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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방재원 Jun 02. 2024

조바심

 "너 이런 식으로 하다가 저기 창문에 매달려 있는 아저씨처럼 되고 싶어!!!"


 몇 년의 시간이 지났지만 내 입으로 내뱉은 한마디 한마디가 여전히 마음 한 구석에 꽈리를 틀고 있다. 지금까지 수많은 후회를 해왔지만 하나를 꼽는다면 삼 년 전 어느 평일 오후 아들을 몰아치며 내던진 이 한마디였다. 


 KF94 마스크를 단단히 착용하고 제주 공항에 도착한 순간 눈부신 햇살을 맞으며 줄을 서 있는 야자수 나무를 마주했을 때의 싱그러움, 그것이 시작이었다. 4박 5일간 제주도 곳곳 맛집 탐방을 하던 중 근처 학교에서 아이들이 뛰노는 걸 목격했다. 땀을 뻘뻘 흘리며 공을 차고 수도꼭지 한쪽을 막아서 물을 뿌리고... 여느 때라면 특별할 것 하나 없는 풍경인데 강렬한 생경함으로 다가왔다. 그렇게 우리 가족의 제주 일 년 살이는 시작되었다.


 마스크 씌우지 않고 애들 학교 보내고 싶다. 단순하지만 간단치 않은 소망을 품고 시작한 섬 생활은 순조로워 보였다. 비록 마스크 착용은 피할 수 없었지만 아이들은 언제든 교실에서 친구들 얼굴을 대하며 수다를 떨었고 주말이면 근처 바닷가에서 목 뒤가 새까맣게 탈 때까지 바위틈에 숨어 있는 꽃게를 잡았다.


 한 달, 두 달... 제주살이에 익숙해지면서 우리의 일상이 점점 뭍에서의 그것을 닮아갔다. 애초에 꿈꿨던 복층 타운하우스는 아이들 학교와 학원, 마트 등 여러 현실적인 이유들에 떠밀려 물거품이 되었고 결국 학원가가 몰려 있는 연동 아파트 단지로 선택지가 좁혀졌다. 제주도의 대치동이라 불리는 곳이었지만 아무래도 서울에서 보냈던 학원에 비해서는 마뜩지 못했다. 이런저런 시도 끝에 내가 직접  아들 영어를 가르쳐 보겠노라 결단했다.


 다른 건 몰라도 영어 하나만큼은 자신 있었다. 외고와 카투사 출신에 무역업으로 20년째 먹고사는 데 이만한 스펙이면 자격이 충분하겠다... 싶었다. 영어는 우리말과 어순이 다르니 문장이 길어지면 주어와 동사부터 파악하고 그다음은 뒤에서부터 뜻을 풀이하면 된다고 필살기를 전수하듯 차근차근 설명했다. 영어 단어를 외울 때에는 큰 소리로 말하면서 반복해서 써봐야 한다고 친절하게 상기시켰다. 회를 거듭할수록 심드렁한 아들의 태도에 언성은 높아져 갔고 뾰쪽한 긴장감이 우리 사이를 짓눌렀다. 누구나 예견할 수 있는, 뻔한 미래였는데 아들 영어는 내가 책임지겠다는 욕심이 앞서서 한 치 앞을 보지 못했다.


 하루는 아들 영어 과외를 하는 중에 아파트 안내 방송이 들렸다. 건물 외벽 대청소를 하는 날이니 창문을 닫아 두라는 공지였다. 무더운 날 퀴퀴한 남자 냄새가 풍기는 좁은 방에서 아들과 씨름을 하고 있는데 환기마저 시키지 못하니 인내심이 바닥을 드러냈다. 영혼 없는 눈빛으로 중얼거리는 아들 뒤로 밧줄에 매달린 채 누군가 창문을 닦고 있었다. 이 때다 싶었고 해서는 안될 말을 쏟아냈다. 무한 경쟁의 초입에 이제 막 들어선 아들에게도, 목숨 걸고 줄 하나에 의지한 채 물줄기를 뿌리는 그분에게도.


 그날을 떠올리면 지금도 헛헛함과 부끄러움을 감출 길이 없다. 아이에게 자극을 주겠다고 애꿎은 한 사람의 인생을 모욕했다. 건물 외벽을 청소하는 것은 경쟁에서 밀려난 자의 몫이라고 갈라 치기 했다. 내 안의 불안과 조바심이 빚어낸 참극이었다.


 중학교 시절 교과서가 외워지지 않으면 머리를 쥐어뜯고 발을 구르고 책에 구멍이 뚫릴 때까지 연필로 동그라미 그리기를 반복했다. 우리나라에서 철광석이 가장 많이 매장된 지역이 양양인지, 아니면 태백인지를 정확하게 외우는 게 당시 나에겐 무엇보다 중요했다. 너덜너덜해진 교과서와 부러진 채 여기저기 흩어진 연필심은 100점짜리 시험지와 맞바꿀 가치가 있었다.... 고 믿었다. 그땐 눈치채지 못했다. 100점짜리 시험지가 쌓여 갈수록 내 안의 쳇바퀴도 속도를 높여야 한다는 걸.


 학창 시절을 흐릿하게 추억할 만큼 지난한 세월이 흘렀다. 스스로 박제한 불안의 덫에 오랜 시간 붙들려 있었던 탓에 적어도 내 아이만큼은 정서적으로 안정된 사람으로 키우리라 여러 번 다짐했지만 현실은 그러지 못했다. 출산율 0.7명의 시대... 할 수만 있다면 찰리와 초콜릿 공장으로 초대하는 황금 티켓을 아이들 손에 하나씩 쥐어 주고 싶었다. 오래전 내가 만든 쳇바퀴에 아이들을 태우고 등 뒤에서 "더 빨리!"를 재촉했다.


 언젠가부터 살아온 날보다 남은 시간이 더 적을 수 있다는 생각이 불쑥 고개를 내밀었다. 아이들과의 실랑이도 점점 더 힘겨워졌다. 그런데... 그렇게 서둘러서 우리가 가야 할 곳은 어디일까? 명문대, 안정된 직장, 화목한 가정... 그곳이 모두가 도달해야 할 종착지인가? 아이들 각자 만들어가야 할 인생이라는 항해인데 좀 더 안전하고 편안한 길만 찾아서 방향키를 부여잡고 헤매고 있는 건 아닐까? 깊숙이 묻어 두었던 질문들이 두서없이 쏟아져 나왔다.


 쳇바퀴 속도를 늦출 수 없다면, 안개가 자욱해 방향을 자신하기 어렵다면 이제는 내가 먼저 쳇바퀴에서 내려와야 한다. 호흡을 가다듬고 어지러운 내 마음부터 정돈해야 하리라. 안개가 걷히면 아이들은 각자의 배를 타고 다시 항해를 떠날 것이고 그들의 안녕을 기도하는 것만이 내가 해야 할 몫으로 남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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