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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제이 May 31. 2024

엄마의 밥상


집 앞 가로등 아래에서 고무줄놀이를 하고 있으면 '밥 먹어라!' 부르는 엄마의 목소리가 들렸다.


'힝, 이번에 내 차례였는데!'


삐죽거리는 입을 하고 들어가면 두부가 듬뿍 들어간 된장찌개와 고소한 고등어구이가 기다리고 있었다.


할머니 때문에 우리 집 밥상엔 늘 잡곡밥이 있었다. 엄마는 잡곡이 몰려있는 쪽을 살살 퍼서 할머니한테 드리고 콩이라면 질색인 내 밥그릇에는 최대한 하얀 밥을 소복하게 담아주셨다.


어쩌다가 콩이 한 개라도 들어있으면 숟가락으로 몰래 떠서 엄마 그릇에 옮겨놓고는 모르는 척 시치미를 떼며 밥을 먹었다.


당뇨가 있던 할머니와 반찬 투정하는 자식들 입맛까지 맞춰야 했던 엄마의 부엌은 밤이고 낮이고 쉴 틈이 없었다. 하루 세끼 밥상을 차리면서 도시락까지 싸느라 손에 물 마를 날 없는 고된 시간이었다.


지금은 엄마 아빠 둘이서 단출해진 밥상이지만 우리 삼 남매가 몰려가면 다시금 그 시절로 돌아가 떠들썩한 부엌이 된다.


엄마는 여전히 콩이 잔뜩 들어간 잡곡밥을 지어드신다. 하지만 더 이상 내 밥의 콩을 골라내 주지는 않으신다. 훌쩍 크다 못해 건강을 챙겨야 하는 나이가 되어버린 딸을 위한 엄마의 마음을 이제는 안다.


세상에서 제일 맛있는 엄마의 밥상, 이제는 엄마 입맛과 꼭 닮아버린 자식들은 엄마가 해준 잡곡밥을 오래오래 맛있게 먹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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