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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방재원 Oct 03. 2024

 반음 내린다는 건

 <내 안에서 나를 만드는 것들 - 러셀 로버츠>를 읽고...

 "주위 사람의 감정과 조화를 이루려면, 원래 올라가 있던 음에서 반음을 내려야 한다.(184쪽)" by 아담 스미스


 반음 내린다는 건,

 귀 기울여 듣는 것

 내 안에서 쏟아지는 말을 흘려 보내고 그의 생각과 숨결에 마음을 모으는 일

 큰 줄기가 같다면 곁가지가 다르더라도 굳이 각을 세우지 않는 것

 그의 이야기가 끝났더라도 바로 입을 떼기보다는 잠시의 틈을 내는 일


 반음 내린다는 건,

 마음속 긴장의 매듭을 한 올 한 올 푸는 것

 모니터 화면에서 잠시 눈을 떼고 푸르른 하늘로 눈길을 돌리는 일

 키오스크 앞에서 고민하는 사람 뒤에서 한 발짝 물러서는 것

 열대야를 뚫고 찾아온 짧디 짧은 선선함을 만끽하는 일


 반음 내린다는 건,

 아이의 눈높이에 맞춰 보는 것

 늦잠 자는 아들의 널찍한 등짝에 손이 날아가다 엉덩이를 두드려 주는 일

 딸아이의 끝도 없는 짜증에 요동치는 마음을 붙잡고 안아주는 것

 그럼에도 마음이 길을 잃으면 이어폰을 끼고 씻은 접시를 한번 더 닦는 일


 반음 내린다는 건,

 스스로에게 내리는 가혹한 잣대를 거두어들이는 것

 자기 연민과 반추의 굴레에서 벗어나 오늘 하루를 충실하게 살아가는 일

 아침에 눈을 뜨면 거울 속의 나에게 다정하게 인사하는 것

 글감이 없다고 손 놓고 있기보다 무엇이라도 꾸준히 써 내려가는 일


 반음 내린다는 건,

 숫자는 놓칠지언정 사람을 놓치지 않는 것

 마감 기한을 놓치더라도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는 데 집중하는 일

 쓴소리를 해야 할 때는 둘 만의 공간에서 간결하게 이야기하는 것

 결과에 매몰되지 않고 서로의 신뢰에 한번 더 기대어 보는 일


 반음 내린다는 건,

 정신없는 세상에서 한 발짝 물러나 있는 것

 숲길을 걸을 땐 휴대폰을 끄고 새소리, 바람 소리에 몸을 맡기는 일

 숏츠 대신 눈을 감고 오디오북 채널을 듣는 것

 흑백요리사가 다음 편으로 넘어가기 전에 잠자리에 드는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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