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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는 왜 늘 ‘악세서리’- 도시 문화정책 구조

UNESCO·종묘·도시개발 논쟁 속에서, 방식의 근본 문제

by 성희승

‘시각적 다이내믹’에 대한 새로운 관점 - 과거와 미래, 낮음과 높음이 공존하는 도시가 더 아름다울 수 있다. 시각적 보존과 도시 다이내믹은 공존할 수 있다. 나는 문화유산 근처에 고층건물이 들어서는 것이 곧 부정적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오히려 시간의 조우, 시대의 충돌, 형태의 대비, 높낮이의 긴장, 이런 요소들이 하나의 도시를 더 깊고 넓고 풍부하게 만든다. 유산은 고립된 박물관 조각이 아니라 도시의 시간 속에서 살아 움직이는 존재다. 그래서 중요한 것은 고도 자체가 아니라, 그 고도가 어떤 철학 위에서 결정되는가이다.

고도보다 더 무거운 문제는 ‘한국형 재개발’이다.

재개발은 도시를 오래 살게 만드는 방법 중 하나다.

문제는 방법이다. 원래 재개발은 낡은 기반시설을 다듬고, 안전과 생활환경을 보완하고, 주민의 삶을 개선하는 데 목적이 있다. 그러나 한국의 재개발은 종종 신도시 개발처럼 ‘모든 것을 밀어버리고 처음부터 다시 짓는 방식’으로 진행된다. 이게 문제를 만든다.

한국형 재개발의 특징은 기존 도시의 결이 사라지고 모든 건물이 동시에 사라지고 골목의 맥락, 삶의 기록이 지워지고 결국 그 지역은 ‘동네’가 아닌 ‘부동산 상품’이 된다. 재개발 자체가 나쁜 것이 아니라, 전면 철거 후, 신도시식 재구축이라는 방식이 도시의 역사성을 단절시키는 것이다. 이 구조 속에서 문화유산·골목·지역성은 살아남기 어렵다.


요즘 종묘를 둘러싼 논란을 보며 다시 묻게 된다 “문화와 유산이 한국에서는 왜 이렇게 쉽게 주변부로 밀려나는가?”


1. 한국의 문화정책은 태생적으로 ‘약한 구조’ 위에서 출발했다

문체부는 국가 핵심정책 부처가 아니었다. 예산도 적고, 정치적 파급력도 약했다. 문화가 국가의 얼굴이 되는 시대가 왔지만, 행정 구조는 여전히 오래된 관성을 유지하고 있다. 그 결과, 문화예술·문화유산은 종종 핵심 의제에 포함되지 못하는 구조적 한계를 안고 있다.


2. 국회 문체위는 정치적으로 가장 낮은 상임위다

수도권 중진이나 파워 의원들이 일반적으로 선택하지 않는 자리. 정치적 우선순위가 높지 않은 상임위라는 인식. 이렇게 정치적 기세가 약하니 문화정책은 국정에서 ‘계속적으로 주변부’로 남는다.


3. 개발 논리와 부딪히면, 문화유산은 거의 항상 진다

도시개발은 표로 연결된다. 문화유산은 비교적 표가 되지 않는다는 인식이 정치권에 깊다. 그래서 문화재 고도제한이나 시각적 보존 논쟁은 정책적으로 항상 후순위로 밀려났다. 종묘 논란 역시 그런 구조적 배경을 품고 있다.


4. 한국 정치의 국제기구 인식은 선택적이다

UNESCO의 권고는 법적 강제력이 없다. 그래서 평소에는 관심도 주지 않다가, 정치적으로 필요할 때만 소환된다. 문화유산 보호의 일관성 문제가 아니라 정치적 타이밍의 문제가 작동하는 것이다.


5. 예술계 내부의 약한 조직력도 한계로 작용한다

협회는 분열되어 있고, 정책 전문가·로비스트·제도 전문가도 충분하지 않다. 예술의 아름다움과 달리, 정치와 행정은 구조와 시스템으로 움직인다. 이 시스템적 틀에서 예술계는 늘 불리한 위치에 서 있다.


종묘 논란은 단순히 ‘보이는가 가려지는가’의 문제도 아니고, ‘고층이냐 저층이냐’의 문제도 아니다.한국 사회는 문화·예술·유산을 국가정책의 중심축으로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 있는가? 이 질문을 외면하면 문화정책은 앞으로도 계속 악세서리처럼 취급될 것이다.


그래서, 이제 우리는 문화정책의 중심화를 위한 새로운 관점이 필요하다. 종묘는 시작점일 뿐, 더 큰 질문은 이것이다. 문화가 국가 전략의 중심이 될 수 있는가? 유산을 지키되, 도시의 미래와 공존하는 구조를 만들 수 있는가? 정치·행정·도시·시민·예술이 연결되는 새로운 틀을 만들 수 있는가? 대한민국 도시정책은 문화 중심으로 전환할 준비가 되어 있는가? 미래와 과거가 함께 서 있는 도시. 그 긴장을 두려워하지 않는 도시. 그 긴장 속에서 문화유산의 진짜 가치를 발견하는 도시. 그런 도시가 대한민국이 다음 단계로 넘어갈 길이다.

문화가 도시의 미래를 결정하는 기준이 될 때, 한국은 비로소 “과거와 미래가 공존하는 도시”로 갈 수 있다.

문제는 고도도 재개발도 아니다. 우리가 어떤 도시를 만들 것인가 — 바로 그 질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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