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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 나쁜 면접은 없다

압박 면접이 남긴 쓴맛과 교훈

by 정 부지런이

수화기 너머로 들려오는 후보자의 목소리에는 짜증과 허탈함, 그리고 모멸감이 뒤섞여 있었다. 보통 면접이 끝난 직후 느껴지는 긴장감이 풀린 안도감이나, 잘 봤다는 흥분과는 거리가 먼 무거운 침묵. 그 침묵을 깨고 나온 첫마디는 이랬다.


"이 회사, 좀 이상한 것 같습니다."


사정은 이랬다. 면접관으로 들어온 임원급 고위 간부의 태도가 문제였다. 그는 면접 내내 후보자의 이력을 의심하고, 성과를 폄하하며 심기를 건드리는 질문을 집요하게 던졌다고 했다.


"이 프로젝트, 혼자 한 거 아니지 않나?", "운이 좋아서 된 것 같은데 본인 실력이라고 생각하나?"


같은 식의 날 선 질문들이 쏟아졌다.


처음에는 침착하게 방어하던 후보자도 결국 감정이 상하고 말았다. 방어기제가 발동했고, 나중에는 질문에 대해 조금은 비아냥거리는 말투로 맞받아쳤다고 한다.

면접이 끝날 무렵, 그 임원은 질문의 의도와 내용에 대해서 상세히 설명했다고 한다. 그리고 몇 가지 체크 포인트를 확인하기 위해 의도적으로 불편한 질문을 던졌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미 엎질러진 물이었다. 후보자는 "내가 그동안 쌓아온 커리어가 부정당하는 기분이었고, 아무것도 안 한 사람 취급받는 것 같아 불쾌했다"고 토로했다.

결과는 예상대로였다. 1주일 뒤, 불합격 통보가 날아왔다. 조심스럽게 결과를 전하자 후보자는 날 선 문자를 보내왔다.


"차라리 서류에서 탈락했으면 좋았을 뻔했네요. 기분만 상하고, 아까운 연차만 날렸습니다."


누군들 자신의 소중한 휴가를 써가며 모욕적인 자리에 앉아 있고 싶겠는가. 하지만 나는 후보자에게 마지막 위로와 함께 뼈 있는 조언을 건네며 대화를 마무리했다.

"지금은 화가 나겠지만, 이 어렵고 힘들었던 시간도 훗날 반드시 도움이 될 것이다. 세상에 나쁜 면접은 없다."



'나쁜 면접'이 우리에게 주는 선물


후보자는 "아까운 연차만 썼다"고 했지만, 나는 동의하지 않는다. 이번 면접은 그에게 돈 주고도 못 살 경험을 전달했다.


강력한 예방 주사를 맞았다

세상에는 다양한 회사가 있고, 다양한 면접관이 있다. 앞으로의 커리어 여정에서 이보다 더한 '빌런'을 만날 수도 있다. 이번에 겪은 불쾌한 경험은 강력한 예방 주사가 된다. 다음에 비슷한 상황, 혹은 더한 압박 면접을 마주했을 때, "아, 저 사람이 지금 나를 테스트하는구나", "지난번처럼 감정적으로 대응하면 안 되지"라고 생각할 수 있는 여유가 생긴다. 멘탈이 한 겹 더 단단해진 것이다.


나의 바닥을 확인했다


편안한 분위기에서의 면접은 누구나 잘 볼 수 있다. 하지만 진짜 실력은 최악의 상황에서 드러난다. 이번 면접을 통해 후보자는 자신이 어떤 포인트에서 감정이 흔들리는지, 스트레스 상황에서 표정 관리가 안 되는지 스스로 확인했을 것이다. 이것은 뼈아프지만 매우 귀중한 데이터다. 이 데이터를 바탕으로 자신의 약점을 보완한다면, 다음 면접에서는 훨씬 더 세련되고 노련하게 대처할 수 있다.


회사를 걸러내는 눈을 길렀다


면접은 회사가 나를 평가하는 자리이기도 하지만, 내가 회사를 평가하는 자리이기도 하다. 압박 면접을 빙자해 인신공격을 일삼는 임원이 있는 회사라면, 입사했더라도 행복하지 않았을 확률이 높다. 면접은 그 회사의 조직 문화를 보여주는 예고편이다. 이번 경험을 통해 후보자는 '나와 맞지 않는 회사'를 거르는 기준을 하나 더 추가하게 된 셈이다. 합격해서 들어갔다가 상처받고 나오는 것보다, 면접에서 거르게 된 것이 어쩌면 다행일 수 있다.


경험은 쌓여서 실력이 된다


모든 회사가 나와 맞을 수는 없고, 모든 면접이 내가 준비한 대로 흘러가지는 않는다. 때로는 억울하고, 때로는 분해서 잠이 오지 않는 면접도 있다. 하지만 그 모든 과정은 실패가 아니라 '과정'이다.

"서류 탈락했으면 더 좋았을걸"이라는 말은 틀렸다. 서류 탈락은 아무런 교훈도 남기지 않지만, 면접 탈락은 '오답 노트'를 남긴다.


이번에 겪은 그 불쾌함, 당혹감, 그리고 아쉬움까지 모두 당신의 자산이다. 이 경험들이 차곡차곡 쌓여, 언젠가 결정적인 순간에 당신을 가장 빛나는 인재로 만들어 줄 밑거름이 될 것이다.

그러니 너무 기분 나빠하지 마라. 당신은 오늘 꽤 괜찮은 오답 노트를 하나 얻었다. 그리고 분명히 말하지만, 세상에 시간 낭비인 면접은 없다. 모든 면접은, 어떤 식으로든 당신을 성장시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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