 그 고소함의 정체는 질적으로 다르다. 아침 공복에 한 스푼 씩 먹었을 때 피부부터 시작해 안 좋은 게 없을 정도로 몸에 좋은 들기름을 특히 좋아한다.
그저 작은 깨가 거기서 거기라고 생각하면 오산이다. 모양 하나하나를 살펴보면 색깔부터 다르다. 타원형의 참깨가 부드러운 베이지 색으로 여성스럽다면, 진 밤색 동그란 모양의 들깨는 어디로 튈지 모르는 선머슴 같지만 귀엽다.
맛은 또 어떤가? 갈색이 될 때까지 볶아서 빻아 시금치나물에 넣으면 나물 맛을 살리고도 남는 깨소금의 매력은 먹어본 사람만이 안다. 꼬투리가 익으면 저절로 톡 터져 열리는 모습에서 착안된 걸로 추정되는 아라비안 나이트의 ‘알리바바와 40인의 도둑’에도 등장하는 이 참깨, 전 세계적으로 유명하다.
참깨의 라이벌 들깨는 온갖 요리에 다 들어가는데 칼국수나 수제비의 경우 첨가 유무에 따라 가격이 올라가기도 한다. 내 요리 솜씨의 비법도 들깨 가루에 있다. 평범한 죽을 대충 끓여놓고 마지막에 이 가루만 넣으면 완전히 근사한 영양 맛죽이 된다.
작지만 꽤 다른 이 깨들을 사유하며 나는 오늘도 부끄럽다.
한낱 깨일 뿐이지만 그것의 다름을 쉽게 받아들이듯 내 맘 같지 않은 사람도 그 모습 그대로를 편하게 인정해 주면 얼마나 좋을까?
참깨에게 너는 왜 들깨 같은 맛을 내지 못하니?라고 나무란다면 깨는 어이없고 황당 그 자체 일 것이다. 참깨는 참깨이고 들깨는 들깨로 맛있듯 나는 나이고 너는 너일 때 아름답다는 걸 왜 알면서 모를까?
마음도 익어지면 토가 저절로 터져 닫힌 마음의 문도 열어줄 수 있을까? 오늘도 주문을 외워본다.
“열려라 참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