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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바트로스 Dec 27. 2024

내적영토에 핀, 야생화!

11월 말, 첫눈이 내린다. 새벽미사 가는 길 위로 수북하게 쌓인 눈은 –밤새 쏟아진 눈이 – 금세 운동화 속 안까지 파고들어 발이 시렸다. 우산 위로 금방 쌓인 눈송이를 가로수에 대고 털어내며 걸어가야 할 정도였다. 

예전에 질러대던 그 환호대신, 묵묵히 여명을 밝히는 청소부를 향하여 고개 숙여 온 마음으로 감사했다. 다소 놀란 듯하더니, 곧바로 수줍게 웃는 수수한 모습이 심층까지 고갈되었던 들숨처럼 반가웠다. 그가 건강하기를 비는 화살기도를 날숨처럼 내쉬며, 새벽눈길을 뒤뚱대며 걷는데도 기분은 좋았다. 

언제부턴가 하얀 눈을 보며, 더 이상 환호하지 않았다.  

눈부신 은빛 미소로 다가온 앞모습과는 달리, 큰 목소리로 질척대는 사람의 뒤태처럼 보인 그날부터. 

눈부신 미소로 내려앉은 그 자리마다 질펀한 얼룩을 남기는 눈보다는, 비가 더 좋아졌다. 고단한 세상살이에 내쉬는 한숨에 맞닿은 하늘의 측은지심이 흘리는 눈물처럼 느껴진 그날부터.

이 땅에서 덧셈에 서툰 영혼이 흘리는 눈물 같은 빗방울을 보며, 끝없이 치솟던 욕심이 수그러진 그날부터.  

무채색 공동체처럼 세상을 적시는 빗방울이 더 좋아졌다. 그 합창소리도.

오염된 세상을 씻기고, 굼뜬 씨앗도 일깨우는 비가 좋다.  

    

만조 때의 밀물처럼 다양한 얼굴들이 밀고 올라왔다.  

수수한 들꽃처럼, 말없이 잡아준 착한 사마리아인의 얼굴도 함께. 

이웃들이 내민 따뜻한 손은 겨울 냉기도 오히려 상쾌하게 느껴질 정도로. 

가시처럼 영혼 바닥을 긁어댄 서운한 얼굴이 떠밀려오기도. 

그 변색된 얼굴을 지우고 싶은 맘으로, 안양천 강변을 걷고 또 걸었다.

키 큰 활엽수가 누런 잎사귀를 떨쳐내며, 나직하게 속삭이는 듯했다. 

“나처럼 손을 펴봐. 금방 떨어져, 그 잎사귀는.” 

자연의 순리에 통달한 떡갈나무자매의 지혜로운 충고대로, 나도 손을 폈다. 그런데도 퇴색한 얼굴이 떨어져 나가기는커녕, 서걱대기까지.  

아직도, 반쯤 붙잡고 있는 걸까?     


오랜만에 프랑스에 온 국제전화, 아이처럼 들뜬 욜랑의 목소리.

“남편과 함께 외국인 식자재가게에 다녀왔어. 겨울 내내 먹을 만큼, 잔뜩 한국라면 사 왔지. 통조림 김치도!”

이탈리아 이민 2세인 그녀가 가장 좋아한 메뉴는 파스타! 

내가 끓인 라면을 처음 먹은 날부터, 그녀의 최애메뉴는 뒤바뀌었다.  

한국 사람보다 더 라면을 좋아한 이변으로, 모처럼 편안해진 내 마음. 

난민구호물자처럼 종류별로 라면을 보내주는 심덕 좋은 조카 성운이 덕분으로, 저녁식사메뉴로 매일 라면을 끓일 수 있었던 것이다.

라면 레시피는 끓는 물에 라면수프와 부재료를(간 소고기를) 넣고 끓이다가, 면과 채 썬 호박과 대파를 넣고 다시 끓이는 방식이다. 

부재료만 – 사실은 맛을 좌우지하는 주재료인 돼지고기, 오징어, 홍합으로 – 바꿔가며 끓이는 라면, 그 다양한 맛에 늘 만족했던 그녀.      


일 년에 두세 번 도착하는 거대한 부피 구호난민물품 중에서 가장 반가운 품목은 단연코 고춧가루였다. 

중국 유학생에게서 구입한 배추에 신토불이 고춧가루를 넣고 만든 김치, 채 익기도 전에 꺼내먹을 정도로 배추김치를 좋아했던 욜랑. 

고급 초콜릿을 먹으면 기분이 좋아지는 나처럼, 수시로 옥상의 항아리 속에 든 김치를 꺼내먹은 뒤엔 손가락까지 빨며 아이처럼 웃던 그녀. 

바게트빵 속에 버터와 햄을 넣고, 토마토와 양상추 대신 배추김치로 마무리하는 유일무이한 샌드위치를 만들곤 했다. 그 특제 바게트샌드위치 맛이 몹시 궁금한 카페 손님들의 집요한 눈길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긴 다리를 꼬고 계산대에 앉아서, 미운 7살처럼 우쭐거리며 맛있게 먹던 그녀. 

도서관에서 점심 먹으러 온 나를, 갑자기 막아섰던 날이다. 

“조금씩, 꺼내먹었는데도. 조금밖에 안 남았어!” 

미리 이실직고하는 아이 같은 모습에 겹쳐 떠오른 나의 유년시절에. 

곶감 맛보기로 시작한 1개, 결국 몽땅 먹어치우곤 고개 떨군 꼬맹이. 

홍시가 너무 먹고 싶은 마음에 시작한 맛보기 1개는 항아리 속의 떫은 대봉마다 이빨자국을 남긴 뒤, 이실직고했던 아이. 

폭소하는 내 모습에 비로소 안심하며 따라 웃던 그녀,

“배추김치, 도저히 멈출 수 없는 맛이야!”  

한국 유학생이 갖다 준 김치가 심심하다고, 맛슐랭 세프처럼 평가하던 그녀. 

그녀와 나 그리고 우리 어매는, 입맛 공동체였다.  

하늘에서 묶어준 인연일까?      


프랑스에서 표류하는 7년 동안, 라면을 먹은 기억이 별로 없다. 

유난히 잘 붓는 얼굴 때문이었을까? 

아니면 타인에게 빌붙어 사는 것 같은 그 불편함이, 살찐 내 모습을 용납할 수 없게 했을까? 

어쩌면 내적 영토에 웅크리던 가시덤불이- 오지랖, 오만, 편견- 서로 부대끼며, 생긴 상처 때문이었을지도.

수시로 뒤뚱거리는 이방인을 일으켜주던 손길이, 마냥 고맙지는 않았다. 

늘어나는 빚에 짓눌리는 압박감으로, 작은 속옷처럼 욱죄이는 느낌으로. 

어디에서도 흔히 만날 수 없는 욜랑의 환대에 만족하기보다, 고슴도치처럼 으르렁거렸던 날들도. 고맙다는 후렴구를 읊어대는 그 처지에서, 수시로 뿔이 솟았다. 

그 뿔난 모습조차 사랑으로 감싸준, 심덕 좋은 그녀!(Elle a de bon coeur)!

때론 문화 충돌로, 가끔은 자격지심으로 삐진 채로 얼어붙은 그런 날들.

취침 전에 내 방으로 찾아와선, 먼저 사과하며 안아주었던 그녀다.

날 선 뿔을 내리고는 미안하다는 말에, 득도한 현자처럼 던진 그녀의 명언은. 

“나에게 화내지 않았어. 너는 울부짖었지!(C’est ton hurlement!) 

우리 어매처럼 느낀 그 순간에 연이은 말들, 여전히 선명하다

”누구에게도 져주거나 먼저 사과한 적은 없어. 심지어 내 남편에게조차도. 일생동안에 먼저 용서를 청하는 사람은, 오직 너뿐이란다. 내 딸아! “      


매주 한번, 마무트(mammouth; 외곽 대형 마트)에 갔던 욜랑. 

내 몫으로 온갖 생선 필레와 종류별로 아이스크림을 빠짐없이 사 오던 그녀.

처음으로 샴페인 병에 든 아이스크림을 먹던 날, “정말, 맛있네요!”

그날 이후로 사계절 내내 샴페인맛 아이스크림이 떨어진 적이 없었다. 그 신상품 아이스크림은 카페안쪽 대형냉동고에 단골손님처럼 자리 잡았다. 

내 몫으로 지정된 냉동고 두 칸을 가득 채우곤, 양 어깨를 으쓱 추켜올리며 흡족하게 미소 짓던 그녀의 얼굴 너머에서, 우리 어매 모습이 어른거렸다.

봄이면 완두콩을 병풍처럼 보리밭이랑에 심고, 넓은 마당을 둘러싼 돌담 밑에 희귀한 울 콩을 심었다, 막둥이 몫으로.   


불청객 편두통이 찾아왔다.

암호 같은 시 구절에 묶인 채로, 올빼미처럼 밤을 지새운 그 틈새 길로.

한국에서 가끔씩 앓던 그 편두통은 횟수가 잦아졌다. 빈도뿐 만 아니라 한쪽 눈이 반쯤 감긴 채, 바닷가 돌쟁이처럼 하얀 거품 구토도. 그 극심한 고통으로 자살한 버지니아 울프가 이해됐다, 동병상련 오랜 벗처럼. 

그 고약한 불청객이 올 때마다, 욜랑은 곧바로 단골 정육점에 송아지 뇌를 특별히 주문했다. 세상 구경 못한 어린 뇌가 특효약인양, 수시로 먹어야 했다. 아주 작은 용기에 담긴 채로 익혔는데도, 선명한 형체의 뇌를 숟갈로 떠먹는 일은 참으로 끔찍했다. 우리 어매처럼 행동하는 그녀의 지극정성을 거부할 어떤 권한도 나에게는 없었다. 그 묘약을 먹기 위한 묘책으로, 참기름 몇 방울을 떨어뜨린 후에는, 그나마 삼키기가 수월해졌다.

매년 성탄절과 부활절, 욜랑이 받은 선물 스위스 초콜릿은 전부 내 차지. 

부활절 보물 찾기에서 발견한 초콜릿을 몽땅 먹은 프랑스 꼬맹이처럼, 나도 연례행사 배앓이를 했다. 

축제 으뜸메뉴인 푸아그라, 따로 남겨두었다가 나에게 주던 욜랑.

맛있게 먹는 모습을 보고 싶다는 이유로.   

외곽에 살던 아저씨가 검붉은 체리를 자동차에 싣고 오곤 했다. 맥주 몇 잔과 교환 목적으로 커다란 광주리 가득 가져온 싱싱한 체리, 식사대신 나 홀로 먹었다. 먹보마녀처럼, 입안부터 입술까지 자주빛깔로 물들었던 늦은 봄날도.  

*   

12월 4, 습관처럼 프랑스 방송을 틀었다. 

TV화면을 가득 채운, 낯익은 큰 바위 얼굴! 채널 번호를 잘못 눌렀나 의심하며, 다시 눌렀는데도 여전히 그 모습이다. TV5 프랑스앵커가 쏟아내는 홍수, 얼른 납득되지 않았다. 채널 돌린, 한국 TV에서도 쏟아졌다. 기가 막혔다. 불같은 울화로 숨 막히는 증세까지. 

누군가는 뾰족한 펜으로 ‘계엄령 나라’였다고 긁어댔고, 또 누군가는 TV 화면에서 지금도 ‘계엄령 나라’라고, 세계만국에 각인시킨 참담한 12월. 

사방에서 왕왕대는 목소리들의 거대한 압력에 떠밀려서, 시커먼 맨홀 속으로 순식간에 쳐 박혔다. 그렇게 꼬꾸라진 채로, 이미 3주가 흘러갔다. 출구가 보이지 않는 어두운 맨홀 사방에서 역한 메스꺼움이 엄습했다. 큰 목청들이 몰염치하게 서로 아우성치며, - 새벽부터 청소부아저씨가 말없이 깨끗이 씻긴 - 대한민국 얼굴 위로 미친 듯이 먹칠을 해대고 있다. 이 땅의 민초들이 눈물로 씻기고 땀으로 일군 그 나라를, 미친 듯이 혀를 날름대며 맨홀 속으로 통째로 쑤셔 넣고 있다. 그 역한 모습에 더 거세어진 구역질, 어떻게 진정시키나?

갑자기, 라면 생각이 났다.

그 시원한 라면 국물이라도 마시면, 이 역한 메스꺼움이 진정되려나? 

우선 껍질 채 홍합을 삶은 그 육수에 홍합 알맹이와 면, 채 썬 애호박, 대파를 넣고 끓였다. 홍합라면과 배추김치를 먹는 내내, 맛있게 라면을 먹던 욜랑의 얼굴과 전화 목소리가 어른거렸다. 연이어 떠오른 이 땅의 젊은이들에게도 자꾸만 미안해진다. 

날카로운 필력이나 큰 목소리로 외치는 그 정의나, 소란스러운 그 사랑도,  참으로 낯선 12월. 

나에게 사랑은 이방인의 손을 잡아주었던 얼굴이고, 그 사랑으로 생환한 생명이 정의의 파편일 뿐이다.   

    

온 마음과 정신을 전율시켰던 프랑스 시의 구절이나 음률들, 기억의 수평선  너머로 사라진 지 이미 오래다. 연기처럼, 아무런 여운도 남기지 않고.

그 시간의 강물에도 떠내려가지 않은, 그 비밀정원에 핀 수수한 들꽃이 - 우리 어매를 자처했던 프랑스 강변에 핀 붉은 꼬꼬리꽃 Yolande, 코스모스 Annie, 찔레꽃 Isabelle, 나리꽃 판사Meriame, 들국화 철학자Françoise, 도라지꽃 Paul수녀, 아카시아꽃 치과의사Patrick, 해바라기꽃 지도교수가 - 떠오를 때마다, 그 풋풋한 향내에 행복해진다.

제각기 다양한 향내로 뒤뚱거리는 이방인을 생환시킨 그들, 뿔난 고슴도치가 수시로 내뱉는 불평도- 오지랖, 오만, 편견까지도 – 마음 아파하며, 말없이 손잡아준 그들, 프랑스 품격을 드높인 꽃들이다, 나의 비밀정원에서.   

그 따뜻한 날숨이, 생명의 들숨처럼 나에게 온 그날부터. 

내적영토에 핀, 야생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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