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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n Jun 17. 2024

인조인간 우리 엄마

7화. 정복하지 못한 시간, 수면장애의 밤

 ‘100... 200... 600... 1000...’

언젠가부터 밤이 되면 숫자를 세는 습관이 생겼다.

2년 여 가까이, (작년만큼은 아니지만) 지금도 불쑥불쑥 찾아오는 습관이다.

숫자는 600을 한두 번 세는 것으로 끝날 때도 있고, 600을 넘어 1000이 끝없이 반복되기도 한다. 


 지난밤은 그 중간쯤 되는 밤이었다.

1부터 600까지 두 번쯤 세고 잠이 들었다가 다시 일어나 600을 또 두 번쯤 셌나 보다. 내가 이렇게 깨어나 숫자 세기를 반복했다는 건, 엄마도 그렇게 깨고 잠들기를 반복했다는 의미다.     


 사람이 늙어간다는 것은 그런 것일까?

평생을 밤 9시에 잠들고 새벽 5시쯤 깨던 엄마가 어느 날부터 잠이 잘 안 오더란다. 시골 노인네들 대부분 그렇듯 동네 병원에서 수면제 처방을 받아 조금씩 먹기 시작했다고 한다. 1주일에 한 번쯤, 한 알도 아닌 반 알을 먹고 자면 개운하게 일어나곤 했다고 한다.     


 고관절 수술 후에는 그 빈도가 늘었다.

거의 매일 반 알을 먹고 주무셨다. 그러다 어느 날부터인가 한 알로 늘었다. 그게 몇 달이 되면서 다시 한 알 반으로 늘었다. 

고관절 수술 후 자다가 호흡곤란을 겪은 이후로 엄마는 밤에 잠이 오지 않는 것을 두려워했다. 수면제를 먹고도 잠이 들지 않으면 숨이 가쁘고 배는 터질 것 같고 온몸에 힘이 빠져 죽을 것 같다는 것이었다. 옆에서 보는 우리 생각에는 엄마가 수면제와 잠에 대한 강박을 버리고 마음을 편하게 먹으면 될 것 같은데, 본인의 입장은 다른 것 같았다.     


 문제는 수면제를 먹는 기간이 길어지면서 부작용이 생기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그 무렵 우리가 엄마에게 농담처럼 자주 했던 얘기가 있다.

 “OOO(엄마 이름)씨는 언제부터 이렇게 성질이 급했나?”

수면제를 먹고 자리에 누운 지 10여분쯤 지나서 잠이 들지 않으면 엄마는 그때부터 조바심을 내기 시작했다. 

 “약을 먹었는데 어째 잠이 안 올까?”

 “엄마, 마음을 편하게 먹어. 그렇게 조바심치면 오던 잠도 달아나겠는데?”

 엄마를 달래며 우리는 다리와 발 마사지를 해 주기 시작한다.     


 다리와 발 마시지는 엄마 고관절 수술 이전부터 우리가 하던 습관이었다.

엄마가 건강하게 시골에서 혼자 살던 시절, 밤에 팔다리가 저리다는 엄마가 안쓰러워 안마를 해 주기 시작했다. 1~2분쯤 안마를 해 주면 엄마는 바로 잠이 들거나, 시원해하며 그만하라고 했었다. 그렇게 서로 기분 좋게 잠드는 게 건강하던 나날의 습관이었다.     


 수술 후에도 그 습관은 계속 됐고, 잠드는 게 힘들어지고 자다가 일어나 숨이 답답하다고 하는 일이 반복되면서, 처음 2~3분 정도 하던 안마는 어느 날부터인가 10분이 넘게 되었고, 수면장애가 심해지면서는 잠이 들 때까지 1~2시간씩 계속해야 했다.


 그런 날이 계속되다 보니 그 시간을 견디기 위해 숫자를 세는 습관이 생겼다. 600이면 10분, 이걸 세 번만 반복하면 엄마는 잠이 들 것이다. 주문처럼 생각하며 숫자를 세는 것이었다. 

그렇게 밤마다 자다 깨서 2~3시간씩 안마를 하는 일이 일상이 되었다.     


 “우리 엄마 손 탔어.”

이것도 어느 날부터인가 우리끼리 농담처럼 하는 말이 되었다.

다리와 발 안마를 해 주면 잠이 설핏 들었다가 손을 떼면 깨는 일도 반복됐기 때문이다.

엄마는 잠에서 깨면 우리도 깰 세라 혼자 견디려 하지만, 극심한 호흡곤란은 의지로 해결되는 게 아니라 우리도 결국 깨기 마련이었다. 그렇게 같이 잠을 설치고 나면 엄마는 우리를 힘들게 했다고 자책하며 또 스트레스를 받았다. 그건 다시 수면에 영향을 주고 그렇게 악순환이 되는 것 같았다.   


 하지만 수면제 부작용의 심각성은 따로 있었다.

수면제에 취하면 자신의 의지력, 통제력이 사라지는 것 같았다.

수면제를 많이 먹으면 안 된다는 건 엄마도 알고 있어서 가급적 줄이려 늘 노력하고 있었다. 하지만 수면제에 어설프게 취해 잠도 들지 않고, 통제력도 사라지면 엄마와 우리는 밤새 실랑이를 벌이기 일쑤였다. 

 “잠이 안 드는데 약 더 먹어야지.”

 “안 돼, 엄마. 엄마 지금도 약기운 돌아서 말소리가 달라. 누워 있으면 잠들 거야.”

 엄마는 약을 더 먹겠다고 고집을 부리고, 우린 안 된다고 말리고......

아침이 되면 엄마는 그걸 기억하지 못했다.     


 그런 일이 반복되면서 우리에게도 트라우마 같은 게 생겼다.

어느 날 동생이 퇴근하고 와서 그런 말을 했다.

직장에서 옆자리에 앉은 사람이 한숨을 푹 쉬는데, 순간 심장이 덜컥 내려앉았다고...     

엄마의 수면장애 시 나타나는 습관 3단계가 있다.

1단계 깊은 한숨, 

2단계 ‘하아~~’ 정도의 신음, 

3단계 ‘어째 이렇게 잠이 안 들까?’하는 혼잣말.

엄마는 우리가 깰까 봐 참고 참다가 숨이 막힐 때쯤 되면 깊은숨을 내쉬는 버릇이 생긴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엄마의 한숨 소리를 들으면 자다가도 벌떡 일어나는 버릇이 생겼다.

안마를 해 주고 엄마가 잠들었다 싶어 안심하고 누워 있다가 엄마의 깊은 한숨소리가 들리면 불면의 시작을 알리는 것 같아 가슴이 덜컥 내려앉기 시작했던 것이다.      


 그렇게 1년여를 함께 고통받다가, 이대로는 안 되겠다 싶어 엄마를 설득해 정신건강의학과를 찾아갔다. 정신과를 가는 걸 꺼려하는 엄마를 설득한 건 큰언니였다. 지인의 엄마도 수면제 부작용으로 고생하다 약을 바꾸고 좋아졌다고...... 엄마도 밤중의 일이 기억나지 않는 일이 잦아지자 동의했고, 진단 결과는 우울증과 수면장애였다. 이후 항우울제와 신경안정제를 처방받아, 아침에는 항우울제 한 알, 저녁에는 신경안정제 한 알을 먹고 잠들기 시작했다.


 약을 바꾼 이후 우리에게는 평화로운 밤이 찾아왔다. 

엄마는 쉽게 잠이 들었고, 자다가 깨서 볼 일 본 것도 모두 기억했다.

안마를 하지 않고도 엄마 잠드는 모습을 지켜본 후 편하게 잠에 드는 날도 생겼다.   

항우울제의 효과일 수도 있다고 하는데, 심각했던 위장장애도 거의 사라졌다. 


 지금은 가끔 상태를 지켜보며 약처방을 조금씩 바꾸는 정도다. 밤에 안마를 해야 하는 일도 여전하다. 하지만 예전처럼 매일 자다 깨서 2~3시간씩 안마를 반복하는 일은 거의 없고, 보통 600을 한두 번 반복하면 끝나는 상황이다. 1~2시간마다 별일 없어도 잠에서 깨던 나의 습관은 3~4시간 정도는 푹 자는 것으로 바뀌었다. 


 엄마의 수면장애는 궁극적으로 극복되지는 못했다.

지금도 가끔 컨디션이 안 좋을 때나, 알 수 없는 이유로 한 번씩 밤중에 호흡곤란을 호소하기는 하지만 예전처럼 심각하게는 아니고 숨이 답답하다는 정도이다. 이 정도로도 우리는 만족한다. 시골에서 텃밭을 가꾸고 지내면서  마음도 편해져서인지 서울에서보다 더 호전되는 것 같기도 하다. 그래서 요즘 나의 밤은 600을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나는 그것으로도 만족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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