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사이드아웃 2의 감상 아닌 독백
24.07.04
인사이드아웃 2
휴학했던 시절, 일본어를 다시 배우라는 아버지의 말에 다시 고향의 본가로 돌아갔다.
서울에서의 삶은 다채로운 무지개처럼 빛날 줄 알았다.
수많은 기회가 있고 다양한 사람을 만나고, 그때까지의 노력을 보상받을 수 있을 듯한 허망한 희망으로 가득 차 있었다.
그러나 내가 태어나기만 했던 서울은 나를 무채색으로 만들었다.
음악을 평생 하고 싶었다. 그 꿈은 한 번도 바뀌지 않았다.
유명해질 수 없더라도, 꾸준히 음악을 한다면 언젠가 먹고 살만할 정도로의 음악가가 될 수 있지 않을까.
음악으로 내가 나를 나타내며 살 수 있진 않을까.
반년을 그런 허망 같은 희망으로 살았다.
여름방학을 앞두고 기말고사를 끝내고, 바로 자퇴를 생각했다.
그 당시의 난 아무것도 아니었다.
노래만으로 모든 게 될 것이라는 생각은 젊은 날의 객기였다.
10대 때처럼 몇 시간씩 연습하다 보면, 재능이 없다고 말하던 사람들과 인연을 끊고 혼자 당당히 대학에 합격한 만큼
그런 성장을 바랐다.
그러나 내 음악은 좋지 않았다. 모르는 것이 아는 것보다 많았다.
문제는 그런 사람이 나뿐이었다.
그때부터 나는 색을 하나씩 잃어갔다.
기대라는 색을 잃고, 즐거움, 우정, 기회, 사람 차례로 잃어갔다.
대신 내가 얻은 건 우울함, 좁은 방, 억지웃음, 거짓말, 눈물 같은 무채색이었다.
그렇게 난 그림자 같은 사람이 되었다.
이에 음악과 내가 척을 지게 될까 두려워 난생처음 일탈과 같은 일을 했다.
부모님 몰래 학교를 나가지 않고 아르바이트를 하고, 끝난 심야에는 아무런 영화를 봤다.
그리고 좁은 방에 들어가 낮까지 죽은 듯이 잤다.
그런 후 바로 일을 하러 갔다.
아무와도 연락하지 않으며 모든 걸 회피했다.
이건 10년 전의 나이다.
10년이 지난 지금, 난 아직 무지개와 같은 색을 되찾지는 못했다.
하지만 무채색의 나 또한 나임을 받아들였다.
가끔 가장 좋아하는 연보라색이 되었다가, 장마 전의 먹구름 같은 색이 되기도 한다.
가을 하늘의 맑은 하늘색이 되기도, 나도 모르는 사이에 반짝일 때도 있을 것이다.
10년의 시간을 통해 내 색의 속성은 CMYK가 아닌 RGB로 변화됐다.
약속이 취소된 어느 날, 혼자서 영화를 보러 간 게 오래되었다 생각했다.
퇴근 30분 전, 사람들이 회사에서 많이 말하던 9년 전의 영화의 두 번째 시리즈를 예매했다.
영화를 보며 울지 않는 사람이기에, 아무 정보도 없이
그저 시간을 혼자 쓰고 싶어 깜깜하고 조용한 영화관으로 향했다.
첫 번째 시리즈의 주인공의 이야기는 귀여웠다.
자아가 성립되기 이전, 순수했던 감정들만을 다루며, 그저 어린아이와 같던 순수함을 잃어가지만
성장하는 주인공의 모습은 흐뭇했고 나와는 아주 먼 이야기로 보였다.
두 번째 시리즈에서 슬퍼서인지, 피곤해서인지 모르겠으나 눈물을 조금씩 흘렸다.
다양해진 감정들은 10년 전 내가 얻은 무채색의 감정과 닮아있었다.
불안, 당황, 따분함, 부러움 등 주인공을 성장시키기 위해 감정센터를 차지한 이들은
결국 아이의 색을 빼앗았다.
친한 친구들과의 우정보다, 나의 조금의 미래를 위해 이기적인 마음을 가지며
누군가에게 잘 보이기 위해 그 사람에게 맞춰 행동하고, ‘척’을 하기 시작한다.
그리고 불안해한다. 실패할까 봐, 이렇게까지 했는데 내 손에 남은 건 아무것도 없을까 봐.
감정들의 화해와 감동스러운 이야기는 제쳐두고,
그저 나를 약간 울렸던 모습은 ‘기쁨’이 좋은 감정만을 두고 기억의 저편으로 넘겼던 기억들을 통해
다시 감정센터로 돌아와, 필요 없다고 했던 기억들이 감정의 강에 모두 스며들어 진정한 주인공의 ‘나다움’을 만들었다는 것.
내가 겪었던 일중에 잊어도 좋은 기억도 있을 것이다. 머릿속에서 지우려 노력했던 적도 있다.
하지만, 기억들은 내 몸 곳곳에 스며 10년 동안 나를 만들었다,
잊어도 좋은 기억은 있지만, 잊어야만 하는 기억, 없어져야 할 기억은 없다는 것.
모든 경험과 기억들이 나를 만들었다는 것.
이 영화가 무채색의 그날의 날 잠깐 빛나게 해 줬을 수도.
그래서 잠깐의 눈물을 흘렸을지, 그저 피곤했던 건지 그건 그날의 기억만이 알고 있겠지.
내 모든 감정들에게 감사하며, 시간이 지난 후 너희들이 더 나은 나를 만들어주길 바라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