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집이와 쾌활이
인간의 뇌 구조를 살펴보자면, 대뇌, 중뇌, 소뇌. 간뇌, 뇌하수체, 그리고 연수로 이루어져있다. 기억을 추리하고 판단하며 감정 등의 정신 활동을 담당하는 대뇌에 관한 이야기를 하고 싶다.
실제로 호흡 운동, 심장 박동, 소화 운동 조절 심지어 기침, 재채기, 하품 등의 반사 중추 현상도 모두 연수라는 뇌 구조 안에서 이루어진다. 하지만 솔직히 이 현상이 뇌와 관계있는 기능이라고 체감하지 못하고 살았다면 너무 무심한 건가?.
기쁨, 슬픔 등을 느끼는 감정도 뇌 활동이라기보다는 가슴에서 느껴지는 거 아냐? 라는 생각이 먼저 든다. 오직 이성적인 판단을 하고 기억해내는 일만이 뇌, 즉 머리가 하는 일이라 여겨왔다는 사실이 한편 놀랍기도 하다.
문학을 전공한 F 성향의 나에게는 어쩌면 당연한 일인지 모르겠다. 어쨌든 대뇌에서 이루어지는 감정과 판단에 관한 동화 같은 이야기를 한번 해 볼까?
나의 대뇌 공간에는 두 녀석이 살고 있다. 과거에 이루어진 일을 붙잡고 기억하려 애쓰며 밤새도록 자기를 볶아대는 녀석이 그중 하나 고집이 이다. 이 녀석은 서운한 말을 들으면 열심히 삐진 상태를 유지하려 용을 쓴다. 입꼬리가 땅으로 줄줄 내려오는 롱 페이스가 되든 말든 고집을 피운다.
가장 가깝다고 느끼는 가족에게 더 찰싹 붙어 있다. 밖에 나가면 순한데 왜 집 안에서 더 사나워지는 거지? 자기 마음대로 기대를 만 땅으로 해놓고 실망 구덩이에 퐁당 빠져 허우적거린다. 낑낑대고 겨우 빠져나와 거울에 비친 너덜너덜 찢긴 자기 모습에 괜히 짜증까지 부린다.
또 한 녀석이 소리쳐 말한다. “정신 차려. 먹고 살 만한가 보구나. 그렇게 할 일이 없어? 잊어버려. 사소한 일을 왜 붙들고 난리야. 미래가 더 중요하잖아. 누구나 완벽하진 않아.” 이 녀석 제법 기특하다. 쾌활이라고 우울하고 힘들 때가 없겠는가? 하지만 이 녀석은 좀 다르다. 행복했던 순간에 찍은 사진을 보고 자기를 반성한다. 자기가 뭘 잘 못 했는지 찾아보려고 애쓴다. 내가 보기에 별 잘못이 없어 보이는데도 말이다.
성격 차이가 너무 큰 두 녀석이 서로 다투고 있을 때 나는 어지럽다. ‘또 싸우네, 쟤네들! 이번엔 얼마나 오랫동안 냉전을 치를지 모르겠군!’ 그저 가만히 지켜볼 뿐 뾰족한 수가 없다. 방구석에 누워 잠이나 자라는 고집이와 나가서 영화라도 보라는 쾌활이. 누구의 말을 들어야 할까?
고집이에겐 매번 시간이 필요한가 보다. 쾌활이에게 나는 말한다. “고집이는 조금 있으면 너에게로 다가갈 거야. 시간을 좀 주자. 그동안 너는 좋아하는 책을 읽거나 쇼핑도 해보고 있어. 고집이에게 신경 쓰지 말아봐”
신기하기도 하고 허무하기도 하지만 시간이 흐르니 두 녀석이 사이좋게 화해를 한다. 투스텝 밟으며 맑은 하늘이 눈부신 꽃동산으로 손 꼭 잡고 올라간다. 시원한 바람도 함께 맞고 햇살도 같이 안아준다.
돌아온 고집이에게 내가 물어본다. “계속 알면서 고집부리기 피곤하지 않아? 너를 내가 아끼고 사랑해선데 말이야 너 같은 곳에서 자꾸 넘어지는 거 알아?” 씁쓸한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인다.
“나도 너무 잘 알아. 일종의 병 아닐까?”
맞다. 모두 병이 있다. 아는 병, 지병! 어쩌면 고칠 수 없는 불치병. 그냥 데리고 살라고 해야겠다. 계속 왜 그러냐고 고치라고 윽박지르면 더 스트레스받아 아예 집을 나가버리면 큰일이니 말이다.
고집이도 달래고 쾌활이도 칭찬해줘 가면서 이 아이들이 내내 잘 지내고 나이 들어가는 모습을 지켜봐야겠다. 이 세상 떠나는 날 묘비에 새기리라.
‘나, 하이디 고집이랑 쾌활이랑 잘 지내다 가노라!’ 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