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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일 May 17. 2024

이해할 수 없는 것들에 대하여

이해할 수 없는 회사 상사를 대하는 마음가짐

"이런 기초적인 것도 모르다니, 당신 정말 대학 나온 거 맞아? 사기 친 거 아니야?" 사무실에 쩌렁쩌렁 김 팀장의 목소리가 울려 퍼지자 일하던 직원들의 시선이 일제히 회의실 쪽으로 향한다. 그리고는 또 시작이구나 하는 표정들과 함께 다시 모니터로 시선들이 돌아간다. 생산 2팀 매니저와 윤 사원이 들어간 지 정확히 한 시간 반 지나서 벌어진 일이었다.


 지금이 생산 2팀 순서인데 벌써 한 시간 반 넘게 지났으면 오늘도 정시 퇴근은 글렀구나 생각하던 찰나 앞서 들어갔던 둘이 나온다. 매니저는 다소 화난 듯도 보이지만 생각보다 무덤덤한 표정이고, 윤 사원은 원래도 하얗던 얼굴이 그날따라 유난히 더 질려있었다. 평소 큰일만 나면 가십거리를 찾아 바쁘게 눈이 돌아가던 사람들도 오늘만큼은 분위기 파악을 했는지 못들은 척 모니터에 시선을 딱 붙이고 앉아있다.


 후에 들은 이야기로는 윤 사원의 보고 자료는 거의 완벽했다고 한다. 단지 자료에 오탈자가 하나 있었던 것 그리고 발표가 끝날 때까지 그 오탈자 말고는 김 팀장님이 지적할 것이 하나도 없었다는 것이 문제였다. 윤 사원은 발표가 끝난 뒤 혼자 화장실 안에 들어가서 30분 동안 무슨 생각을 했을까?


 2주 뒤, 윤 사원이 내 자리 앞으로 오더니 불쑥 인사했다. "대리님 그 동안 잘 챙겨주셔서 감사합니다. 저 오늘까지만 회사 나오게 될 것 같아서 인사드립니다" 반년도 안 지났는데 올해 들어 3명 째 퇴사였다. 윤 사원의 표정은 조금 씁쓸하면서도 어색한 듯했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올해 들어 본 표정 중에는 가장 밝은 듯 보였다. "아녜요. 내가 더 잘 챙겨줬어야 하는데 그동안 미안했어요. 나도 일이 많고 바빠서..."


 가끔 그런 시기가 있다. 봄이 되어 새롭게 자라나는 새싹들에 제초제 뿌리듯이 일정 연수를 못채운 사원들이 깡그리 퇴사하는 시기. 연수 지긋한 부장, 차장들이라고 그만두고 싶은 마음이야 뭐가 다를까. 단지, 근속연수만큼 먹은 나이 때문에 챙겨야 될 가족이 생겨 힘들어도 참고 지내왔던 시간이 그들의 마음에 대못이 박혀도 조금 덜 아플 수 있는 굳은 살을 만들었을 뿐이겠지.


 올해 초 새로 우리 지점으로 부임한 김 팀장님은 임원 진급에 연이어 누락되고 요번이 마지막 케이스라고 들었던 것 같다. 그리고 새로운 지점에 적응하기가 무섭게 마른걸레 짜듯이 자기 아랫사람이면 직급 상관없이 성과를 내기 위해서 쥐어짜기 시작했다. 물론, 본인 빼고 나머지 사람들은 다 알고 있을 것이다. 그런 성격 또한, 김 팀장이 임원에 진급하지 못하는 커다란 이유 중에 하나라는 걸.


 가끔 신입사원들이 나한테 물어보곤 할 때가 있다. "대리님 어떻게 하면 회사 생활을 잘 할 수 있을까요? 열심히 한다고 하는데 자주 혼나고 생각보다 잘 안되는 것 같아요. 대리님은 그래도 오래 다니셨잖아요" 그러면 늘 겸연쩍게 웃으며 대답해 주곤 한다. "제가 오래 살아남은 건 그냥 조금 더 비굴해서예요. 회사 생활이란 게 실력만 좋다고 다 잘되는 건 아닌 거 같더라고요"


 실제로도 가끔 나도 배워야겠다는 출중한 실력의 신입사원들이 회사에 들어오곤 한다. 근데 정말이지 회사 생활이란 건 실력도 중요하지만 상사 비위 맞추는 게 우선이 되는 거 같다. 그리고 나도 오랜 시간 회사 생활을 한 때문인지 조금씩 영혼을 깎아 먹으면서 지금의 소심한 내가 되었다. 한 때는 나도 한 자존심 했던 적이 있었는데 요즘 스스로를 보면 가끔 안쓰러워 보일 때가 많다.


 자주 깨지는 것에 대해 슬퍼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가끔 일부 상사들은 개인적인 감정에 의해 그리고 혹은 부하직원이 오히려 일을 더 잘해서 자격지심에 깨기도 하더라. 놀랍지 않은가? 꾸지람의 대부분 당신의 잘못이 아닐 수도 있다는 것이다. 또한, 최소 30년 이상 다른 환경에서 살아온 당신과 그들이 서로를 100% 이해한다는 것은 아마 평생 불가능에 가깝지 않을까 싶다.


 그들을 노력해서 너무 이해해 주려 할 필요도 없다. 당신 또한 이해받고 존중받아야하는 한 사람의 인간이다. 물론, 모든 피드백을 다 흘려들으라는 이야기는 아니다. 업무에 대한 적절한 지적은 자양분 삼으면 피가 되고 살이 되겠지. 하지만 그 전에 그들도 한 사람의 불완전한 인간이라는 것은 기억하고 있어야 한다. 감정을 배제하고 일에만 집중할 수 있는 완전한 인간이 아니다.


 당신의 상사는 퇴근 후 화가 났다는 사실조차 까맣게 잊은 채 집에서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있을지도 모른다. 그런데 당신은 그 고통스러운 기억을 퇴근 후까지 끌고 집에 들어와서 스스로와 주변 사람들을 괴롭게 할 것인가. 되도록 상사의 꾸지람에 초연해져라. 쉽게 초연해질 수 없는 것 다 안다. 하지만 초연해지려 고라도 하지 않으면 스스로만 괴로워질 뿐이다.


 그럼 누군가 다시 나에게 묻겠지. 그렇게 말할 수 있는 너는 이제 회사 생활 스트레스에서 자유로울 수 있는 방법을 완벽하게 터득했냐고. 아니, 나도 여전히 진행형이다. 그래도 가끔은 예전 일기를 다시 읽으며 풋내기 때 보다 조금은 나아졌구나 생각하고는 한다. 내 글을 읽는 당신이 완벽하게 초월하기를 바라지는 않는다. 단지, 퇴근 후 상사에게 혼난 기억 때문에 유난히 우울한 날이 있다면 가끔은 이 글을 떠올리며 오늘 하루는 평소보다 더 힘들었지만 무사히 해냈구나 스스로 칭찬해 줄 수 있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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