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를 읽고...
난감하다. 문학 이야기를 나누는 모임에 참석하고픈 마음 하나로 집어 든 책인데 한 편, 한 편 읽고 나면 '이게 뭐지?', '헐...' 뾰쪽한 마음을 숨길 길이 없다. 어린 시절 많은 시간을 교회 공동체에서 지냈지만 그 후 신앙과 무관한 삶을 살겠다고 결단한 지도 한참의 시간이 흘렀다. 현재의 나로서는 대 문호 톨스토이가 죽음 앞에서 회심하여 써 내려간 작품들이 전하는 주제에 공감하기보다는 어깃장을 놓고 싶은 게 솔직한 심정이다.
표제 작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에서 하나님의 징계를 받아 땅으로 내려온 천사는 세 가지 사건을 통해 깨달음을 얻고 다시 하늘로 올라간다. 노숙자를 내치려다 마음을 바꾼 제화공의 아내는 하나님의 심판을 간신히 피했고 장화를 주문한 부자는 하루를 버티지 못하고 황망하게 세상을 떠났다. 쌍둥이를 낳은 여인은 출산과 동시에 홀로 쓸쓸히 죽음을 맞았다. 천사를 하늘로 돌려보내기 위해서 애꿎은 사람들이 유명을 달리하거나 그럴 위기에 처했던 셈이다. 이쯤 되면 하나님은 사랑이고 사람은 그 사랑에 의지해 살아간다는 천사의 메시지가 공허할 따름이다.
내 마음이 이미 기울어진 채로 책장을 넘겨서일까... 어려운 이웃을 지나치지 못하고 순례길을 포기하는 노인의 마음 씀씀이도 귀하지만, 끝까지 좌고 우면하지 않고 예루살렘으로 향했던 다른 한 노인의 인내와 의지가 상대적으로 폄하되는 건 동의하기 어렵다. 자신의 전 재산을 불태운 이웃과 다시 하나의 공동체를 꾸려 화목하게 살아간다는 건 어린이 동화책에서도 보기 힘든 뜬금없는 비약이 아닐 수 없다... 하나하나 비뚤게 바라보는 나 자신마저 못마땅해져 책에 대한 감상은 여기까지만.
정작 내 생각을 붙든 건 사람이 사는데 꼭 그 무언가가 필요한지에 대한 의문이다. 돌이켜보면 찰나와 같은 우리네 삶에서 굳이 특정한 목적이나 이유가 있어야 하는 걸까? 톨스토이는 사랑이야 말로 우리를 살아가게 하는 힘이라고 이야기한다. 사랑이 중요한 가치임은 논쟁의 여지가 없지만 다채로워야 할 각자의 일상을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덮어 버리는 것을 경계한다. 사랑이 아니라 정의든, 평등이든 그 어떤 고귀한 가치일지라도 우리 삶이 하나의 명제로 귀속되어 버리는 건 숨 막히는 일이다.
흔히들 인생은 100미터 경주가 아니라 마라톤이라고 얘기하곤 한다. 모든 달리기 시합은 결승점을 전제로 한다. 우리 인생에 목표가 존재해야 하며 이를 달성하기 위해 각자의 삶의 현장에서 끊임없이 분투해야 한다는 말에 다름 아니다. 목표가 있다는 건 삶의 원동력이 되기도 하지만 이로 점철된 인생은 자칫 일상의 매 순간을 끝나지 않는 오디션 경연장으로 바꾸어 놓을 수 있다.
하루하루를 승패에 연연하며 쳇바퀴 돌듯 사는 것을 사양한다. 자의든 타의든 특정한 목적에 짓눌려 무채색으로 일상을 채우는 것 또한 거부한다. 내 삶을 지탱하는 우선순위를 분명히 하되 일상의 군데군데 공란을 남겨 두고 산책하듯 살려한다. 산책의 즐거움은 목적지가 없음에서 비롯된다. 끝없이 이어지는 무더위 중 잠시 쏟아지는 소낙비를 맞으며, 풀 내음에 흠뻑 취해 숲길을 걷고 싶다. 어느 시인이 말한 것처럼 이 세상에 잠시 소풍 나온 아이의 마음으로, 그렇게 남은 날들을 마주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