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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해파리 Jul 10. 2024

닳디 닳아버렸다.

부유하는 해파리

2024.07.08


유난히 힘들었다.

지쳤다. 앞이 보이지 않았다.


지난달, 일을 하며 동시에 수업을 듣고 발표준비를 하고

논문을 쓰고, 이직준비를 하며 다시 운동에도 시간을 썼다.


‘덕분에’일까, ‘때문에’ 일까 쓸데없는 생각, 우울에 빠지지 않았다.

그러나 항상 피곤했고, 담배를 많이 폈고 화도 냈다.

아무 생각 없이 뭔가를 끝내려고 노력했다.  글도 매일 하나씩 썼다.

감정에도 충실해보려 했다. 사람들과의 관계에서도

겨우 찰랑거릴 만큼 남은 에너지를 탈탈 털어 무난히 유지했다.


오늘 계속해서 달려온 생각의 달리기가 끝났다. 넘어졌다.

일찍 일어나고 늦게 자며 줄인 시간으로 써낸 서류가

아픈 몸을 딛고 일어나 무리한 일정을 소화하며 끝과 끝을 운전하며 본 면접이

내가 쓰임 당하고 싶은 곳에서 쓰일 것이라는 기대와 희망이

갑자기 내린 소나기에 와르르 무너졌다.


우산으로 막을 새도 없이 실패와 절망이 우르르 발끝부터 머리까지 쏟아져

아무런 생각이 들지 않았다.

슬프지도 아쉽지도 분하지도 않았다.

정신을 차리니 문득, 기계와 같이

원래 목소리가 아닌 다른 목소리로 뚝딱거리며 머리에 일에 관련된 내용만을 집어넣었다.

일만 생각하게 됐다. 결국 탈진했다. 머릿속의 공간에 구멍이 났다.

생각은커녕 기억도 나지 않더라, 그제야 억울함의 어둠이 나를 덮치더라


이번에야말로, 내가 해낼 수 있을 줄 알았는데, 드디어 내 힘으로 다시 일어날 수 있겠구나.

기대와 희망이 단단히 나를 세우고 있는 줄로만 알았는데,

내 발밑에는 거센 물살 위의 스티로폼 부표뿐이었다.

겨우, 간신히 군형을 잡고 서있었던 것이다.


이만큼 무너지면 이제 또 어떻게 일어나야 될까.

기대나 희망은 이제 가지면 안 되는 걸까.

난 얼마나 부족한 사람인 걸까. 누가 전부 계산해서 말해주면 좋겠다.


희망 따위, 기대 따위, 기분 좋은 마음 졸임 따위 하지 않도록

심해 속의 어두운 시야가 오늘 나의 색이다.

부정적이면 안돼, 찡찡거리면 안 돼, 생각하지만 나는 여전히 약하다.


그래도 무너지지는 않는다.

해파리는 바다의 깊이와 색 파도의 높이와 상관없이 부유할 뿐이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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